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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론-16
시속 800km로 달리는 비행기에서 본 풍경을 생각해 봅시다. 그걸 모두 기억할까요? 나는 기억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아주 세세하게? 이번에 우리가 보는 방식을 생각해 봅시다. 길을 걷다가 주변 풍경을 봅니다. 가게가 있고 지나가는 차가 있고 사람이 있고 개나 고양이가 있고 자전거 타는 어린이, 바람과 흔들리는 가로수, 버스 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걸 다 봅니다. 어떻게? ‘전체 이미지’로. 하나도 빠짐없이? 문제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나는 시속 120km로 지나가는 버스 오른쪽 뒤 바퀴에 낀 담배꽁초는 쉽게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보지 못했을까요? 아닙니다. 보았습니다. 하지만 전체 풍경(이미지)으로 본 것이죠. 우리는 늘 이렇게 봅니다. 전체 풍경 이미지로. 책상에 앉아 교실 유리창을 보지만 유리창에 붙은 먼지는 보질 못하죠. 하지만 전체 풍경이라는 관점에선 본 것입니다.
그럼 앞에서 이야기한 전체로 보는 풍경의 방식에서 마치 빠뜨린 것 같은 먼지는 현미경으로 보면 보일까요? 아마 보일 겁니다. 하지만 현미경 역시 그 미세한 것을 전체의 풍경으로 보는 입장이라, 현미경으로도 놓치는 게 있을 겁니다. 우리는 늘 이렇게 전체 풍경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이미지를 보는 방식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럼 그것은 어떤 것을 건성건성 보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풍경을 건성건성 보는 게 아니라, 이미지를 보는 방식이 그런 것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이미지의 존재 방식이 그런 것일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전체 이미지를 볼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현미경으로 보는 아주 미세한 것뿐 아니라, 사랑, 미움 등과 같은 감정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그런 것이라 아닐까 생각됩니다. 특정 부위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존재 전체를 사랑하는 것 말입니다.
그럼 눈에 보이는 밤하늘은 어떨까요? 밤하늘도 그렇게 보이겠지요. 그리고 눈에 보이질 않는 다른 은하계도 그런 전체 이미지들에 속하는 이미지일 겁니다. 크기가 어떤 것이든 그중 어떤 것만을 딱 집어내어서 보기 어렵다 아니 볼 수 없다는 겁니다. 가령 내 앞에 있는 꽃의 경우 다른 것들을 다 제쳐두고 그 꽃만을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시각 능력이 매우 낮아서? 아닙니다. 그게 바로 이미지를 보는 우리의 방식이라는 말입니다. 이미지의 존재 방식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이미지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미지가 존재하는 방식대로 우리가 보고 있는 거니까요. 다만 그게 진짜라고 하면 안 됩니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진짜는 없는 것이니까요.
늘 전체 이미지 즉 이미지의 존재 방식대로 보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보는(보여지는)것은 모두 그렇게 보입니다. 가령 모니터의 뒷면도 자신이 뒤섞인 이미지들의 관계를 내게 보여 줌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보이는 이미지들은 어쩌면 아주 순간순간 자신의 존재를 증거 하는 이미지들 속에 있는 이미지라고 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어떤 걸 증거 할 필요가 있을까요? 잘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런 ‘이미지들의 증거들’이 우주에 꽉 차거나 아니면 끊임없이 출렁거린다면 우리는 그 증거 하는 이미지의 보는 게 행복일 일 수 있을 겁니다.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가 증거 하는 이미지를 다시 한번 더 증거 하는 것이라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