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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전시 리뷰

크랙: 질병, 탈피, 코드

주슬아 개인전: 크랙 Crack(미학관)

by 정윤선


프로그램을 삭제하다가 컴퓨터가 꺼져서 프로그램이 완전하지도, 삭제되지도 않은 상태가 된 적이 있었다. 프로그램에 내재되어 있던 '스스로를 삭제하는 규칙'은 프로그램을 삭제하는 과정에서 일부 손상되어 버렸다. 삭제를 재시도하면 오류가 뜰 뿐이었다.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도 삭제되지도 않게 된 이것은 이제 프로그램이라기보단, 훗날 디스크 조각모음 과정에서 색색의 조각들에 밀려나게 될 프로그램의 찌꺼기들에 가까웠다. 하지만 언젠가 삭제될 운명이라고 해도, 그 순간 이 찌꺼기들은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구조의 규칙과 감시를 잠시 벗어났던 것 같기도 하다. 셧다운이라는 우연한 계기로 프로그램은 0과 1, 설치와 삭제, 가동과 가동 불가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이진법의 세계를 이탈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라는 프로그램의 이용자는 그 찌꺼기들이 어디에 있는지, 그 찌꺼기들이 부유하는 공간의 폭과 깊이가 어떤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주슬아의 개인전 《크랙 Crack》(미학관, 2025. 8. 15 - 9. 14)은 이진법의 세계를 이탈한 찌꺼기들과 찌꺼기들이 부유하는 공간, 그리고 그 찌꺼기들이 다시 시스템에 포착되고 그 안으로 종속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에는 업데이트되지 못한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업데이트되지 못함으로써 시스템 밖으로 배제되지만, 그 배제를 통해 시스템 밖을 경험하고 시스템을 이탈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전시는 인간의 몸이 업데이트의 대상이 되는 《크랙 Crack》의 세계관에서,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 크랙병을 앓고 있는 '하진'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은 '갈라지다'라는 의미의 동사이자, '균열'이라는 의미의 명사이기도 한 '크랙 crack'이라는 단어가 이 작업의 세계관에서 가지는 의미를 통해 전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서는 '크랙'을 질병, 탈피, 코드라는 세 가지 의미로 해석한다.


전시장의 입구 우측에는 두 점의 드로잉 작업 〈미정〉이 놓여 있다. 이 드로잉들은 작가가 자신의 몸을 3D 스캔한 후 모델링한 형상과, 그 모델링한 형상을 펼친 전개도를 종이에 출력한 것이다. 작가는 이 전개도의 도면을 실제 신체 비율에 맞춰 종이로 다시 출력한 뒤, 종이 모형으로 접을 수 있도록 오려서 벽면에 부착했다. 바닥의 세 귀퉁이에 놓인 영상 플레이어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영상 작업 〈크랙 Crack〉을 동시 상영 중이다.

ㅤㅤ중심에 위치한 3D 폴리모프를 덧댄 철사 뭉치 〈뼈와 살 Bone and Fleshes〉은 전시 공간의 가운데에서 뒤집어 놓은 새 둥지처럼 반원 형태로, 철사 뭉치가 흐물거리면서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창 쪽에 쌓여있는 작은 책 『크랙: 업데이트를 할 수 없습니다. Crack: Do not Updates.』는 '하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주슬아의 단편 소설을 담고 있고, 옆에 놓인 '하진'의 머리 모양을 한 〈잘린 머리 Offering〉는 연결된 말풍선을 통해 "크랙 crack / 업데이트 불가 / 구식인간"이라고 말한다. 공간의 가장 안쪽 모서리에 놓인 〈If you like This Please Buy It〉은 제목의 문구를 그대로 적은 표지판을 통해 안내와 경고 사이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 앞에는 3D프린터로 출력한 한입 베어 물은 과자 모양의 〈크래커 Cracker〉가 놓여 있다.


《크랙 Crack》 전시 전경, 사진: 작가 제공



1. '질병'으로서 크랙


(1) 정상성을 강화하는 비정상적인 몸


『크랙: 업데이트를 할 수 없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하진'은 중앙서버가 인류를 관리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인간은 가장 효율적이고 최적화된 상태로 유지되기 위해, 중앙서버에서 공급하는 업데이트를 주기적으로 실시한다. 업데이트를 유지하며 플래시(Flesh) 상태로 살아가던 '하진'은 어느 날 자신의 손등이 갈라지면서 희미하게 뼈가 보이는 것을 발견한다. 말 그대로 피부에 금이 가는 크랙병에 걸린 것이다. 그는 크랙이 생겨 업데이트를 받을 수 없는 몸이 된 후, 다시 플래시가 되기 위해 불법적인 어둠의 경로로 업데이트를 하려 시도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해 결국 뼈만 남은 본(Bone)이 된다. 그의 몸에 생겨난 크랙은 그를 어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자신과 비슷한 크랙병을 가진 존재들 본 1, 본 2, 본 3을 만나게 되고, 이들과 함께 본을 배제시키는 시스템을 붕괴하는 혁명을 꿈꾼다.

ㅤㅤ'하진'은 "이용자의 업데이트 상태가 정상 범위를 벗어났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이 메시지는 이들이 시스템의 관리와 통제의 범위를 벗어난 존재라는 점뿐만 아니라, 시스템이 계속해서 업데이트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크랙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 즉 시스템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세계 안에서 계속해서 잉태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크랙병 환자들의 주치의는 업데이트할 수 없는 존재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거나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 이 사회는 시스템에서 감당할 수 없는 통제의 범위를 벗어난 존재들을 은폐하기 위해 그들을 시스템 밖으로 배제하여, 결핍과 낙오가 없는 명쾌하고 효율적이며 깔끔한 상태를 유지한다.

ㅤㅤ업데이트된 플래시들은 과거 버전의 인류인 본들과 다른 언어를 쓰기 때문에, 시스템 밖에 있는 본들은 그들끼리만 소통할 수 있다. 없는 존재나 다름없는 이들의 언어는 사어(死語)다. 하지만 이들은 소설 속에서 역으로 오직 본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사어를 통해 네트워크 해킹을 시도하고, 시스템의 결함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이 관리와 통제의 범위 밖에 있는 존재라는 것은 그들만이 가진 개별성과 특이성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의 상태는 어떤 가능성을 의미하지만, 이들의 가능성은 시스템의 세뇌를 통해 '취약함'으로 규정된다. 본들은 그 취약함에 대해 수치스러움과 무기력을 느끼며 마치 감염병에 걸린 듯 숨어 살아야 한다. 크랙병을 겪는 몸들은 희박한 성공 가능성에 도박을 하듯 전 재산을 걸어서라도 업데이트를 받아 정상성을 가진 주류 인간이 되려 애썼지만, 도박판에 건 희망은 어느새 뿌리 깊은 회의로 변질되고 말았다. 마치 없는 존재처럼 비가시화되고, 비정상적 상태로 낙인되고, 발화할 수 없는 존재로 분류된 본들은 크랙을 통해 질병화되었다. 이처럼 감당할 수 없는 존재들을 질병군으로 분류하여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방법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존재를 지우면서 시스템의 통제력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질병으로부터 멸균된 사회 속 플래시의 정상성을 강화하는 효율적인 수단이 된다.



2. '탈피'하는 몸


(1) 껍질을 벗은 유연한 몸


여기서 '하진'의 몸을 변화시키는 크랙은 일차적으로 내부의 균열을 의미하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 보자면 플래시로 불리는 살, 뼈를 둘러싼 껍질을 벗어내는 탈피로 볼 수도 있다. 본들처럼 뼈만 가진 몸을 몸의 기준으로 본다면, 살은 본체를 감싸는 껍질이다.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하고 곤충이 변태하면서 껍데기를 벗고 나올 때 변한 것은 그들의 몸뿐이지만, 그들은 변화된 몸으로 생애의 새로운 시기를 살기 시작한다. 비록 가장 약하지만 원래의 상태를 벗어나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상태가 된다. 여기에서 '약함'은 타자에 의해 규정당한 낙인으로서 취약함이 아닌, 부드럽고 유연한 상태로서 '약함'이다. '하진' 역시 몸에 크랙이 생기면서 시스템 안에서 배제되고 약한 존재가 되었지만, 그 균열을 통해 자신을 폭신하게 감싸고 있던 살을 벗어내고 혁명을 상상할 수 있는 유연한 존재가 된다.

ㅤㅤ업데이트된 몸은 얼핏 과거의 껍질을 벗어내고 새로움을 얻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업데이트의 과정에서 그들의 개별성이자 고유성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을 삭제당했다. 업데이트된 몸이 새로움이라는 명목하에 한없이 공허해질 때, 크랙화된 몸은 껍질을 벗으며 오히려 가장 약한 상태에 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약함으로부터 혁명이라는 강도(strength)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ㅤㅤ그뿐만 아니라 '하진'은 폭신하게 자신을 보호하던 살을 잃어버림으로써 그동안 배제되어 살아왔던 존재들을 인지하게 되었다. 비록 자신이 원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는 본이 되어감으로써 비로소 시스템의 선택적인 배제와 감시, 통치를 인지하고 여기에 저항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대항하는 공동체와 조직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크랙은 '하진'의 몸을 가장 약한 상태로 만들었지만, 시스템 속에 있었을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을 상상하고 실행할 수 있게 했다.


(2) 계량화된 몸을 걷어내기


〈살의 지도 Topography of the Body〉에서는 인간의 몸이 데이터로 변환되면서 개별성이 증발되는 상태를 목격할 수 있다. 전시 공간의 벽면에 부착되어 바람에 흔들거리는 검은 종이들은 그 전개도를 출력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몸을 3D로 모델링한 후 그 모델의 표피를 펼쳐 전개도를 만들었다. 이 전개도는 몸을 육각 혹은 원기둥처럼 단순화하는 그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몸이라고 인지할 수 있는 형상을 수많은 교점과 교선을 따라 파편화하는 그림이다. 3D로 모델링된 몸은 그 몸이 누구의 몸인지 어떤 특징을 가진 몸인지 알 수 없게 하고, 파편화되어 펼쳐진 몸은 그 그림의 원본이 몸이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게 한다.

ㅤㅤ이 작업은 물리적인 신체를 3D 모델로 스캔해 데이터로 변환한 후, 데이터가 된 몸을 다시 물리적 공간에 물성을 가진 종이로 변환한 결과이기도 하다. 몸이라는 물질을 데이터로 만든 후, 그 데이터를 다시 물질로 만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원상복구'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재하는 몸을 데이터로 입력시키고, 입력된 데이터를 프로그램이 인식하고, 인식된 데이터를 다시 물리적 세계에 머무를 수 있는 상태로 변환시키는 과정에는 무수한 오차와 오류가 있다. 스캔되고, 도면화되고, 배치되면서 계량되기를 거듭한 몸은 물리적 세계에 도착했을 때 이미 몸이 아니게 된다. 때문에 작가가 만든 전개도를 따라 종이를 접어 모형을 만든다면, 무수한 교점과 교선으로 인해 상상하지도 못한 형상을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러한 변환의 과정을 통해 어떤 대상을 데이터로 치환하고, 데이터를 물질로 치환하는 것이 때로는 폭력적이 될 수도, 때로는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여러 몸 중에서도 특히 자기의 몸을 계량화해 몸의 껍질을 벽면에 배치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시스템의 주체가 된 듯 자기의 몸을 계량화하다가, 그 껍질을 벗어냄으로써 그 계량화된 몸을 한 겹 걷어낸다. 비록 그 껍질이 손톱이나 각질처럼 다시 돋아나게 될지라도 말이다. 시스템의 통치 아래 놓인 주체들은 매 순간 감시되고 계량되지만, 때때로 그 기준과 규칙을 반추하고, 그것을 자기 몸에서 걷어내기도 한다. 계량화된 몸의 껍데기를 벗어내 관람자들과 함께 보도록 전시를 구성한 작가는 '하진'과 본들이 그렇듯 자신을 감싼 살을 걷어내고 약한 상태가 되어, 배제된 자들과 함께하는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3. 시스템을 붕괴하는 '코드'


(1) 취약함은 당신의 책임이 될 것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운영체제의 업데이트 알림을 기억해 본다. 프로그램은 업데이트를 권장한 이후, 어느 시점이 되면 구버전 지원을 종료한다. 그 시점으로부터 지원이 종료된 구버전 프로그램은 보안에 취약해진다. 지원 체제에서는 더 이상 구버전에 대해 발생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도,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지원이 종료된다는 것은, '무슨 문제가 생기든 업데이트를 안 한 당신 책임'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신자유주의적 현실과 중첩된다.

ㅤㅤ전시장에서 읽을 수 있는 "If you like this Please Buy it"라는 문장은 무언가 원하면(p) 돈으로 사라(q)고 말한다. 거꾸로 이 명제의 대우를 생각해 보면, 사지 않으면(~q) 원하지 않은 것(~p)이 된다. 명제가 참일 때 그 명제의 대우 역시 반드시 참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어떤 논리적 오류도 없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옳은 이 명제 속에서 '살 수 있는 자본이 없는 존재'는 상상될 수 없다. 따라서 소유하지 못한 것은 내 선택의 결과이자, 나의 책임이 된다. '하진'이 받았던 "빠른 시일 내에 업데이트를 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메시지는 사회가 논리적 오류가 없는 명제를 통해 '선택할 수 없는 존재들'을 의도적으로 상상하지 않듯이, 업데이트를 선택할 수 없었던 '하진'에게 업데이트의 선택권을 주는 척하면서 모든 책임을 그의 선택의 결과로 만든다.

ㅤㅤ선택권을 주는 척하면서 배제를 수행하는 시스템의 방식을 눈치챈 존재들은 서로 크랙병의 표식을 감지한다. 본들은 그들끼리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들끼리 본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한다. 그리고 지난한 소외를 끝내고자 주류화된 이들의 세계를 혁명을 통해 뒤바꾸려 한다. 하지만 비주류의 존재는 주류를 대항하기에 역부족이다. 시스템은 그들의 혁명을 감지하고 신속히 대응하며, 망설임 없이 그들을 처형한다. 그리고 처형된 본들의 신체는 시스템에 내재한 결함을 보완하고,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었던 대상을 인지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하는 데이터로 유용하게 사용된다. 결국 비주류로서 이질적인 몸이 가졌던 혁명의 가능성은 주류 신체들의 업데이트를 위한 자원으로 재활용되고, 시스템은 더 견고하고 철저한 감시와 통치를 수행한다.

ㅤㅤ탈피로서 풍부한 변화의 가능성을 가졌던 크랙화된 몸은 다시 시스템 안으로 흡수된다. 이들은 스스로 업데이트를 거부하고 혁명을 일으킨 자들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처형과 재활용은 합리화된다. 취약함으로 간주된 개별성은 배제되고, 배제된 자들은 혁명을 수행하며, 그 반역은 응징된다는 각본의 연극이 자연스럽게 상연된다.


(2) 시스템을 해킹하는 코드


"If you like this Please Buy it", 사실 이 문장에는 또 다른 맥락이 있다. 이 문장은 유료 프로그램을 설치할 때 필요한 시리얼 넘버를 자동 생성해 주거나, 시리얼 넘버를 입력한 상태로 패치해 주는 프로그램 '크랙'을 사용할 때 뜨는 문장이다. 만약 이 프로그램이 마음에 든다면 '정식 버전'을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ㅤㅤ작업의 세계관에서 '크랙'은 '질병'임과 동시에 '탈피'였다. 또 다른 의미로, 크랙은 실제로 프로그램을 설치할 때 시리얼 넘버를 생성해 주거나 입력한 상태로 패치해 주는 프로그램인 '코드'다. 프로그램은 정해진 시리얼 넘버를 입력해야만 설치된다는 규칙을 가지고 있다. 크랙은 이 규칙을 교란해 시스템의 질서를 붕괴한다. 일상에서 크랙이 그렇듯, 작업에서도 크랙은 시스템을 붕괴하는 해킹 코드라고 할 수 있다.

ㅤㅤ소설 속에서 크랙화 되어가는 본이라는 존재들은 그 자체로 시스템을 붕괴하는 코드가 된다. 시스템은 그 존재들을 사회에서 질병화된 존재로 배제시킨다. 그 배제에 대한 반발로서 본들의 혁명은 비록 성공적이지는 못했을지라도, 또 다른 차원에서 시스템을 붕괴하는 코드로 작용한다. 〈살의 지도〉에서 보여주었던 계량화된 몸의 데이터 역시 시스템 속에서 인간의 몸이 평균을 도출하기 위해 측정되고 계량되며, 관리되는 대상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며 시스템의 규칙을 폭로한다. 그리고 이 전시 역시 현실에 대한 하나의 해킹 코드가 될 수 있다.


《크랙 Crack》 전시 전경, 사진: 작가 제공



4. 본과 플래시 사이, 오류가 가득한 중간 지대


작가는 전시장 곳곳에서 소설의 내러티브와 작가의 행위, 작품의 형식을 통해 시스템을 해킹한다. 전시장이라는 자율적인 공간 안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실패하고, 반복된다. 그렇다면 이 작업들의 메시지는 단순히 혁명을 일으키자는 것이 전부일까?

ㅤㅤ"If you like this Please Buy it"가 쓰인 표지판 앞에는 한입 베어 물은 과자 모형의 3D 프린팅 작업 〈크래커〉가 놓여 있다. 이 작품의 제목 '크래커'는 중의적이다. 동사 'crack'을 수행하는 자로서 크래커(cracker)라고 읽는다면, '크래커'는 시스템을 붕괴하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크래커라고 불리는 과자가 그렇듯 '크래커'는 붕괴되는 대상을 의미할 수도 있다. 즉 '하진'을 비롯한 주체들은 크랙이라는 균열이 발생되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크래커를 베어 물듯이 시스템을 크랙킹하는 주도적인 행위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중의적 명제는 '하진'과 같은 주체가, 하나의 지배적인 시스템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ㅤㅤ불법 업데이트 기술 센터 혹은 중앙서버의 서버룸, 그것도 아니면 본들의 거점일까? 무엇을 감싸고 있었을까 상상하게 하는 뒤집어 놓은 새 둥지 같은 〈뼈와 살〉, 그리고 이 작품을 이루는 철사와 철사를 감싼 3D 폴리모프는 소설 속 세계관의 '플래시'와 '본'이라는 두 가지 상태와 얼기설기 관계를 맺는다. 작업의 맥락 안에서 여러 가지를 의미할 수 있는 뼈와 살의 비유를 가장 멀리까지 확장해 본다면, 뼈를 '개인'으로 살을 '시스템' 혹은 '세계'로 비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관계 안에서 둘 사이를 조심스럽게 오가며 '살이 벗겨진 뼈'와 '뼈를 둘러싼 살'을 제시하는 작가는 뼈와 살 사이의 중간 지대를 전시장 곳곳에서 심어 두었다. 이를 통해 전시는 혁명 그 자체보다는 시스템에 지배당하고, 그 안에서 배제의 규칙을 수행하기도 하며, 혁명을 일으키는 인간과 시스템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ㅤㅤ작가는 그 질문에 답을 적어 관람자에게 전달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작가는 작업이라는 행위를 수행함으로써 본과 플래시라는 두 가지 상태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본도 플래시도 아닌 중간의 상태에 머물면서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결정한 듯하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성공할지도 모를 시스템의 붕괴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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