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찍은 필름 사진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사진 속 나는 씽씽카를 타고 있고, 반려견 ‘요크’는 재빠르게 그 뒤를 쫓고 있다. 사진을 보며 희미한 그날의 마음을 천천히 더듬어본다. 바람을 가로지르는 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요크’를 얼마나 아꼈는지 그때 머물렀던 감정들이 떠오른다. 돌이켜보니 그 시간은 맑고 빛났는데, 그때는 그 빛을 알아볼 수 없었다. 기억을 더듬는 촉감이 현재에 다시 도착할 때쯤,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사진을 보는 지금 역시 먼 훗날에는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이 되리라는 것이다. 《THAT HAS EVER SEEN》의 이정, 정이지는 한 통의 필름에 사람과 시간을 기록한다. 우리는 그 순간과 감정을 바라보면서 과거와 만났다가, 거기에서 시작해 또 다른 시간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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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 속에 담겨있던 사람들이 한 장 한 장 나타난다. 벽면에 줄을 맞춰 배치된 스물네 장의 그림은 한 사람의 얼굴, 그중에서도 눈 주위를 드러낸다. 종이에 마커로 묘사된 사람들은 촘촘하고 선명하다. 인물 표현에 흔히 사용하지 않는 채도 높은 색상은 조명에 의해 다르게 빛나는 피부를 과감하게 비춘다. 피부의 주름이나 모공 역시 망설임 없이 자신을 밝힌다. 이정은 왜곡에도 굴하지 않고 순간이 담고 있는 인상을 치밀하게 포착한다. <7월 19일 민지>와 같이 날짜와 대상을 서술한 제목, 섬세한 묘사와 일관된 배열은 책꽂이 속 일기장을 잠시 떠오르게 한다. 이들은 일상의 한순간에 놓여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핸드폰이나 노트북, 어쩌면 달빛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웃음기나 활기, 호기심에 찬 표정, 아니면 심각한 눈빛을 머금은 채로 각자의 순간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서 시선은 그들이 바라보는 대상이나 상황에 주목하지 않는다. 초점은 정확하게 그 속에 있는 사람의 눈빛에 닿는다. 눈빛의 종착지는 관객에게, 혹은 장면의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쏠려있다. 그 눈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그림 속 인물에게 피어나기 시작한 감정이 서서히 나에게까지 스며든다.
정이지는 보다 솔직하게 눈 맞춤을 시도한다. 인물의 시선은 그림을 보는 관객을 향한다. 이 눈빛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듯이 담담하게 머무르기에 ‘나’를 바라보고 있음에도 전혀 불편하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위의 그림보다는 조금 더 넓은 범위를 다루고 있지만, 여전히 눈은 그 중심에 있다. 각각의 작품은 독립적으로 배치되었으나 <아몬드와 커튼>만은 3x3의 배열에 따라 구성된다. 이미지의 배열과 집중하는 대상은 이정의 작품과 그 특성을 공유한다. 이정이 정밀한 관찰의 자세로 인물을 그린다면, 정이지는 직관적인 포착과 빠른 속도감으로 인물을 그린다. 연필 스케치를 닮은 표현과 <Season of Fig> 같은 제목, 작가의 과거 작업으로 미루어볼 때, 작품은 주변에서 보았던 개인적이고 익숙한 장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편안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듯 작품 속 인물은 일상의 한순간에 피어났을 법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는데도, 오래 알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눈을 맞추고 따뜻함을 함께 한다.
《THAT HAS EVER SEEN》 Installation view, Keep in Touch Seoul, 2020. Photo by Yunhwa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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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시간을, 기억을 캔버스 위에 고정할 뿐일까? 낯익은 순간은 쉽게 흩어진다. 하지만 두 작가는 평소와 다를 것 없고, 그래서 의식하지 않으면 잊어버릴지도 모를 장면을 그린다. 여기에 그림의 눈빛이 전하는 감정은 나의 과거까지 침투한다. 언젠가 경험했던 그림을 닮은 기억이 떠오르고 그들과 나의 감정은 사분하게 연결된다. 일상의 한 장면이 중요한 대상으로 기록되면서, 사소해 보였던 과거의 시간은 다른 의미를 품고 되살아난다. 과거에서 의미가 발견될 때, 현재는 그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불러온다. '요크'와 찍은 사진이 그렇듯 그림을 보는 시간 역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이 된다. 작품에 기록된 시간은 과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기억은 현재의 의미를 알아차리게 하고, 다가올 시간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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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한 배경은 잠시 흐려졌을 뿐, 여전히 작품 곁에 있다. 이 전시는 여성 예술가들의 안전한 예술 활동을 위해 연대하는 그룹 ‘루이즈 더 우먼’이 추진한 첫 번째 전시다. 그룹의 의도와 더불어, 두 명의 여성 작가가 여성만을 기록했다는 점은 작품을 여성주의의 맥락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미술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에게 수많은 한계를 부여하는 분위기를 한편에 딛고 있기에, 이 전시는 여성에 대한 시선과 용기, 우정을 말할 수 있다. 다만, 배경이 뽀얗게 가려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작품을 감각한 나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안고 다가온 그림과 마주쳤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담소를 나눈 것이다.
"내 집에 항상 있어온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싶어"¹라는 메리 올리버의 시 마지막 문장에 응답하듯, 그림 속에는 사람이 있다. '항상 있어온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작가가 일상에서 바라본 이들이 될 수도 있지만, 전시장에 모인 우리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작가로, 작품 속 인물로, 관람자로 전시장에 모인다. 여기 머무는 우리는 서로를 향해 눈을 돌릴 수 있을까. 이야기를 건넬 수 있을까. 아니, 아무 말 없이도 서로를 믿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이곳은 전시의 공간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고요하게 안부를 묻고, 반갑게 당신을 맞이하는 환대의 장에서 만났던 것이다.
《THAT HAS EVER SEEN》 Installation view, Keep in Touch Seoul, 2020. Photo by Yunhwa Yang
1) 전시의 제목인 《THAT HAS EVER SEEN》은 메리 올리버의 시 <I woke>의 마지막 문장 "Yet wanting to see the most beautiful thing that has ever been in my house (내 집에 항상 있어온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싶어)"를 차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