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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주 변호사 Oct 31. 2024

이혼을 결심했지만 그를 보면 마음이 약해져요.

법률사무소봄 정현주 변호사


법률사무소 봄을 찾아주신 의뢰인 봄씨는 늘 저녁 시간에만 시간이 난다. 그는 몇 번이나 고민을 하다가 변호사 상담을 받기로 마음을 먹고 가장 마음이 가는 변호사를 찾기 위해 수개월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튜브'영상을 보고 나를 직접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나는 어느 날 밤, 멀리 한남동에서 나를 찾아오신 봄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남편과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연애를 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봄씨가 남편을 훨씬 더 좋아한 것 같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고 늘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봄씨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그 느낌이 늘 좋았다. 그렇게 깊게 사랑해서 결혼을 했는데, 너무 오랫동안 함께 있어서 였을까? 남편은 언젠가부터 그녀를 여자로 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또래에 비해 아직 날씬하고 아름답게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의 무관심한 태도, 말을 걸 때마다 귀찮아하는 듯한 모습들을 보면서 자존감이 무너져갔다. 남편은 심지어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그녀는 더 자세히 내막을 알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무서웠기 때문이다.


한 쪽에서 너무 양보하는 관계가 지속되면 다른 한쪽은 그것을 고마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남편은 비교적 여유 있게 자란 봄씨에게 계속 사업을 하겠다며 돈을 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함께 잘 살아보자는 것이 그 취지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봄씨가 친정에서 돈을 끌어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심지어 남편은 장인, 장모에게 따로 연락을 취해 돈을 빌리기도 했다. 봄씨는 남편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돈을 가져가기는 했지만 자세한 사업의 내막을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불균형한 관계가 지속되자 봄씨는 몸이 아파졌다. 사실은 건강하지 않은 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에너지를 쏟은 상대라서 그런지, 그것이 아니면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에 나도 모르게 묶인 사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이별을 고려하기는 어려웠다.


어느 날 봄씨의 남편은 그녀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서 '별거'를 제안했다. 주위에서는 무조건 여자가 생긴 거라는 말을 했지만 지친 마음에 봄씨는 일단 남편의 '별거 제안'에 동의한다. 봄씨 역시 시간을 두고 이 상황에 대한 해결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도 봄씨가 혼자되는 것을 응원했다. 조금 떨어져 보면 이 관계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까?


하지만 봄씨는 어느 날 이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그녀의 남편이 또다시 '돈을 달라'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사랑해서 같이 있었다고 믿었는데, 남편은 오로지 그녀를 ATM기로 여기고 있었다. 돈을 가져가고 사업을 해서 실패하고, 또 아랑곳없이 돈을 달라고 말해 다시 사업을 해서 실패하는 것을 반복하는 삶. 어떠한 책임의식이나 문제의식도 없는 삶. 한때는 사랑이라고 완전히 믿기도 했었는데 봄씨는 자신의 삶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이혼을 망설였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했다.


' 아시잖아요. 부정하고 싶을 뿐이지. 진실을 이미 다 알고 계신데, 지금에라도 가능하다면 정리를 하시는 것이 당신을 위해 좋아요. 무조건 좋아요. 사실 이혼이란 인생의 큰 결정이고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만,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도 용기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불행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이혼을 결정하기 어려워하거든요. '


'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망설이게 되는 걸까요? '


'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이 아닐까 해요. '불안보다는 불행을 택한다.'라는 말이 있죠. 지금의 삶이 불행하더라도 한 번도 가지 못한 길을 선택하는 것은 본능적으로 두렵거든요. 한국 사람들은 여행을 가도 꼭 정보가 있는 곳만 가거든요. 전혀 모르는 여행지를 선택하진 않아요.


또 이혼이란 자신의 삶의 실패라는 인식이 있죠. 굳이 사회적으로 ' 저 사람은 문제가 있을 거야. '라는 인식으로 쳐다본다고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삶도 실패했다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헤어질 때 그 실패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상대방 탓을 하게 되는 거예요. 상대방 탓을 한다는 것은 이미 자신이 실패를 했고 그것을 나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어떻게보면 남녀간의 이별이죠, 맞지않는 사람과의 이별.그것이 실패일까요?이별을 잘하는 것도 하나의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봄씨는 이혼을 마음먹으면서도 막상 남편을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불쌍한 마음이 들고 또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분명 미련이 남은 것이 아닌데도. 그녀는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혼란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비록 이혼을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십수 년을 같이 지내면서 동고동락했던 사람인데 어찌 모든 부분에서 마음이 완전히 차가워질 수 있을까? 그녀가 이런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금이라도 관계를 정리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일 뿐. 그렇기에, 이렇게 나약한 마음도 그대로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관성이 있어, 지금까지 했었던 일들이 잘못되었더라도 반복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연결 고리를 끊는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한다. 만약 내가 계속 반복적인 삶에서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며 불행을 겪고 있다면, 그래서 나의 삶에 행복이 오히려 흐려지고 있다면 그것으로 이별을 결정하는 것은 충분하다. '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 상대를 위하는 마음 '은 모두 없애지 않아도 괜찮다. 나의 나약한 마음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렇더라도 용기를 내어 그 관계를 끝내는 것을 추천한다.


그것은 오로지 '나'를 위해 행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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