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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거북이 Jun 10. 2021

2년하고도 2개월

 1999년 2월, 나는 아침부터 혼자 집에 남아 PC게임을 하고 있었다. 21살, 군입대를 위해 휴학하였고, 입영 영장이 나오길 매일매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기왕 가야 하는 것, 빨리 영장이 나오길 바라고 있었다.


친구들도 하나 둘, 입대를 하기 시작했고, 뭔가 뒤쳐지는 것 같아, 이제나저제나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었다. 9시 정도 되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받았더니


“여기 동사무소인데요. 김XX씨, 군대 입영 영장 나왔습니다. 본인인가요? 그럼, 무슨 바쁜 일 있더라도 10분만 있다가 나가세요. 지금 영장 전달 드리러 가겠습니다.” 바로 전화는 바쁜 듯 끊겼다.


‘올 것이 왔구나.’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보통 한 달 전에 나온다니까 이제 한 달 후면 군인이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두렵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그리고 나서는 어느 훈련소로 입소를 할 것인가가 궁금해졌다.


 교통비가 나오는데, 당연히 멀리 있는 곳은 많이 나오고, 가까운 곳은 적게 나왔다. 그래봐야 몇 만원이지만, 당시 대학생인 나에게 그 돈은 무시 못할 금액이었다. 술 마시고 하루 신나게 놀기에는 충분한 금액이었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아예 대문 밖에 나가 서 있었다. 동사무소 직원이 곧 영장을 가져와 주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바로 봉투를 뜯고, 훈련소 위치부터 찾아보았다. 의정부, 논산 이런 지명을 찾았는데, 긴장한 탓인지 그런 지명은 안 보였다. 내가 사는 부산만 보였는데, 당연히 우리 집 주소인 줄로만 알았다. 허둥지둥 보다가 맨 아래쪽에 교통비 금액이 보였다.


그래, 이것이다. 하고는 금액을 는데,1000원이라고 되어 있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금액이냐, 이건 뭐가 잘못되었다. 하고는 피식 웃다가, 입소해야 하는 곳의 주소가 눈에 들어왔다. ‘부산시 해운대구 좌동 신시가지xx번지 육군 제53보병사단 신병훈련소’


1,000원은 시내 버스비였다. 허탈했다. 잠깐 지나자 차라리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대 배치도 가까운데 받을 확률도 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입소하는 날에도 늦잠자고, 오전 늦게 출발해서 해운대 백사장에서 멍하니 바다 구경하다가 점심도 먹고, 입소하였다. 여기까지의 과정은 내가 상상하고 있던 군 입대 과정보다 훨씬 단순하고, 간단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 군생활은 시작되었고, 적응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가 전혀 모르던 세상에 적응해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자존심도 내려놓아야 했고, 몇 가지 상식이나, 당연히 누리던 자유 이런 것들도 사라졌고, 대신 지키기 어려운 여러가지 규율이나, 규칙 등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시내버스 타고 가벼운 마음으로 입소해서 그런지, 그 모든 것들에 익숙해지는 게 쉽지는 않았다.


2년 2개월의 군생활을 통해,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웠다.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고,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단체생활이 어떤 것인지도 몸으로 느끼게 되었고, 국방의 의무가 어떤 것인지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21살에 입대하였는데, 나의 20대를 전반과 후반으로 나눈다면, 군 입대전인 21살 까지가 전반부, 그 이후가 후반부이다. 그만큼 군생활이 내 삶을 바꿔 놓았다.


제대할 때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후임병들이 다 부러워하는 작대기 네 개 병장 계급장과 예비군 마크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들이고, 이젠 민간인으로써 내 의무를 다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괜히 들뜰 이유가 없었고, 2년 넘게 하지 않았던 공부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정말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가 있었기 때문에, 가야 할 길에 대한 부담도 많았다. 그리고, 정든 사람들을 뒤로하고 홀로 떠나는 것이 너무 외로웠다.


부끄럽지만, 20살의 나는 정말로 공부는 뒷전이고, 술 마시고, 노는 데 열심이었다. 군 제대 후 우연히 20살 때 같이 놀던 선배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나보다 두 살이 많았는데, 군대는 면제였고, 반가워하며,

“또 만나서 예전처럼 술 마시고, 여자들도 만나고 해야지.”라며, 연락처를 주던데,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나보다 나이 어린 후임들이 총 매고, 나라를 지키고 있는데, 더 이상 내 인생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 선배는 모르겠지만, 나는 생각만으로도 부끄럽게 느껴져서, 정말 착실히 학교 다니고, 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가장 크게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있다면, ‘의무’가 우선, 그 다음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과, ‘책임’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회사가서 할 일 다하고, 집에 와서 애들 다 돌보고, 집안 일 돕고, 늦은 밤에 혼자 내가 쓰고 싶은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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