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어제도 실내자전거를 열심히 굴리며 운동을 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그때의 나는 식사를 마치고 치워낸 식탁에 앉아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남편은 딸이 자전거 타는 옆 책상에 앉아 헤드셋을 끼고 책을 읽고 있었다.
아들은 열외다.
아들은 자기 방에서 숙제와 게임과 유튜브 사이에서 엄청난 줄다리기를 하며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참견하고 싶지만 참견을 포기했다.
며칠 전 잔소리를 했다가 역공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잼민아! 게임 좀 그만해~"
"왜? 엄마도 하루종일 유튜브 보고 있잖아~"
"나? 아닌데? 엄마 오늘 책 한 권 읽었는데? 너도 봤잖아~"
"...... 난 그럼 잠이나 잘래"
'휴~다행이다. 보는데서 읽었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다행이다 싶었는지 모른다.
그날 나는 5월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숙제처럼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못했다면?
나는 '게임 좀 그만해'와 '유튜브만 봤잖아' 사이에서 패배하고 말았을 것이다.
한참 시뻘게진 얼굴로 자전거를 굴리며 책을 읽던 딸이 또 악! 소리를 낸다.
"왜? 또 엄마가 죽었어?"
"아니요. 이번엔 친구가 죽었어요!, 세상에! 맙소사!"
저번에는 미친 엄마가 나오는 '생존의 법칙'을 읽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야단법석을 떨더니 이번엔 또 친구가 죽었다며 조용한 거실을 들었다 놨다 한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아들은 또 조용히 썩소를 날릴 것이다. 아들의 눈에 누나는 이해할 수 없는 동물이다.
미친 엄마가 나온다는 '생존의 법칙'을 읽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책을 읽고는 딸에게 으스댔다.
"야 슈미나! 엄마가 얼마나 좋으냐? 응?"
"아니 엄마. 그래도 저 엄마랑 비교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은 또 친구가 죽었단다.
친구.
친구란 단어는 언제 들어도 반가움이 있다.
책 제목을 보니 '동급생'이다.
왜 죽었을까?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되었기에 기억나는 동급생이 몇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는 정말 손에 꼽는다. 나도 동급생 한 번 소환해 볼까?
"책 줘 봐 봐~"
음~ 짧은 책이다.
히틀러가 지배하는 시대의
시인이 되고 싶었던 유대인 '한스'와 독일인 명문백작의 아들 '콜라딘'의 이야기
이미 설정부터 비극이다.
한스의 부모님은 유대인인지만 독일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부유한 동네, 문학과 예술의 동네 슈투트가르트에서 의사로 살고 있다.
콜라딘의 부모님은 독일 역사에 기록된 명문 백작가문이며 히틀러의 지지자이다.
친구가 없던 한스는 콜라딘이 전학 온 첫날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 그로부터 일 년 동안 둘은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며 친구로 지낸다. 살벌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도 그들의 관계는 너무나 지켜주고 싶을 만큼 아름답게 묘사됐다.
한스는 마침 그때 천체에 대해 공부를 할 때였다.지구는 수백만 개의 조약돌이 널린 바닷가에서 하나의 조약돌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그 무렵 알게 되었다.
그러자 한스는
아무리 하느님이라고 해도 그 많은 천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 관심을 가질 수가 있을까?라는 의문과 동시에 하나님은 없다는 생각을 강화했다.
(나도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 만약 있었다면 나치가 유대인을 그토록 잔인하게 학살하는데 보고만 있었을까? 어느 누구도 나에게 이 것에 대해 답을 주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지옥에 보낸다고? 자비가 없는 신을 나는 믿기 싫다.)
콜라딘과 한스가 만난 지 1년이 지날 무렵 한스는 학교에서 따돌림당하기 시작한다.
모든 게 완벽했던 슈투트가르트에도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어두움이 스멀스멀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스의 아버지는 나치의 지독한 압박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지만 결국 어린 한스를 미국으로 보내고 부부는 자살한다.
콜라딘은 히틀러 믿고 지지한다는 편지를 한스에게 쓰고 미국으로 떠나는 친구를 곧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한스는 그로부터 30년이 넘은 지금까지 독일에 돌아오지 못하고 미국에서 변호사가 되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간다. 아직도 독일은 한스의 상처이며 독일 이야기가 나오면 그 상처에 소금을 문지르는 것 같은 아픔을 느낀다. 한스는 독일에 관한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한스에게 독일로부터 우편물이 도착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산화한 동창들을 기리는 추모비 건립을 요청하는 호소문과 인명부였다.
아직도 자신에겐 아픈 상처인 독일에서 기부요청서라니 나라면 당장 찢어버렸을 것이다.
그 인명부에는 사망한 반 친구들 이름이 섞여 알파벳 순서대로 적혀있다.
H
결코 넘겨보지 못한 H
미루고 미루다 읽은 H에 적힌 글을 보고 딸이 소리 내어 울었던 것이다.
- 폰 호엔펠스, 콘라딘.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 처형 -
한스는 이제 콜라딘을 친구로 그리워하고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콜라딘이 전학 왔던 잊히지 않던 그날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변호사로서 나는 썩 나쁘지 않게 업무를 수행했고 사람들은 내가 인생에서 성공했다는데 대체로 동의하곤 했다. 피상적으론 그들이 옳다. 나는 모든 것을 가졌으니까.
......
하지만 나는 더 잘 알고 있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 그러니까 훌륭한 책 한 권과 한 편의 좋은 시를 쓰는 일은 결코 하지 못했다는 것을.
처음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했고 돈이 있는 지금은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나 자신을 실패자로 본다.
그것이 정말로 문제가 되어서가 아니다.
영원의 상 아래에서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다 실패자들이니까.
[죽음은 최후의 어둠이 오기 전에 결국 모든 것이 똑같이 덧없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의 삶에서 자존감을 갉아먹는다]라는 글을 내가 어디에서 읽는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