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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사임당 Jan 01. 2024

수육, 짠한 맛



 그이가 얼기설기 저녁상을 차렸다. 결혼 생활 구 년 동안 '아빠는 짜파게티 요리사'만 실천할 줄 알던 그가 친히 고기를 삶았다. 직접 대파를 사 오고 통마늘을 꺼내고 곰솥을 찾는 그의 어설픈 분주함을 나는 모르는 척했더랬다. 그래, 너도 집안일 좀 해봐야지. 먹기는 쉬워도 하기는 얼마나 귀찮은지 댁도 느껴봐야지 않겠어.



 언제부턴가 뒤틀린 근래의 심보가 괜한 부엌 텃세로 이어졌다. 탁탁탁 뚝딱뚝딱 보글보글. 칼 소리마저 지겨워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느덧 낯선 듯 좋은 냄새가 이불 속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익숙한 카레 냄새 같기도 했고 처음 맡아보는 향신료 냄새 같기도 했다. 고개만 빼꼼 들어 부엌을 봤다. 늘어진 런닝 바람 휘날리는 급급한 한 남자가 보였다. 휴대폰을 보았다가 뚜껑을 열었다가 무언갈 떨어뜨리며 난리를 추고 있다. "냄새는 일단 합격." 약간 미안해져서, 일말의 서비스 정신으로 나는 한 마디 했다.



 식탁으로 갔다. 야채 바구니 사이에 케일이 보였다. 저 좋아하는 깻잎만 사 온 줄 알았더니 내 취향 케일도 챙겨 씻어 놓았다. 게다가 베란다 구석에서 잠자던 초마늘도 예쁘게 꺼내 놓고 말이다. 고마운 마음으로 젓가락을 들었다. 고기에 무얼 넣고 삶았는지 부드럽고 맛도 좋았다. 마음이 살살 녹는 식사를 한참 하고 있는데 그이가 문득 내게 말했다. "마누라, 즐거울 만큼만 글 쓰면 좋겠어." 하고.



 아닌 밥 중에 날벼락이었다. 뭔 말인가 했다. 그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간밤에 내가 자면서 한숨을 열댓 번도 더 쉬었다 했다. 어떻게 사람이 자면서 한숨을 쉴 수 있냐 너털웃음 했더니 진짜라며 억울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 한숨이 얼마나 리얼했던지 내가 안 자는 줄 알고 불러보기까지 했었다면서. 그러니까 내가 사실... 잠자기 전까지 잘 안 풀리는 글을 생각하다 잠든 건 맞는데... 그러니까 그걸 꿈에까지 끌고 간 모양인 건가... 아마도 그랬나 보다.



 "알았지? 즐거울 만큼만 쓰는 거다. 많이 먹어." 수육이 이렇게 짠한 맛 나는 음식인지 미처 몰랐다. 그리 큰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괜한 짜증을 일상에 묻히고 다녔던 게 미안해졌다. 여보, 이번 백일장에서 상 받으면 내가 외식 한 번 쏠게.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달은 수육을 먹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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