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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로 May 16. 2024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들_정재찬

남편이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조정래 작가님 인터뷰를 듣고서 빙긋 웃은 적이 있다.


소설가인 자신은 시인인 아내를 이길 수가 없다며 진실되고 유머러스한 말과 분위기로 '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뀌게 했던 짧은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소설보다 시를 쓰는 게 어렵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테지만 생태계 피라미드 꼭대기엔 아내가 있다는 남편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자고로 내 생각 속의 시는 '동시'이거나 무슨 내용이지? 싶은 고어를 가득 품은 시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윤동주가 써 내려간 가슴 아픈 시 그 정도 까지였다.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제는 익숙한 시 풀꽃

풀꽃과 같은 시를 읽어도 가슴이 몽글몽글 해지지 않는다면 어떡하나? 이 짧은 시 몇 줄 조차 마음에 새길 여유가 없다면 어찌할까? 시를 읽으면서도 걱정부터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가끔 TV에서나 보던 교수님이 지역에 강의를 하러 오신다고 한다. 유명연예인이 오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작가님이 엄선한 시와 본인의 생각을 옮겨 적어 두었다.


처음 보는 시가 대다수이지만 내 마음에 무언가 꿈틀 하게 하는 아픔도 묻어 나온다.


작가가 되려면 시련을 겪어야 하나? 싶을 만큼 다들 설움이 묻어있다. 설움이라고 하면 나도 적지 않게 많은데 아직 작가가 되지 못한 걸 보면 설움의 양이 아직 적은가 보다.


입춘

 - 배한봉


암 수술로 위를 떼어낸 어머니

집에 돌아오자 제일 먼저

세간을 하나둘씩 정리했다.

아팠다. 나는

어머니가 무엇인가를 하나씩 버리는 것이 아파서

자꾸 하늘만 쳐다보았다.

파랗게, 새파랗게 깊기만 한 우물 같은 하늘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눈물도 못 흘리게 목구멍 들어 막는 짜증을 내뱉었다. 낡았으나 정갈한 세간이었다.

서러운 것들이 막막하게 하나씩 둘씩 집을 떠나는 봄날이었다.

막막이라는 말이

얼마나 막막한 것인지, 그 막막한 깊이의 우물을

퍼 올리는 봄날이었다.

그 우물로 지은 밥 담던

방짜 놋그릇 한 벌을 내게 물려주던 봄날이었다.

열여덟 살 새색시가 품고 온 놋그릇이

쟁쟁 울던 봄날이었다.      


이 시를 읽고 작가님도 연구실의 책을 모두 버렸다고 한다.

담배를 피우던 제자에게도 하지 말걸 후회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냥 끊게. 무슨 계기 기다리지 말고. 그건 대게 안 좋은 일이라네."

미루다 보면 때를 놓칠 수가 있고, 물질은 소유할 수 있어도 어느 누구도 시간은 소유할 수 없다는 고마운 잔소리.




에피소드 1

예수님을 믿으라며 내게 전도하던 동료가 말했다.

"하나님은 있어요"

"어떻게 알아요?"

"시아버님이 담배를 끊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응답해 주셨어요"

"정말요?"

"네~폐암에 걸려서 담배를 못 피우세요~"

'응답을 해주신 게 맞을까?'


에피소드 2

친한 언니 남편이 몸이 좋지 않아 종합병원에서 검사를 했다고 한다.

피검사, MRI검사 등등 모든 검사에 이상이 없는데도 숨을 쉬기 어려운 상황에 한번 놓이고 난 후 굉장히 초조하고 불안해한다고 한다. 며칠 후에 만난 언니에게 물었다.

" 언니~ 이제 형부는 괜찮아?"

"응~괜찮아. 담배를 끊었지 뭐야! 한 번에!"


에피소드 3

이것은 나의 이야기다.

나이 탓인지 호르몬 탓인지 몸이 말을 잘 안 듣는다.

스트레스에도 취약하고 몸에 힘이 없다.

미용실에 가야 하는데 거기 가서 앉아 있을 여력이 없어 미루고 미루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지러움이 또 시작됐다.

'이러다 진짜 아파 드러눕게 되면 내 머리는 진짜 거지산발이겠네'

아플 때 아파도 이쁘게 아프고 싶었다.

다음 날 나는 바로 미용실에 갔다.


모든 계기가 좋지 않다는 확실한 반증이다.



그래서

나는                                   

                                             동글로


남편이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습니다.

계기는 필요 없이 끊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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