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오슝
여행 하는 나라에서 기차를 타 본적이 있는가? 기차를 타고 그 나라의 땅덩어리를 바라보고 있자면 여행와서 또 다시 여행을 가는 느낌이 든다. 시베리아를 여행 할 때도 그랬지만, 내가 익숙하다고 느낀 대만에서 더욱 여행왔으면서 더 여행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대만 가오슝을 여행 하기로 하고 비행기를 타고 가오슝 공항에서 내리는 것이 아닌 타오위안 (타이베이) 공항에 내려 가오슝까지 기차를 타기로 한 것은 그냥 궁금해서였다.
나는 해외 여행하며 이동수단으로 기차를 택해본 일이 잘 없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타 봤고 유럽 여행을 할 때 나라간 이동을 하기 위해 야간기차를 타 본 적은 있지만 그 외에 대부분의 여행에서는 기차를 타고 지역을 이동할 일이 없었다. 아무래도 직장인이기에 며칠 밖에 가지 않는 여행이라 최대한 동선을 줄여야했기 때문.
그렇지만 같은 해, 몇 달 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처음 가는 나라를 횡단하고 나니 남의 나라에서 기차타는 일에 자신이 생겨서인지 가오슝 까지 기차를 타고 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만을 그렇게 많이 가 봤는데 그 나라에서 할 수 있는 다른 경험도 해 보고 싶었고.
타오위안 공항에서 가오슝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은 간단한데 은근 헷갈린다. 타오위안 공항에 내린 후 공항 철도를 타고 타오위안 기차역까지 간 다음 가오슝 행 기차를 타야했다. 공항이랑 기차역이랑 이름이 같길래 같은 부지내에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
2017년 부터 타오위안 공항까지 공항철도가 생겨서 한번도 타본 적 없지만, 원래는 타이베이 도심에서 타오위안 공항에 가려면 기차를 타고 가야했었다는게 생각났다. 공항에서 타오위안 기차역까지의 여정이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경험이니 복잡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이런 복잡한 기차역까지의 이동 경로에 대해 헤매지 않고 찾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얼마나 스스로를 기특하게 하던지.
대만 내의 고속철도 티켓은 K*Day, KL**K과 같은 여행관련 사이트나 티켓이나 바우처를 판매하는 여행사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다.
외국인 전용으로 파는 고속철도 티켓은 현지인보다 훨씬 저렴하게 판매하고, 대만 내에 있는 고속철도 모든 역에서 사용 가능하기에 상당히 쏠쏠하다. 편도 티켓 외에 3일권과 같은 사용 일수에 따른 이용권도 판매하고 있으니 본인에게 맞는 방식을 택하면 된다.
나는 3일권을 사용하기엔 애매한 일정이었기에 편도 티켓으로 구매한 후 기차역 매표소에서 실물 티켓으로 바꾼 후 플랫폼에 내려가서 기다렸었다.
타오위안 공항에서 타오위안 기차역 플랫폼까지 무사하게 온게 얼마나 뿌듯하던지. 열차가 들어오고 열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자리를 둘러보았다.
고속철도는 2-3 좌석구조로 되어 있었고 실내가 매우 쾌적했다. 살짝 추울 정도로. 가오슝에 도착해서 내렸더니 피부가 짜릿해질 정도의 냉방이었다.
타오위안에서 가오슝까지는 두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내가 한국에서 대만까지 비행한 시간이 두시간 반인데, 다시 두시간 반을 이동해야한다니 누군가가 봤으면 시간낭비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도 예전엔 여행을 가면 최대한 하나라도 더 봐야한다고 생각해서 종종거리며 돌아다녔었다. 그런데 대만이라 그런건지,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어느 순간 나를 비롯한 주변인들까지도 나에게 있어 대만을 도피처, 안식처로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걸까. 왠지 언제 다시 오더라도 이 자리에서 기다려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여행지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여유를 부리고싶어진다. 이 지구상에서 내 나라인 한국을 제외하면 내가 가장 많이 방문한 나라라서 그런가보다. 이상하게 대만에 오면 마치 오랜 친구가 사는 옆동네로 놀러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익숙함에서 새로움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기차를 고른 것도 한가지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지하철이나 기차에 타면 저 사람들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나랑 같은 열차를 타고 여행할까 따위가 궁금해진다. 내 사유는 알고 있지만, 남들도 나와 같은 이유인지. 혹은 정장을 빼입은 사람을 보면 경조사인건지 아니면 어떤 사유인건지 등등이 궁금해진다. 대만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나의 나라가 아니라 그런건지 이 시간에 이 열차를 탄 이유는 뭘까가 궁금했지만 그 명확한 추측은 되지 않았다. 이게 바로 해외에서 여행하는 매력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내려둔 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점.
같은 줄에 앉은 사람들을 구경하다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창밖에는 대만의 푸른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 경치 역시 기차가 아닌 타이베이에 있었다면 몰랐을 풍경이겠다. 비행기를 타고 그 도시 공항에 직접 내렸다면 보기 어려웠을 풍경일 것이다. 그 낯선 경치를 보고 있자니 내가 친한 친구가 사는 옆동네로 놀러온 것이 아닌 여행을 와 있는게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끔씩, 한번은 익숙한 나라에서 기차를 타 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