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뭐 별거 없더구먼?이라 생각했었다.
이곳 Sydney는 약 한 달 전부터 Pfizer Vaccine이 위험지역으로 지정된 지역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직업과 연령대에 따라 우선순위를 나누고 서서히 접종을 실시해오던 국가 정책기조가 이번 Delta 변이로 인해 뒤죽박죽이 되면서 '일단 뿌리고 보자'라는 식으로 변한 덕분이랄까? 급속도로 감염자가 퍼지고 있는 특정 지역구에 우선적으로 Vaccine을 몰아준 덕에 감히 '외노자' 신분으로 이곳에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는 나에게도 접종 예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당초 3주 간격으로 1차와 2차 접종이 이루어지던 안정된 체계는 더 이상 바랄 수가 없었다. 예방접종을 주관하는 부서가 여러 곳으로 나뉘고 접종 가능 병원 및 시설이 임시로 확장되기 시작하면서 예방접종을 예약할 수 있는 Web-Site가 얼추 헤아려보아도 네댓 개는 되는 것 같았다. 게다가 각 접종 간격이 3주, 4주, 6주에서 최대 10주까지 다양한 조건으로 설정되어 예약접수를 받고 있어 사람들의 혼선을 빚고 있지만 그마저도 예약이 쉽지 않아 한인사회에서 이쪽이 열렸다더라 저쪽이 열렸다더라 하는 소문이 돌면 너도나도 우르르 달려가 예약을 시도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격동의 시기가 있었다. 물론 AZ사의 제품은 동네 약국이나 병원에서 별 어려움 없이 예약은커녕 당일 방문 접종도 가능할 만큼 여유가 있고 의외로 꽤 많은 사람들(주로 현지인들)이 이용을 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나마 안정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Pfizer 제품을 선호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호주에서는 아직 AZ 제품과 Pfizer 제품 단 두 종류의 Vaccine만이 승인이 되어 유통이 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교차접종은 시행되지 않고 있다. 모국에서는 Janssen, Mordena 사의 제품도 승인이 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호주는 이제 겨우 이번 주부터 Moderna 제품이 반입되어 사용될 예정이다. -
앞서 이야기한 Online Vaccine 예약의 다양한 조건들 속에서 얼떨결에 간신히 1차 예약을 했다. 그것도 1차 접종이 10월 중순이었다. 다행히 며칠 후 다른 경로를 통해 두 달 정도 일찍 일정을 당겨서 1차 접종을 옮길 수 있었지만 일단 1차 접종률이라도 올려놓자는 주 정부의 정책 덕분인지 2차 예약은 10주 뒤부터만 가능하게 설정되어 있었다. 2차 예약을 해야 1차도 예약이 완료되는 설정이라서 일단 10주 간격으로 1, 2차 접종 예약을 마쳤다. '10주는 너무 간격이 길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4주 간격으로 예약을 했다느니, 6주 간격이라느니 하는 후기가 들려오니 괜시리 걱정만 늘어갔다. 그러던 중 역시 한국인의 저력은 무시 못할 것이 2차 접종을 땡겨서 예약할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되었다며 공유되기 시작했다. 불법적인 방법이 아니어서 나도 혹시나 하고 시도해 봤는데 얼씨구나 2차를 무려 6주나 앞당겨 1차 접종 4주 후로 예약을 옮길 수 있었다. 한 편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아내는 이미 1차 대상자에 포함되어 1, 2차 접종을 3주 간격으로 애저녁에 완료한 상태여서 느긋한 마음으로 1차 2차 예약에 애닳아 하는 나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어찌어찌해서 예약을 마치고 1차 접종을 완료하기 직전까지 내가 바로 그 숱하게 News에 나오는 부작용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하고 덜덜 떨었던 게 2차 접종을 위해 경기장에 도착하는 순간 기억났다. 1차 후기는 이전 글에 기록을 남겨 두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주사부위에 가벼운 근육통 외에는 아무 부작용이 없었는데 뭐 그리 떨었는지 스스로도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광활한 경기장 외부에 설치되어 있는 구조물들을 빙 둘러 아침 일찍 2차 접종을 위해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혹시나 긴 대기행렬에 시간을 낭비하게 될까 1차와 비슷하게 오전 8시로 예약을 해둔 터라 별다른 정체구간 없이 접종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한 번 했던 경험이 있다고 옷에 부착하는 QR cord 발급에서부터 대여섯 번 이루어지는 손 소독까지 나름 능숙하게 경로를 따라갔다. 여전히 활기찬 이곳 현지인들의 안내를 받으며 몇 없는 대기행렬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접종 담당 의료진과 만나 간단한 검진을 하고 1차 접종 일정을 재 확인 한 뒤 주사기가 팔뚝으로 들어왔다. 1차 때엔 수습 의료진을 만나서 주사 맞는 약에 대해 설명도 듣지 못하고 얼렁뚱땅 주사가 놓인 데다가 주사액이 삽입되는 것이 주사부위에 전체적으로 느껴지면서 통증이 있었는데 2차는 숙련된 직원이었는지 주사도 아프지 않았고 통증도 훨씬 적었다.
모든 접종 절차가 완료된 이후 경기장 내부로 모든 접종자들이 이동하여 최소 15분 동안 의료진과 함께 대기하는 절차를 끝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1, 2차 예방 접종이 완료되는 순간이었다. 별생각 없이 대기석에 앉아 있다 보니 한 여성분이 Wheelchair에 실려 이동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쪽은 30분간 대기하는 장소였는데 1차 때엔 기억에 없던 곳이라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다 순간 Pfizer 제품은 2차 접종 후 후유증이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괜시리 움찔했다. 1차 접종 때는 너무 걱정이 많았고 2차 접종 때에는 너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어느새 15분이 지나 담당자가 별 이상이 없는 사람들은 경기장을 나가도 좋다는 얘기가 들려 부리나케 일어나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기념품(?)으로 주어지는 작은 손 소독제를 잊지 않고 챙겨 들고 경기장 밖을 나서는 순간에도 별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Covid 사태 이후로 생겨난 필수 시설물 출입기록 app을 살펴보니 정확히 7시 57분에 경기장 입구에 들어서서 8시 24분에 나왔다. 채 30분도 걸리지 않은 셈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별다른 후유증은 없었다. 오히려 1차 이후에 더 통증이 심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이 오히려 걱정이 되는 심정이랄까? 아내는 접종 후 2-3일 차에 후유증이 올 수도 있다면서 주의를 주길래 살짝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
이렇게 글이 마무리되면 재미가 없지... 접종 당일까지만 해도 그런 줄 알았었다.
습관상 글을 쓴 뒤에 다음 날이나 다다음 날 한 번 글을 읽어본 뒤 매듭을 짓는터라 접종 당일의 생생한 기억을 재료 삼아 1차로 글을 써두고 그렇게 그날을 마무리하였다. 별 이상 없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줄 알았더니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달갑지 않은 증상이 슬슬 올라오는 건지 긴가민가하며 잠에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약을 먹으라고 흔들어 깨우는 것이 아닌가?
"뭐지?" 했는데 잠들어서도 계속 앓는 소리를 낸다면서 약을 빨리 먹어야겠다고 나를 깨운 것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야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지만 당시엔 별거 아닌데 약을 먹인다고 투정 부리며 약을 받아먹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깨어보니 역시나 찝찝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늘 하던 대로 아침 산책을 나서려는 순간 비로소 몸살기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억지로 집을 나섰다. 하지만 곧장 직감적으로 체력이 바닥났다는 것을 깨닫고 상점에 들러 점심 반찬거리만 사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후 본격적으로 몸이 늘어지기 시작한 거 같다. 통증이 심한 것도 아닌데 기운이 빠지면서 으슬으슬 몸살기가 있는 듯 없는 듯한 불쾌한 기분이 이어지면서 도저히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고 맥을 못 추리는 단계였다고 할까? 다행히 평소보다 든든히 밥을 먹고 소염진통제를 먹은 덕분인지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았지만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요양만 했던 것 같다. 앉아있지도 못하고 거실에 누워있다가 잠이 들고 해가지고 난 뒤 방으로 올라와 누워있다 보니 어느새 하루는 저물어 가고 있었다.
후유증이 심한 사람들은 극심한 몸살이 2-3일 동안 유지가 되고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고 하던데 이전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던 기억도 살아나고 입원 내역서를 보고 기절할 뻔 한 기억도 스쳐 지나가면서 이보다 더 악화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역시 해외에서 가장 서럽고 무서운 순간은 몸이 아플 때인 듯 싶다. 한국에 비해 최소 3-4년은 뒤쳐진 의료환경에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비용은 몇 곱은 비싼 이곳 호주의 의료시설.
그렇게 또 하루가 속절없이 지나갔다.
다행히도 후유증은 하루 만에 사라지고 셋째 날이 된 지금 100%의 수준이라고는 말 못 하겠지만 그래도 7-80%는 확실히 회복된 것 같다. 이렇게 앓고 나니 영국이나 미국에서 시행계획에 있는 Booster shot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 앓아누웠던 하루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번 예방접종이 근 10년 만에 맞는 예방접종인 것 같았다. 아내는 직업 특성상 매년 독감 예방주사를 맞고 있지만 나는 오랫동안 예방접종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강제로 외부물질을 몸 안으로 들이밀어서 아픈 게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여전히 이곳 시드니는 천명대를 웃도는 확진자가 연일 계속되고 있지만 어느새 1차 접종률이 80%를 넘었으며 예상보다 빠르게 수치가 올라가고 있어 봉쇄조치 해제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회사에서도 예정보다 일찍 복귀할 수 있을 거라며 연락이 오는 걸 보면 드디어 이 암담한 상황이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와중에 여전히 Vaccine에 대한 불만이라던가 의구심을 표하며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고 끝끝내 접종을 거부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예방 접종률에 따라 규제조치들을 해제했다가 다시 확진자 수가 폭증하고 사태가 악화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고.
과연 5년, 10년 후가 지난 다음 우리 세대는 이 날의 세태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게 될지 사뭇 궁금해졌다. 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극히 제한된 상황이라 나도 주류의 의견에 편승했지만 이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기를, 내가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하루가 응당 마땅한 처사였다고 훗날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