이미지론-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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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철

이미지론-18

귀신(鬼神)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죽으면 살았을 때의 기억이 흩어진다고 했습니다. 기억이 흩어진다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던 질서(혹은 의미)가 흩어진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즉 살아 있는 우리가 부여하는 여러 의미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귀신이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좌우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억울할 거다, 아프지 않고 편안할 거다 심지어 다시 또 만나자 등등. 모두 살아 있는 사람들의 관점입니다. 그럼 귀신은? 굳이 말하면 귀신은 관점이 없습니다. 아니 관점이 너무 무한하여 살아 있는 우리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살아 있는 존재들은 끝없이 죽음의 세계를 주시하면서 의미 짓기를 원하죠.

심지어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의 오감(五感) 중 시각에 잡혔다는 것이죠. 귀신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더 심하게는 귀신을 촉각 하였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귀신을 냄새(맛)로 보았다는 사람은 드뭅니다. 모든 게 지극히 살아 있는 사람들의 관점이지요. 과연 귀신은 오감으로 만날 수 있는 존재일까요? 먼저 귀신은 감각의 세계 즉 현상계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그럼 감각의 세계에서 만났다는 귀신은 과연 어떤 존재라고 해야 할까요? 그것 역시 ‘이미지’라고 해야 할 겁니다. 모든 존재는 이미지로 존재하니까요? 문제는 그런 ‘이미지’들이 어떤 실체로부터 나온 것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여태까지 말했던 실체론이죠. 귀신이라 부를 수 있는 이미지는 무수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지에 대한 실체는 없습니다. 마치 꽃이 이미지일 뿐 꽃이라고 하는 ‘물자체(物自體)’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귀신이라고 하는 물자체가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귀신 이미지’는 물자체에 대해 ‘가짜’가 되어야 할 겁니다. 자신에게 이미지로 나타난 귀신을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의 의도와는 다른 상황이 벌어지지요. 이미지는 누군가가 혼자 만드는 게 아닙니다. 꽃 혼자서 혹은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늘 어떤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죠. 이미지는 언제나 관계의 산물입니다. 훤한 대낮에는 공동묘지를 혼자서 걸을 수 있지만 캄캄한 밤에는 혼자 걸을 수 없는 것은 관계가 변화 때문입니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점심시간엔 스스럼없이 지나다닐 수 있는 대형 식당을 새벽에 혼자 닭 납품을 위해 지나다니기가 두려운 것도 그렇습니다.

귀신은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이미지일 뿐입니다. 그럼 귀신 이미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 아닙니다. 관계의 상황에 따라 많은 일을 합니다. 귀신 이미지 혼자 하는 일은 없습니다. 오직 혼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요? 그게 바로 신입니다. 신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오직 자신의 내부에서만 찾을 수 있는 존재죠. 이른바 ‘무한실체’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엔 그런 존재가 없습니다. 귀신도 그런 존재는 아니죠. 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미지의 중첩이라고나 할까요.


이미지의 중첩은 귀신 이미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지요. 무언가를 잘 못 본다든지, 말실수를 한다든지, 오해를 한다든지 하는 것 등이 그겁니다. 문제는 자신이 본 귀신의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겁니다. 그건 오래된 ‘이원론’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귀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귀신을 자신의 운명에 결부시키는 경우도 많은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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