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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아임더 Oct 26. 2020

12. 태하전망대와 관음도

울릉도 5일차, 마지막 관광지 구경

* 이 글은 지난 4월 말, 한국에선 코로나가 종식되는 줄로만 알았던 그 시기의 여행입니다.

* 사회적 거리두기, 개인 방역을 매우 철저히 준수합니다




대충 아침을 먹고 함께 차에 올라타고 출발 한 곳은 태하 전망대. 우리가 타고 육지로 나가야 하는 배는 오후 5시로, 울릉도의 마지막을 둘러보기엔 충분한 시간이 남았기에 전날 술 자리에서 내일은 어딜 갈지에 대해 고민 끝에 내려진 목적지는 두개였다. 태하 전망대와 관음도. 관음도는 운전자인 동생이 못 가봤기 때문에 궁금하다고 했다. 자기가 온 첫날 차를 타고 울릉도 왠만한 관광지는 다 가봤는데 관음도는 그날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관광을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못들어갔었다고 한다.



관음도는 이 울릉도 망망대해에서 다리 하나로 연결 되어있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섬 이긴 하지만 어쨌든 울릉도에서 조금 거리가 떨어진 섬으로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사람이 날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가 여행했던 일정동안에 관음도에서 어떤 아저씨가 날아갔다고 사람들이 말했었다. (다행히 다치는 곳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관음도만을 못들어가봐서 가보고싶다고.



하지만 태하 전망대는 내가 가보고싶다고 주장은 했지만 가고싶은 이유는 없었다. 울릉도에 온 첫날 태하에서 현포로 넘어가는 그 무시무시한 언덕길이 시작할 무렵부터 태하 전망대라는 지명이 쓰인 도로 안내판을 보자마자 그냥 이름이 기억속에 맴돌았다. 태하라는 이름이 뭔가 다부지고 건강해 보이는 사람의 이름 같아서일까. 중성적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왠지 인디밴드 구성원 중 시원시원하고 청량하게 높은 음도 무리없이 잘 지를 것 같은 보컬의 이름 같기도 하고 인터넷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의 잊지 못한 첫사랑의 느낌인데. 그러다 나중에 나타나서 남자주인공과의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그런 사람에게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이름이라 그런지 한번 표지판에서 보자마자 기억속에 콕 박혔다.



관음도를 먼저가냐, 태하 전망대를 먼저가냐를 얘기하다 어차피 숙소를 기준으로 서로 오른쪽, 왼쪽에 있기 때문에 동선 짜기는 어려우니 어딜 먼저 가는게 낫겠냐 얘기를 하는데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현포에서 태하 전망대로 넘어가는 언덕 끄트머리에 있는 관광식품 가게가 있는데 연휴를 대비하여 물량을 많이 준비해두셨다고 들었으니 가보는게 어떻냐고 추천을 해 주셔서 태하 전망대를 먼저 가게 되었다.




관광식품 가게에 들러서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잔뜩 쓸어담아 육지로 택배를 부친 후 태하 전망대에 도착 했는데 과연 어제 관광객의 대부분이 빠져나가서인지 아무도 없었다. 주차장에도 아무도 없고, 태하전망대로 들어서는 길목에도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모노레일은 연휴기간이 끝난 후 소독 및 정비를 위해 운영하지 않는다는 말에 전망대만 올라가보기로 하고 입장 했다. 모노레일을 못타는 건 아쉽지만 이렇게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괜히 오늘 하루, 아니 반나절은 울릉도를 다 전세낸 듯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이런 나의 기대에 무색하게 산책로를 올라가는 길엔 우리뿐만 아니라 불청객이 빼곡했다.


바로 갈매기가.




사실 몇 번 언급했듯 울릉도와 독도는 독도는 우리땅 노래 처음에도 소개했듯 “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이라는 말이 철저한 고증에 의해 지어진 가사구나 싶을 만큼 갈매기가 많았다. 아마 머나먼 바다를 건너가기전에 힘을 비축해 두기엔 딱인 공간이겠지. 그런데 울릉도와 독도의 갈매기들이 정말 많은걸 보고 있으면 정말 고향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싶을 만큼 갈매기가 많았다. 탄생 군락이 있다면 울릉도겠구나 싶을 정도로.


멀리서 보는게 아니라 가까이서 새들이 많은 것은 전혀 좋은 징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가 많고, 계속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것은 좋으나, 그들이 내뱉는 똥은 전혀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전망대 끄트머리까지 올라가보았으나 머리위를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무서워 사진을 찍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가 전망대를 향해 올라가는 그 와중에도 우리 주변으로 갈매기들이 똥을 뱉고 있었기에. 우리 앞에 전날 아침 가 봤던 해안 산책로 처럼 해안를 둘러싼 길이 더 보였으나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 길의 끝까지 갔다간 백퍼센트 머리에 똥을 맞을 것 같았기에. 거기에 더불어 바람이 점점 세지고 있었다. 처음 울릉도에 온 날 바람이 너무 세 관음도에 못 들어갔다는데, 또 바람이 세져서 관음도에 못 들어갈 수 있으니 여기서 빠르게 후퇴할래? 라고 묻자 관음도를 골랐던 동생은 당연히 좋다고 말했고 지체없이 발을 돌렸다.


이 길 끝까지 가다간 백퍼 똥 맞을 예감


바람이 세지고 있어서인지 내려가는 길이 더 험했다. 바람이 없다면 갈매기 똥이 갈매기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그나마 수직으로 떨어지겠으나, 바람이 분다면 액체이기 때문에 바람의 방향에 따라 여기저기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 하늘도 한번 힐끔, 앞길도 할끔 하며 천천히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중인데 갑자기 앞장서서 걷던 동생이 아, 맞다 여기선 이 경치 꼭 봐야해요 라며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어디? 라며 반사적으로 돌아본 곳엔




테라포트가 해안대를 가득 메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테라포트가 잔뜩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바다가 파도가 상당히 거친데 태하 전망대, 태하 등대가 있으니 테라포트를 잔뜩 깔았겠거니 하면서도 이 경치는 이렇게 올라와야지만 보이겠구나 하는것에는 동의했다. 테라포트의 크기를 넘어서 구경 하려면 전망대 높이 정도는 올라와야겠지.


오, 하면서 사진을 찍는 나를 보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여기가 스팟이라고 알려주더라구요! 라며 정보를 알려주는 동생이 조금은 귀여웠다. 이 곳에서 사진 찍으라고 알려줘야지 하고 체크하고 있다 알려줬을텐데, 자기도 울릉도는 처음이면서 알려주는게 기특하고 고마웠다.




갈매기 똥을 피해 정신없이 주차장으로 들어와 관음도에 주차장에 도착 하자마자 해안도로에 앉은 갈매기가 우리를 반겼다. 어딜가나 오늘은 갈매기가 보이려나보다. 그런데 뭔가 사진찍어달라는 듯 뒷태를 보이는 갈매기를 보니 웃겨서 사진을 찍었다. 도망가지도 않고 앉아있는 것을 보니 관광객의 관심을 먹고 사는 관종이긴 한 모양.


관종 갈매기



관음도 입장권 판매소로 걸어가서 입장 티켓 발권을 기다리며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것을 둘러보다 알았는데, 이 관음도 앞이 갈매기 군락지구나 싶을 만큼 갈매기들이 빼곡히 앉아있었다. 왜 오늘따라 갈매기가 많이 보여? 가 아니라 우리가 갈매기 군락지로 걸어들어왔으니 많이 보일 수 밖에. 갈매기들이 심심한 하늘의 한 점 구름이 되고싶은 양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모자를 쓰고 나왔어야했는데 싶었다. 갈매기들이랑 함께 여행하려면 내가 대비를 해야했는데



갈매기가 어쨌든 관음도로 들어가는 다리를 가기 위해서는 한참을 걸어올라가야했다. 한참을 걸어가도 끝이 보이지 않아 왜 얘랑 여행 하고 나서는 계속 등산을 하는걸까 하는 생각을 할 무렵, 다리가 나타났다. 다리에 가는 길엔 또 갈매기가 한가득이었다.


끊임없이 보이는 갈매기를 보다가 갈매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일이 또 있었나. 이렇게까지 도망 안가는 새였나 하는 생각을 하다 생각났다. 갈매기가 비둘기보다 더 얼굴이 두꺼운 새였지. 작년에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도망 가기는커녕 오히려 내 뺨을 때리고 갈매기가 샌드위치도 뺏어간 적 있었지 하는 것 까지 생각나니 갈매기가 갑자기 푸드덕 하며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접기로 하고 길이나 가기로 했다. 나한테 피해만 안끼친다면, 또 뺨때리고 날아갈 것만 아니라면 너는 거기 있어라. 나도 갈 길 가겠다.


그렇게 관음도에 들어가게 되었다.




보통 관음도에 들어오면 울릉도의 푸른바다를 마음껏 볼 수 있어서 경관이 아름답다곤 하지만 내가 들어간 이 날은 아침부터 날이 흐려서인지 푸른바다가 아닌 회색빛 바다였다. 이제 울릉도 마지막날인데 이럴꺼야? 라며 들을 대상 없는 타박을 마음속으로 하며 관음도 전망대를 모두 돌아보는 코스로 돌아보기로 하고는 관음도를 둘러보기로 했다.




날이 흐려서인지 관음도를 한바퀴 둘러보는데 바람이 정신없이 몰아쳤다. 안그래도 울릉도에 며칠 있으며 울릉도 바람의 맛을 여러 번 봤는데 이번엔 울릉도도 아닌 울릉도에서 떨어진 섬 꼭대기에서 바람을 맞으니 거 참 이렇게 마지막까지 바람으로 싸대기까지 때릴 일인가. 하며 울릉도 바람을 마지막까지 고스란히 맞고 있는데, 생각 없이 고개를 들어보자 거센 바람 덕분인지 구름이 잔뜩 껴 있던 하늘에서 어느새 구름이 조금씩 밀려나고 있는게 보였다.


밀려나는 먹구름


관음도에서 볼 경치는 관음도의 자연경관도 있고, 관음도와 울릉도 사이에 있는 바다의 색깔도 예쁘지만 관음도 꼭대기에 오르면 울릉도의 북쪽에서 보이는 왼쪽 오른쪽이 너르게 보인다는 점 아닐까. 그리고 바람이 많이 불고 구름이 꼈다고 투덜 거린 것과는 달리 바람이 많이 불어 구름이 조금씩 밀려가자 왼쪽은 구름이 밀려나 푸른 산이 보이고, 오른쪽은 바람이 불지 않아 여전히 구름이 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신이 된 기분이었다. 별 건 아니지만.



같은 울릉도인데도 어느쪽은 바람이 세게 불고 어느쪽은 안불어서 이렇게 다른 상황일 수 있을까. 그것도 신기했지만 그걸 이렇게 멀리서 지켜보고 있자니 날씨를 관장하는 신, 혹은 멀리서 울릉도를 굽어보는 신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대자연을 이렇게 멀리서 제 3자의 입장으로 굽어볼 수 있을 일이 있을까. 보통은 엇 여기까지는 바람이 불었는데, 이 구간을 지나니 바람이 안 분다. 라거나 아까 출발할 땐 추웠는데 여기는 온도가 훨씬 높네 따위의 직접 그 풍경, 순간 속에서 겪는 것이 아닌 이렇게 멀리서 보고 있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관음도에서 볼 거리는 다 봤다.


관음도에서 기념사진까지 야무지게 찍고 내려오는 길, 관음도와 울릉도를 잇는 다리에 오니 원래 여기도 사람 많았겠지? 사람 없을 때 와서 좋구먼~ 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내려오다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사람이 없는 때에 올 수 있는게 운 좋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동생의 눈치를 슬그머니 보고는 부탁했다. 나 여기서 드러누워서 사진 찍어도 되겠냐.

네?



아무도 없을 때니 사람들이 있으면 부끄러워서라도, 아니면 뒤에 사람들이 같이 나올게 싫어서라도 다른 사진을 찍었을 텐데. 이럴 때 맘껏 사진 찍어야지. 하며 당장 드러누웠다. 다행히도 이 사진을 찍고 난 후에도, 찍기 전에도 아무도 지나가지 않아서 나만의 관음도 사진을 잘 건진 것 같다.


그렇게 울릉도에서의 공식 관광지 여행 (?)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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