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보수 그리고 마음가짐
“그거 재테크지, 투잡 이런 개념 아니야.”
주식으로 1억원 이상의 시드 머니를 굴리고 있는 지인은 주식을 직업으로 생각하냐는 물음에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돈을 벌고, 공부하려고 시간도 쓰잖아요.”
“그러니까 재테크지, 내가 애널리스트나 펀드 매니저도 아닌 데 그게 어떻게 잡(job)이냐.”
그렇다. 사실 주식은 재테크의 영역이 맞다. 누가 봐도 재테크가 맞고 직업은 아니지만, 뻔뻔한 나는 주식과 배당주 매매를 포잡에 넣어두었다. 심지어 낯짝도 두꺼워서 스스로에게 ‘방구석 애널리스트’라는 거창하지만 없어보이는 직업까지 달아줬다. 물론 그 누구의 동의도 없이 내가 나에게 감투를 씌웠으니 사실상 나만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 졌다. n잡에 대한 생각이 이처럼 제각각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n잡의 정의는 무엇이며, n잡을 구성하기 위해 꼭 들어가야 할 필수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n잡러는 복수를 뜻하는 'N', 직업의 잡(job)이 합쳐진 신조어로, 본업 외에 다양한 일을 뜻한다. 세상 재미없는 뜻이다. 실제로 n잡러로 살아가는 나에게 n잡이 뭐냐고 묻는다면...'본업 외 일회성이 아닌 일, 그런데 그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바로 n잡'이라 하겠다. 이건 내 성정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책임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선 내일이라도 당장 "때려쳐!" 라는 말과 동시에 실천할 수 있다면 그건 n잡이 아닌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원고 작성을 1년 동안 하면서 수없이 '와.. 너무 귀찮은데, 이제 그만할까?' 내지는 '지금 단톡방에 그만한다고 말하고 그냥 방 나가?' 등등 스스로의 한계가 어디인지 끝까지 시험하는 나날도 많았다. 그래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건 '1년은 채워보자'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 주말 중 하루, 반나절을 꼬박 사용해서 글을 써야 하기에 지루한 날도 많았고, 가끔은 현타가 오는 날도 많았다. 그래도 '저에게는 책임 져야 할 원고가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고쳐 먹곤 했다.
그러던 차 투잡족의 비율이 2018년 8.1%에서 지난해 10.2%로 증가했다는 기사를 봤다. ([스페셜 리포트- ‘2020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 빚의 양극화…부자는 집사고 저소득층은 투잡하는 시대)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우 더 '텅장'이 되었다고 한다. 주 52시간제로 인해 월 소득은 줄었고, 고용이 잘 이뤄지지 못하는 데다가 경기 불황으로 경제 활동자 10명 중 1명이 '투잡'을 한다는 내용이다. 게다가 향후 투잡 계획이 있는 사람도 24.5%나 된다고 하니, 우리 주변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투잡 혹은 n잡을 하고 있을 거라는 뜻이다.
대부분 본업과 부업을 병행하는 이유로 생계형이 압도적이었고, 그 뒤를 이어 여가, 자기계발, 취미 등이 고만고만한 수준이었다. 물론 생계를 꾸려 나가기 위해서 돈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 외에 재능 거래 튜터나 통, 번역 등 덕업 일치를 이루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은 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지루하고 재미없는 정의는 끝났다. 이제 n잡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시간, 보수 그리고 마음가짐이라고 주장해 본다.
당연히 본업 외에 따로 시간을 내야 한다. 물론 본업과 n잡의 결이 비슷해 본업 시간에도 n잡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논외로 빼고 일반적으로는 본업 외 시간을 내는 것이 맞다. 개인적으로 n잡으로 인해 본업에 지장이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출, 퇴근 시간 혹은 주말에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 본업 이외 활동 시간을 가질 때 n잡에 포함된다고 여긴다.
우리는 노동의 댓가를 받는 일개미다. 보수 없는 노동은 n잡에서 과감히 배제해야 한다. 보수를 받지 않고 일을 한다면 그것은 놀이 혹은 자원 봉사 활동이지 잡(job)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보수의 규모가 얼만큼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인식하는 정도가 다를 듯하다. 누군가는 업무 강도에 비해 밥 한 끼 정도면 괜찮아, 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테고, 누군가는 업무 강도에 비해 높은 금액을 받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개인적으로는 n잡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최저 임금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자아실현, 자기계발 혹은 여가를 위해 n잡을 한다곤 하더라도 '일'로서 책임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보수는 뒤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책임감의 값을 아무리 저렴하게 후려쳐도 '최저 임금'은 확보할 것.
일반적으로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재테크 하는 사람에게 "n잡러시군요" 라고 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본인들도 단순 재테크의 일환으로 생각하지, 이를 n잡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시간을 내지 않고, 보수를 벌지 않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주식을 쌀점 쳐서 하는 게 아니니까 당연히 종목 선정을 위해 따로 공부도 했을 것이며, 그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짧은 틈새에 매매도 하고, 뉴스도 읽으면서 본업 외 시간을 썼을 것이다.
(물론 개미들은 주로 어깨에 사서 무릎에 파니까 손해가 나겠지만) 쏠쏠하게 돈도 벌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재테크만 했던 사람들을 모두 n잡러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시간을 내서 돈을 벌고 있다 하더라도 n잡러라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n잡러라 보긴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