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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야 May 11. 2020

Lockdown stage 3가 바꿔놓은 내 일상

깊어가는 호주의 가을은 여전히 눈부시다.

 사상 최대 몸무게를 갱신했다. 휴...


 얼마 전 오후에 근처 상점에 들렀다. 이것저것 뒤적거리는 내 모습을 보더니 불쑥 아내가

“이젠 배가 나온 게 보이네”

라는 말을 던졌다. 진심으로 한 말인 듯싶어 몇 번이고 되물었지만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하고 잠시 동네 공원에 운동도 할 겸 나갔다.

 살짝 숨이 찰 정도로 뛰고 있는데 뒤따라 오던 아내가 또 한 번

 “덩치가 커진 게 확연히 눈에 띄네”

 툭하고 내뱉은 말에 은근 신경이 쓰여서 씻고 난 후 오랜만에 체중계에 오르니 믿지 못할 숫자가 나 보란 듯 나타났다. 이제껏 살면서 가장 무거운 몸이 되었다는 것을 객관화된 수치로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무기력.

 COVID-19의 확산으로 호주 정부는 Lock down이라는 초강수를 두고 사람들의 이동을 최소한으로 제한시켜두었다. 일하던 식당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예고 없이 무기한 무급휴가 처리가 되어 강제로 집에서 쉬게 된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일을 못하게 된 초반만 하더라도 봉쇄조치가 지금처럼 심하지 않아서 룰루랄라 낚시도 다니면서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지금의 Lockdown stage 3단계를 발표하고 자기가 거주하는 지역사회를 벗어날 수 없고 외출도 최소한으로 제한이 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자연스레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갇혀있는 감옥살이는 아니지만 답답한 마음에 감정 기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어느 순간 깊은 무기력감에 빠져들어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지만 바뀌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같이 한 집 살이를 하던 식구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면서 한국행 표를 샀다는 말을 덤덤히 건넸다. Working holiday visa로 이곳을 찾아 처음부터 우리 집에 들어와 7개월을 같이 살았던 친구였는데 큰 맘먹고 등록한 학원도 on-line 수업으로 대체된다는 공지에 얼마 간의 손해를 감수하고 취소하고 새로운 일자리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내린 결단이었다. ‘같이 남아서 버텨보자!!’라고 하기엔 아무것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인지라 아쉬운 마음만 표현할 뿐 더 이상 붙잡아보지도 못했다. 이제껏 숱하게 share mate들을 떠나보냈지만 여전히 헤어짐은 익숙하지 않았고 사회적 상황과 겹쳐지면서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가득하게 되었다.

 하루 종일 새로운 소식들을 찾는다는 빌미로 SNS를 뒤적거리거나 최근 접하기 시작한 YOUTUBE만 들여다보면서 소파에 누워, 침대에 누워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사재기한다며 사놓은 음식들이며, 일하던 식당에서 마지막 주방 정리를 하면서 들고 왔던 엄청난 식자재들 소비하기 위해 먹기는 또 엄청 잘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게으르게 보냈다.

 원체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걸 극도로 경계하던 나였는데 나도 모르게 젖어든 무기력감에 도저히 아무것도 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저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원하는 마음 때문인지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들에만 매달렸다. 그동안 시간 나면 하려고 미루어 두었던 다양한 삶의 과제들을 실행할 수 있는 무한한 여유가 주어졌지만 도무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느끼며 수없이 흔들렸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흘러갔고 그러다 보니 내가 보기에도 몸집이 불어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큰 맘먹고 오랜만에 체중계에 올라서니 각오를 단단히 했음에도 충격적인 숫자를 확인하며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동안 무기력하게 집 안에만 쳐박혀 움직임을 최소화한 채 지낸 시간들이 극단적으로 수치화되어 드러나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나약하게 지낼 수는 없으니...


간헐적 단식.

 정부의 여러 규제 덕분에 그동안 다니던 체육관도 문을 닫아야 했던 터라 한동안 최소한 일주일에 두어 번은 들러 땀에 푹 젖을 만큼 운동을 하던 일상도 멈춰 선 지 오래였다. 당연히 집안엔 번듯한 운동기구 하나 없는 처지라 고민을 하던 차에 예전부터 대충 알고만 있던 ‘간헐적 단식’을 우선 시작해보기로 했다. 16:8, 5:2 등등 여러 방법이 있는 단식법인데 처음부터 무리하게 시작하기보다 서서히 몸이 적응해 갈 수 있도록 14시간 단식 후 10시간 동안 음식 섭취를 하는 방법으로 먼저 시작을 했다.

 원래 일을 하던 날에는 아침을 대충 먹고 나가서 퇴근을 할 때까지 보통 12-3시간 정도를 식사를 하지 않고 지내던 습관이 있어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그래서 점점 시간을 늘려가 2주 차부터 16:8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면서 아침에 일어나 공복 운동을 하려고 하다 보니 단식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져 지금은 대충 18-20시간 정도 단식을 하고 그 외에 시간에는 음식을 섭취하고 있다.

 이제 3주 차쯤 접어들었는데 기대만큼 극적인 체중감량은 이뤄지지 않았다. 단식만 하다가 체중감량 속도가 더뎌서 간단한 운동도 시작했다. 동네 공원을 들러 가볍게 3-40분 정도 달리다 돌아와 팔 굽혀 펴기 등 간단한 맨몸 운동을 하고 있는데 체육관에서 윗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나 도움이 되는 듯하다. 체중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가장 큰 변화라고 하면 식사량이 2/3 정도 줄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자주 음식을 먹지는 않지만 한 번에 엄청난 양을 먹는 대식가였는데 간헐적 단식을 시작한 이후로는 주변 지인들이 놀랄 정도로 식사량이 줄었고 음식에 대한 과한 열정도 많이 줄어들었다.

 간헐적 단식을 시작하고 보조적인 수단으로 운동을 병행하면서 거의 매일 집 밖을 나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자 그동안 나를 짓누르고 있던 무기력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었다. 여전히 감정은 오르락내리락하고 간간이 들려오는 지인들 소식에 한동안 감정의 골에 빠져 허우적 대기도 하지만 그런 날에도 옷을 갈아입고 동네 한 바퀴 달리다 돌아오면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다.


주변 지인들의 방문과 도움.

 이번 일을 시작으로 많은 가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당장 일을 할 수 없게 된 우리 집의 사정도 좋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동안 악착같이 모아놓은 돈으로 어떻게든 한 주 한 주를 버텨가고 있지만 기약 없는 통제에 지쳐갈 때쯤 간간히 찾아오는 반가운 지인들이 있어서 새삼 이제까지의 호주 이민생활이 허투루 보낸 세월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직접적으로 경제적 도움을 주었고 같은 학교 출신의 동기들로부터 반가운 소식도 들리고 이래저래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치열한 호주 이민사회를 버티며 무뎌져 가던 감성을 자극받기는 계기가 되었다. 한동안 허우적대던 자책감 속에서도 선뜻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그들의 온정에 우리 부부가 노력이 등 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부정적인 사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큰 발판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선 나름 폭넓은 대인관계를 유지해 오다가 이곳 호주에서는 빡빡한 이민생활 마냥 대인관계도 몇십 분의 일로 쪼그라들었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나마 몇 안 남은 이 관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았다. 워낙에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민자의 삶에서 자꾸만 좁아져가는 시야와 이기적으로 변해갔던 내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나 역시 사람이 필요한 사회적 성향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와중에 깊어가는 호주의 가을.

 큰 변화 없이 소소한 하루가 반복되는 중에 facebook에 일 년 전 올렸던 사진이 기념일이라며 알림이 떴다. 확인해 보니 딱 일 년 전 그 날 그 당시 집에서 같이 지내던 동생이 급작스럽게 귀국을 하게 되어 마지막으로 같이 낚시를 갔다가 찍은 영상이었다. 그날도 그렇게 새파란 하늘이 이곳의 가을을 뽐내고 있었고 그즈음 어느 날 그렇게 눈부신 하늘을 보며 출근하던 전철 안에서 중학생 시절 체육시간에 가을 하늘에 빠져 그 시간 내내 계단에 누워 하늘만 바라보던 기억을 20년이 지난 지금 이 지구 반대편에서 추억한다며 이야기를 나누던 게 생각났다.

 계절은 성실하게 바뀌어 어느새 1년이 흘러 또다시 그 날의 그 파랬던 하늘이 되돌아왔지만 하늘 아래의 생활은 너무도 달라져있다.

 지난 주말 3단계에 걸쳐 규제를 풀어가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확진자 수도 한 자릿 수로 줄어들었고 효과적으로 질병을 통제하고 있다는 결과치에 모두가 규제완화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긴 하지만 약 세 달에 걸쳐 규제가 완화되기 때문에 완벽한 일상으로의 복귀나 일터로의 복귀는 아직 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 예정이다.

 그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 깊어가는 가을을 즐기는 것 외에 별다른 수가 없을 것 같아 내일은 1년 전 추억이 있는 그곳을 다시 찾아볼 예정이다. 일부 규제가 완화되어 외부활동에 제약이 많이 풀려난 덕분이다.

 가을을 표현하는 대부분의 수식어는 ‘풍요’, ‘풍성’ 이런 단어들인데 이번 가을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작금의 사태도 그렇고 올 초 전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장기간 이어졌던 호주의 산불과 가뭄의 여파로 많은 농산물들이 피해를 입은 상황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중학생 시절, 마냥 하늘만 보고 누워있기만 해도 좋았던 그 시절의 행복이 다시금 어서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늘은 그 날의 그것을 쏙 빼닮아 있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는 이렇게도 달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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