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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론-17
고대가 목적론의 사회였다면 근대는 기계론의 사회죠. 목적론이 고체성이라면 기계론은 기체성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둘 다 액체성은 아니지만 액체성을 닮았습니다. 목적론은 우리의 일상에 진리가 있는 게 아니라 일상 너머에 확실치는 않지만 거대한 진리가 있다고 여기는 겁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그 무엇입니다. 당연히 현실은 변하지 않는 것의 그림자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에 어렴풋합니다. 그게 액체성을 닮았습니다. 기계론은 그 진리가 현실의 밑으로 내려와서 잘게 부서진 형국입니다. 하여 좀 더 운동성이 부여된 것처럼 여겨지지요. 그리고 그것들은 어떤 법칙에 의해 움직이기에 진리처럼 여겨집니다. 그리고 활발한 운동성 때문에 액체성과 비슷하게 여겨집니다.
고대엔 잘게 부서진 ‘개인(個人)’이라는 게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고대 국가 역시 그렇게 구성됩니다. 현실 너머에 있는 신의 대리인 즉 황제나 왕이 국가의 주체였죠. 그러므로 인권이나 평등, 소유(개인의 소유), 자유 같은 개념이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개념들은 모두 근대의 산물입니다. 근대는 특이하게도 평등하면서도 소유권을 가진 개인들의 집합입니다. 자신이 소유한 만큼 평등하고, 자유롭고 또 권리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늘 그렇게 균등 분할된 권리로서의 주체로 봅니다.
그때 근대적 국가가 성립합니다. 가령 국가대표 축구팀을 응원하게 되는 심리가 그런 겁니다. 국가 대 국가가 싸우는 것이죠. 소유권의 균등한 집합체들이 응원하는 것이죠. 이런 현상은 매우 특이한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이미지라는 입장에서 보면 말이죠. 모두 동일성이 되어 더 크다고 여겨지는 동일성을 응원하는 것이죠. 그곳에 동일성을 이용하여 이득을 보려는 ‘큰 손으로서의 동일성’이 있을 겁니다. ‘자본’도 그런 것이죠.
처음에 자본은 자본답게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본원적 축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점차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지금은 아주 유연한(?) 방법으로 본원적 축적을 확장시켜 나갑니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들의 잉여가치를 가속시키기 위해 기계들을 도입하였고, 지금의 기계들은 대체로 자본의 ‘꿈’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기계가 영원히 자본의 꿈에 복무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본의 망상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액체성 역시 오래전부터 고체성과 기체성을 제외한 채 존재한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액체성은 고체성을 그동안 애무(사랑한 게 아니라 녹여 보려고)하다가 고체성이 시간이 흐르면서 기체성이 되는 것을 경험하였고 근대 이후로는 기체성을 만나게 되었던 겁니다. 고체성, 액체성, 기체성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함께 존재하였던 겁니다. 목욕탕의 찬 물, 더운물처럼. 기체성으로서의 기계는 언젠가 액체성으로 작동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여 그동안 잉여 가치를 추구해 왔던 자본의 꿈을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드디어 잉여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 세계 즉 ‘자연’이라는 이미지가 제대로 작동하는 세계가 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기체성(기계주의)이라도 감지덕지라 여기는 바보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필요에 따라 포지션을 바꾸어왔던 존재들일뿐입니다. 그들은 불쌍하게 여길지언정 도와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몽땅 액체성의 버스에 태우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