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로 건너와서 여태까지의 이민생활을 반추하며 지난 일을 정리해가는 의미로 시작했던 글쓰기였는데 어느새 그 글은 학교 입학에서 멈춰있고 자잘한 일상 이야기나 끄적끄적. 사실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고 마음을 다잡은 뒤 앉아서 몇 시간이고 매달려 있어야 하는 고된 일이다. 그러다보니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쌓이면서 글감이 모이다보면 그간 묵힌 것들이 때가 되었다면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고 그러기를 여러 번 하다보면 드디어 책상에 앉아 글을 써보기 시작한다. (물론 시작하면서 마음 먹은대로 글이 씌이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긴 하다.) 그렇게 잔뜩 글감이 쌓여있던 이민 생활이라는 창고가 있었는데... 실로 오랜 시간이 지나 비로소 안정감을 찾은 듯 했던 일상이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잔뜩 뒤엉켜버린 이유 때문인 건지 무언가 뒤틀려 그 창고로 통하던 인식의 경로가 끊긴 듯 싶다. 사실 이렇게 여유시간이 무한대로 주어진 지금이 지난 날들을 정리할 최적의 시간인 듯 싶은데 내 안의 것들은 그렇게 돌아가지가 않는게 솔직한 마음이다. 나도 조금 답답하다.
매일 오전, 성실하게 뜀박질을 하고 있는 동네 공원에 들러 오늘도 그렇게 가쁜 숨을 내쉬며 “확찐자”를 반성하며 복잡한 속내를 잊어보고자 내 달리고 있던 중 이전과 다른 모습이 순간 눈길을 사로잡았다. 단체활동을 금지하던 규제 덕분에 철거 되었던 잔디 운동장 위에 축구 골대를 다시 설치하고 있는 공원 관리자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하나씩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것들이 돌아오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차분히 단계를 밟아가며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미리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이 고통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이곳 호주는 다른 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차근히 코로나를 극복해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규제를 늘려갔던 호주 정부. 결국 나같은 대량의 실업자 양산을 감안하면서 까지 지역사회 봉쇄 및 hospitality 산업의 강력한 규제까지 발표하며 위기에 대응했다. 결과적으로 이 적극적인 대응은 효과가 있었고 봉쇄가 시작된 지 한 달 반쯤 지났을 무렵부터 급격하게 줄어드는 감염자 수를 근거로 규제완화의 여론이 점차 퍼져갔다. 코로나 위기가 대두되던 초기에 재빨리 대응하지 못하고 보인 더딘 행보에 불만이 많았던 호주 시민들의 반응을 염두에 둔 건지 규제완화의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중앙 정부는 3단계 완화 정책이라는 큰 그림을 제시하고 각 주별로 상황에 맞춰 시기를 정하라던 호주 총리의 발언 이후 이곳 NSW 주 총리는 2 주전 1차 완화방책을 발표했고 당초 예상보다 더 빨리 2차 완화가 다음 주 시행된다. 처음 규제 완화 발표 때보다 훨씬 큰 폭으로 규제가 완화되어 정부의 지침에 따라 천천히 사업재개를 준비했던 여러 업장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실정이다.
여전히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부는 공공장소에서의 mask 착용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지만) 실제 번화가로 나가보면 사람들도 이제 바이러스를 거의 인식하지 않는 듯 한 모습에 놀라곤 한다. 외식이 허용되기 시작한 1단계 규제 완화가 시작된 시점 부터 (업장 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업장 내 10명 뿐이지고 이 마저도 사회적 거리가 보장된 위치 내에서만 허용되는 등 문제가 많다.) 외식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문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고, 영업을 재개한 상점들은 정부 규제와 상관없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제 Camping 및 지역 외곽 여행 등 다양한 야외활동이 허용이 되기 시작하는 6월 1일 이후부터는 그동안 집에서만 여가를 즐겨야 했던 사람들이 야외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7월 부터는 이제 이웃 나라 New Zealand와의 관광 교류도 열릴 기세고 9월에는 안전국가들과의 교류도 허용을 하기위해 노력하겠다는 언론보도도 이어지면서 이렇게 위기가 이 나라에서 지나가는 듯 보인다.
비록 내 생활은 늘 집안 거실에 앉아 창 밖 마당에 보이는 고즈넉한 텃밭과 여전히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신선놀음을 이어가고 있고, 내가 일하고 있는 업장의 영업재개는 이미 하반기 이후나 될 것 같다는 내부 회의 결과가 걱정과 안도가 뒤섞인 묘한 한 숨을 내쉬게 만들고 있지만 그래도 이젠 어느정도 윤곽이 잡힌 것에 걱정을 조금 내려놓고 남은 시한부 한량의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제 조금 이 게으름에서 벗어나 볼까 한다. 바깥 세상도 이제 깨어날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나도 이 흐름에 발맞추어 머릿 속으로만 계획해 오던 밀린 일들을 하나씩 마무리 지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지도 살짝 품어보고, 여전히 익숙해 지지 않는 시큰한 겨울이 성큼 다가와 있긴 하지만 오랫만에 야외로 Camping도 나가볼까 엉덩이도 들썩여 본다.
어서 빨리 완전한 일상으로의 회복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리운 모국에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그래서 가족 친지들과 모여 이 날을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그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생각이 많아진 요즘이라 그런가 한층 더 그 인연들이 그리움을 더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