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마살아임더 Dec 23. 2020

타이베이에서 근대의 시간을 만나다

2016년, 베이먼 디화지에 거리

나는 해외에 나가면 한국인을 만나는걸 꺼리는 편이다. 한국인이 없다는 관광지만 골라가기도 하고, 음식점도 한국인들의 추천보다는 구글맵을 애용하는 편. 그래서 내가 타이베이의 디화지에 거리를 고른건 그닥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으리라.


사실 디화지에 거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방금 한 말과 역설적 이게도 여행 가이드북 에서 본 짧은 문단 때문이었다. 방금전에 여행 가면 한국인들 만나는걸 꺼린다고 하더니 왜 가이드북을 선택했냐, 라고 묻는다면

2016년 처음 대만을 여행 할 당시, 이 대만 여행이 내가 한 첫 자유여행이었던데다가, 주변에 대만을 갔다온 사람도 없고 인터넷에 찾아봐도 뭔가 이렇다! 할 정보를 찾기는 조금 어려웠다. 비록 영화 한 편을 보고 꽂혀서 가는 여행이지만 기왕에 가는 만큼 많은걸 보고 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많은걸 보고 오고 싶긴 하지만 남들과 같은 코스를 가고 싶지 않은 나에게 블로그에서 많이들 언급하는 코스는 고려 대상에서 멀리 있었으니. 큼직하게 어딜 가야하는지를 파악하고 싶어 가이드북을 한번 훑어볼 생각으로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가이드북을 뒤적거렸었다.


내 기억으로는 한 가이드 북에서 타이베이 디화지에 거리는 베이먼 역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야 나오는 대만의 전통 시장거리로 생각하면 되는데, 이 디화지에 거리 자체가 근대 대만 시기의 유물들이 많이 남아있기에 전통 시장 구경도 하고, 근대 시기의 대만을 엿볼 수도 있으며 월하노인의 사당도 있고, 따다오청이라는 작은 항구가 있다는 말에 흥미가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 마주한 디화지에 거리는, 과거의 대만 모습이 나에게 걸어와 말을 거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나는 시장, 슈퍼마켓을 좋아한다. 특히 해외여행을 가서는 더더욱.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의식주의 모든 것이 다 담겨있는 곳이라 생각 하기에 슈퍼마켓, 시장을 좋아한다. 그들이 즐겨먹는 간식은 무엇인지, 어떤 식재료를 쓰는지 주로 먹는 것은 어떤 것인지 하다못해 우유는 어떤 것을 마시는지 술은 어떤 종류를 파는지. 슈퍼에 팔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생필품들은 무엇이 있는지, 시장에서 파는 것은 무엇인지 이들의 삶의 기저에 깔린 것들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여 상당히 좋아한다.


여행을 하면서도 관광지 보는 것도 좋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반사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는 일이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접점을 찾아내는 것을 해서 그런가.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그렇게 재밌었다. 여행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정말 수박 겉핥기에 가깝고 한없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음에도. 그들이 가진 이야기가, 그들이 골목에, 길목에 담고 있는 이야기가 나는 그렇게도 궁금했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그들의 삶이 가장 진하게 묻어 나오며 삶의 모든 소비가 드러나는 슈퍼마켓 혹은 시장이 그렇게 재밌었다.


재래시장이라더니, 정말 약령시에서 보던 것들을 팔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이런 대만의 과거가 강하게 묻어있는 곳은 너무 흥미로웠다. 이 나라의 시장은 이렇구나, 예전 이곳은 이런 모습이었겠구나. 하는 것들이 한국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건축 양식을 가진 공간에서 구경하자 상당히 실체감 있는 모습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가게가 있어 들어가 구경 하면 양장점을 하던 집인지, 근대시기의 양장이 진열 되어 있고,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아낌없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고, 혹은 예전에 썼을 법한 빈티지한 물건들을 파는 가게, 약재를 파는 가게 등 확실히 한국에서는 잘 못볼법 한, 타이베이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런건 안 팔겠다 싶은 것들로 가득 찬 길거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근대 시기의 대만이 가득찬 길이 이어지는 시장의 중간엔 따다오청이 있다. 딱히 뭔갈 보고싶어서 갔다기보다는, 타이베이 옆을 흐르고 있는 강, 그리고 단수이까지 이어진다는 그 강이 궁금해서 보러간 것이었다. 단수이까지 이어져 있다는 그곳이 일몰도 예쁘다고 하니 예쁜 일몰을 볼 수 있을까 하여.



하지만 내가 따다오청에 들어서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래서 일몰은 고사하고, 강가 근처에 햇빛을 막기 위해 설치한 가림막 밑에서 비를 피하기에 바빴다. 여행 하면서 비가 오는 상황을 많이 겪어보지 않은데다가 해외여행을 하며 비가 온 적은 이 때가 처음이라, 상당히 벙 쪄서 가림막 아래서 비가 내리는 타이베이를 구경했었다.



이제까지 내가 디화지에에서 본 풍경은 옛날 대만 모습을 볼 수 있는 풍경들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비가 찾아오니, 이 곳에서 비가 내리고 내가 따다오청을 나가면 갑자기 옛날 대만 모습이 펼쳐져 있으면 재밌겠다 같은 실없는 판타지물스러운 상상을 하다보니 어느새 비가 그쳤다. 그리고 다시 디화지에 거리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비가 오는걸 보니 일몰을 보는건 못할 것 같아서. 그리고 비에 젖은 디화지에 거리를 걸어가고 있자니, 나는 근대의 대만이 어땠는지, 그리고 대만이라는 나라는 처음 와 보는 나라지만 이것 저것 볼 거리가 여기저기 숨겨져 있는 나라구나, 갑작스러운 비 마저도 그냥 이 나라에서 겪을 수 있는 하나의 재미로 느껴질 수 있는 점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옛날 길을 다시 걸었다.



이후 나는 디화지에 거리 자체에 더이상 흥미를 못 느껴서 더는 가 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타이베이의 갈 곳들에 대해 꼽아보다 보면 디화지에 거리가 함께 생각난다. 이상하지, 그 길에서 내가 한 것은 딱히 없이 구경만 하다 비를 피했고, 빙수를 먹은 것 뿐인데.

하지만 이상하게 계속 곱씹게 되는 길들이 모인 나라, 그게 대만의 매력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우펀, Always with m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