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춘에 대하여
<성(性)에 대하여 8>
매매춘의 특징은 대가(代價)를 받고 섹스를 한다는 것인데 자본주의 나아가 인류의 역사를 보면 대가를 받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일반적 현상이었습니다. 물론 대가를 위해 일한다는 게 자연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원시공동체에서는 대가보다는 ‘증여(贈與)’라는 게 있었답니다. 사실 대가든 증여든 모두 분배와 관련 됩니다. 분배방법으로서 어떤 게 주도적이냐의 문제였죠. 가령 역사발전을 마르크스처럼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하느냐로 보는 관점도 있지만 분배의 방식으로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 의하면 대가를 받는 것 즉 ‘교환’ 그리고 ‘증여’ 나아가 ‘약탈(掠奪)’도 분배로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약탈을 생각해 보세요. 먼저 뺏고 나중에 그걸 다시 나눠 주는 것이죠. 고대 왕조국가들의 분배 방식입니다.
아무튼 대가를 받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선 매우 일반적이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매춘 자신의 성(성적 서비스)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은 불법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 역시 가족이 갖고 있는 ‘재생산성’의 원천이라는 상징성에서 출발합니다. 즉 가족 내에서의 섹스는 자식을 생산하고 자식은 앞으로의 국가 생산을 담보한다는 생각인데, 사실 이것은 ‘이데올로기’라고 해야 할 겁니다. 즐거움으로서의 섹스가 아니라 ‘생식’으로서의 섹스만을 인정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대가를 받고 일을 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습니다. 예전에 흔히 ‘궤변론자’로 불리던 ‘소피스트(Sophist)’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식을 팔고 그 대가로 큰돈을 벌었죠. 사실 소피스트는 ‘지자(智者)’라는 뜻입니다. 지혜와 관련된 사람들이란 말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도 소피스트였습니다. 철학의 흐름으로 보면 자연철학에서 일원론 철학으로 모아지다가 소피스트들이 등장해서 다원론의 철학이 만개하죠, 그러다가 소크라테스에 의해서 이원론의 철학이 시작되고 플라톤 등에 의해서 그런 철학이 근대까지 서양을 지배합니다.
아무튼 대가를 위해 자신이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 혹은 서비스를 파는 것은 자연스럽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일반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구체적으로 대가를 받고 섹스를 하는 게 바로 그런 겁니다. 그런데 이 대가를 확대해 보면 우리는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반드시 대가가 ‘돈’일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대가는 돈일 수도 있지만 다양한 물건이나 관계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때론 사랑도 혹은 믿음도 대가의 지불 수단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결혼도 그럴 수 있을까요. 우리는 결혼하기 전에 ‘사랑’이외에도 여러 가지 조건을 살핍니다. 생물학적 호감으로서의 섹시함부터 시작해서 건강, 재산, 지위, 직장, 수입 그리고 가문까지를 살피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기서 ‘조건’을 ‘대가’로 바꾸면 새로운 지평이 열립니다. 우리가 합법적으로 여긴 결혼이 매춘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걸 ‘광의(廣義)의 매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우리가 여태까지 매춘이라고 여겼던 ‘협의의 매춘’ 말고도 ‘광의의 매춘’이 결혼 뿐 아니라 다양한 지점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더불어 자본주의는 ‘가정 내에서 이루어는 생식’으로 ‘건전한 섹스’를 묶으려하였지만 가정 밖에서는 ‘섹스산업’이라 불리는 ‘광의의 매춘’로 돈을 버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겁니다. 같은 섹스를 다르게 보는 것일까? 아니면 ‘가정 내에서의 섹스’와 ‘대가를 위해 이루어지는 섹스’는 본래부터 다른 섹스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