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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스텔 Jun 29. 2020

죽을 것 같이 힘들어서
n잡을 하게 되었어요

프로 본업러가 새싹 n잡러가 된 까닭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흐릿하게나마 본업 외 n잡을 생각하게 된 시점은 전 직장을 퇴사하던 시점부터였던 것 같다. 그때는 손에 잡히지는 않고, 안갯속에 있는 것 같았지만, 본업에 내 온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1년간 '죽지 못해 회사를 다녔다'는 말이 딱 맞았다. 새로 온 팀장은 타겟을 정해놓고 그 한 명만 죽어라 괴롭히는 스타일이었는데, 내가 걸리고야 말았다.


1년을 꾹 참으면서 별 짓을 다 했다. 마라톤 10km 완주를 두 번이나 했고, 수영이나 테니스, 요가, 러닝, 걷기 등 다양한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발산하려 했고, 자아를 찾기 위해 미친듯이 책도 읽고 독서모임도 나갔다. 그렇지만 내 몸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했다. 저음성 난청에 전정기관염, 이관기능장애가 마치 햄버거 세트 메뉴처럼 한꺼번에 내 손에 들려졌다. 몸무게는 44kg까지(키가 168cm니까 그때 거의 걸어다니는 뼈다귀 수준이었음) 떨어졌고, 매사 예민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사실 나는 일을 좋아했다. 본업을 사랑했고, 업무의 특성상 주7일 근무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공공연하게 '워라밸'은 단순 정량적인 워킹 아워보다 정성적인 워킹 아워로 워라밸을 따져야 한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일하는 시간이 행복하면 워라밸이 충족된다고 믿었다. 미친듯한 야근과 3주 연속 하루도 쉬지 못하고 근무를 해도 그땐 일을 사랑했기 때문에 힘들지 않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했고, 더 잘하고 싶어서 전전긍긍, 안달복달이었다. 회사 내에서 나만 할 수 있는 영역이 확실했던 터라, 나만의 입지도 굳힐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팀장은 나를 부정했다. 사사건건 무시와 괴롭힘, 쌍욕, 이유없이 내려오는 끝없는 반려. 회사 역시 모든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모든 스트레스는 오롯이 나만의 몫이었고, 결국 1년의 사투 끝에 퇴사를 결심했다. (그후 듣기로는 해당 팀장 때문에 나 이외에 8명이 더 퇴사했다고 들었다.)


도망치듯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신세계였다. 더 이상 내 몸을 갈아가면서까지 본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느끼고, 실천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몸을 추스리고 정신을 재정비하고 나자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니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무궁무진했다.


회사 동료들이 긍정적인 에너지원 역할을 해줬다. 사이드 프로젝트와 n잡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려줬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머리를 맞대고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해도 된다는 걸 몸소 느꼈다.


그래서 1년 전인 2019년, 어느 정도 심신이 재정비되었다고 느꼈을 때 프로 본업러는 새싹 n잡러로 스위치를 전환하기로 결심했다. 여전히 그때 그 결심이 유효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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