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집 필사를 하던 아이가 모작을 했다. 단어 몇 개만 바꾸어 고사리 동시를 썼다. 이번 필사의 목적은 사실 메마른 네가 시라는 것을 음미하고, 띄어쓰기를 반성하며, 뒹굴방굴한 방학에 일말의 혈색이라도 돌게 하고 싶은 나의 욕심 때문이었는데 이런 멋진 선물까지 창조해버릴 줄이야.
무너져가는 나의 얼굴을 여포를 홀린 초선과 견줘주어 고맙다. 부엌을 싫어하고 침대를 좋아하는 내 본성을 눈치채줘서 고맙다. 국에 밥 말아먹듯 휘갈기는 기상 15분 쓰기를 독려해 주는 것도 눈물 나게 고맙다.
나는 언제나 너를 가르치고 싶어 하지만, 매번 가르치는 쪽은 네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아이는 나의 뮤즈다. 밤바다의 등대도 상대가 있어야 스스로의 존재를 알 수 있다는데. 너로 인해 근거 있는 명문이란 생각을 잠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