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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양 Jan 15. 2022

이성적인 인간들이 살아남는 법

[속초 한달살기] D8

집을 떠난 지 벌써 한주가 넘은 시점, 가장 쉽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분명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끝날 것만 같은 하루였지만 언제나 그렇듯 우리에게 완벽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외딴곳에 떨어져 서로를 잔뜩 경계하던 사람들이 사이의 벽을 허물고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다가갈 때 우린 충돌의 무서움보단 술에 취한 희열을 느끼곤 한다. 서슴없이 마주할 때 때론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서로에게 부딪혀 상처를 내기도 하고 가까스로 스치듯 지나 안심하기도 한다.


오늘은 아마 서로의 속도를 생각하지 못하고 나름대로의 개인적인 질주를 펼친 이로부터 생겨난 이야기가 펼쳐진 것 같다.


시작은 꽤나 평화적이었다. 폭풍이 오기 전 바다는 유난히 점잖다고 했던가. 행복만을 얻길 바라는 주말을 코앞에 두고 우린 또 한 번 서로의 인생에 대해 떠들어대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분침이 원을 두 번 그릴 동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모두 상기된 채로 소리의 크기는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조명들이 전부 꺼져도 식을 줄을 몰랐다. 그들은 밝지 않은 빛들이 천장에 주륵 깔려있는 아래 옹기종기 나름의 무리를 만들어 말을 이어갔다. 이미 모든 사람들은 눈에 안대를 쓴 듯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같았고 시야가 차단된 만큼 뱉어내는 말들의 경종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지는 듯했다. 병들은 깨졌고 담긴 술들은 이곳저곳에 튀어 삽시간에 모든 이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여럿 있긴 했으나 웃음을 잃을 정도의 심각성은 아니었고 우리는 그렇게 모두가 둥둥 떠다니는 상태로 잠에 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사람은 적당히를 모른다.


잔뜩 취해 이미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분별이 되지 않는 상태에 들어선 사람들은 하나둘 지켜야 하는 규칙들을 깨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그것들이 당연히 무시되어도 괜찮은 것으로 생각했다. 통제력을 잃은 사람들을 관리하는 소수의 힘에는 한계가 있었고 자리는 주체하지 못하고 어지럽혀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 있었는데 이 역시 인간과 인간의 끌림에 관련된 문제였다. 방을 옮기거나 합숙을 하는 게 불가능한 공간에서 그들은 취기를 빌려 선을 넘고 싶어 했고 다른 한 명이 실수로 그 자리에 함께 하게 됐다.


당연히 가능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남의 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우리는 뛰어가 방에서 나올 것을 부탁드렸다. 상관없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해져 오히려 우리에게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누구와 어디서 뭘 하든 무슨 상관이냐며 공간이 울려라 소리를 치기 시작했고, 우리는 진정시키기 위해 방에 앉힌 채로 뱉어내는 하소연을 귀에 담으려 노력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지켜야 할 수칙들을 정확히 숙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연히 문제 되지 않을 것으로 알고 올라간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단호하게 말해 불편함을 느꼈다고 했다. 물론 곱지 않은 말투로 말이다. 단어 하나하나가 뾰족하게 피부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물론 타인의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타격은 없었지만 나름의 불편함은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고 있을 즈음에 모든 걸 공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르지만 대략적으로 발생한 상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는 대화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잔뜩 취해 자신이 터트린 폭탄의 피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 사람은 전화가 왔다는 사실만으로 진정하던 걸 멈추고 이제는 격분하기 시작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이 무슨 잘못이 있냐며 결투를 신청하기라도 하듯 관리자를 만나고 싶다고 얘기했다. 갑자기 그 사람은 자신의 재력과 의지를 과시하며 이곳이 아니어도 자신이 갈 곳은 많다고 속에 담겨있는 모든 단어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사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상황을 보면 크게 화를 낼 상황은 아니었다고 생각이 들어 나는 더욱 당황스러웠다. 오히려 잘잘못을 따지고 보자면 직접 귀에서 귀로 전달해준 말을 듣지 않고 무시한 것에 대한 책임이 가장 컸으니 말이다.


자신의 몸 하나 제대로 컨트롤하는 게 불가능해 보여 그 사람을 친히 잠을 청할 수 있도록 들어 옮긴 뒤 나도 지친 몸을 끌고 방에 들어와 그대로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전기장판을 미리 틀어놔서인지 뜨겁게 열이 올라있는 이불 위로 양말을 벗어던지고 곧바로 눈을 감았다. 평화롭게 저녁 하늘이 지는가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든 것이 고요한 밤에 전화벨이 울렸다. 후에 들어보니 모든 분위기를 어둠의 것으로 앗아갔던 사람이 일어나 자신은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다고 했다. 새벽 2시, 별들과 가로등만이 세상을 비추고 있는 시점에 그는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든 짐을 챙겨 택시를 타고 시야 밖으로 사라졌고 그렇게 혼란스러운 사건이 갈무리됐다.




감성과 이성이 나름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만 판단력이 흐려지는 일을 겪고 나면 모든 조화로움이 한순간 불협화음이 되어 어그러진 모습으로 이상한 얼룩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특히 육체적으로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예민한 경우에는 더욱이 그 얼룩이 온몸을 덮고 한다.


오늘을 계기로 나는 다시 한번 감정을 내세워 모든 대화들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 다짐하게 됐다. 원체 감정적으로 타인을 대하는 걸 싫어하는 타입이었는데 이성의 끈을 놓치고 모든 세상을 자신을 중심으로 보는 이들을 보니 감정의 무서움을 한층 더 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책임은 전혀 없다고 착각하며 모든 탓을 내가 아닌 것들에게 전가하려고 하는 태도, 이러한 태도는 발생한 상황을 순간적으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관계를 대하는 데에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우리에겐 중심이라는 게 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자신이 서 있고. 내가 삶의 주인이기 때문에 내가 행하는 모든 행동은 나에게로부터 온다. 늘 심지가 되어 모든 것들의 균형을 맞춰주는 내가 언덕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에 흔들려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나라는 기둥에 붙어있는 모든 가지들 또한 나를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리저리 흔들리기를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기둥의 뿌리가 들려 땅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날이 오는데 그때는 옅은 바람이라도 태풍처럼 느껴질 만큼 세게 불어올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눌러앉을 고요한 땅을 잃은 이들에게 비옥한 토지를 찾는  어느때보다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인스타그램: @xyz_livelifeweir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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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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