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 우연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산책길을 걷다가 작은 영지버섯을 보게 되었다. 아니, 그 당시에는 영지버섯이라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버섯 갓이 아직 채 펴지지도 않았고, 작아서 혹시 영지버섯이 아닐까? 싶었었다. 도심 속 아파트 단지 화단에 영지버섯이 자란다는 얘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기에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등산하시다가 가끔씩 영지버섯을 따 올 때가 있었는데, 나도 이걸 한 번 찾아보려고 산에 갈 때마다 영지버섯이 없나 하고는 항상 살펴보았는데, 단 한번도 찾지 못했었다. 그런데 엉뚱하게 옆동 뒷 화단에 영지버섯이 자랄리가 없을 것 같았다.
작년 6월에 발견한 영지버섯
새끼 손가락만한 크기였는데, 확실하게 영지버섯인지 알아보고자, 집에 가져와서 다려서 마셔보았다. 연하지만 틀림없는 영지버섯 맛이었다. 진짜 영지버섯인 줄 확신했더라면 좀 더 자랄 때까지 기다렸을텐데, 아쉬웠다. 영지버섯은 매년 같은 곳에 계속 자란다는 말을 들어서 올해 계속 기다렸는데, 6월의 어느 날, 똑같은 위치에서 영지버섯을 또 발견했다.
올해 6월에 발견한 영지버섯
영지버섯을 발견한 곳
나무 밑에 영지버섯이 있다.
북향이고, 아파트 건물이 햇빛을 막아주고, 아래쪽으로는 배수로가 있어 수분이 많은 곳이다. 그리고, 소나무에 영지버섯이 자라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특이하게 매실나무 아래에서 자라고 있었다. 주변에 침엽수들이 꽤 있는데, 왜 이 나무밑에서 자라는지 의문이긴 하다. 하기야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대나무 밭에서 자라는 영지버섯도 나왔으니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버섯을 채취할 것 같아 걱정이 되었지만, 나는 이 버섯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영지버섯 수확은 8월말에서 9월초라고 하니까 약 두 달간만 제자리에 있어준다면.....
7월 중순의 영지버섯
일주일에 한 두번씩은 꼭 가서 어느 정도 컸는지 살펴봤는데, 생각만큼 쑥쑥 자라지는 않았다. 비가 오고, 이삼일 정도 지나면 갑자기 쑥 자라곤 했고, 사진을 잘 찍어서 그렇지 실제 크기는 검지 손가락 길이 정도밖에 안 되었다. 7월에 갓이 피면서 노랗게 변해서 좀 조바심이 났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발견해 버릴 것만 같았다.
8월초에 찍은 영지버섯
8월에는 제법 다 자란 영지버섯 같은 외형을 지니게 되었다. 자연산 영지버섯이라 그런지 색깔과 광택이 아주 훌륭했다. 하기야 시장에서 파는 영지버섯은 다 죽은 것들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아무튼 저 사진이 마지막이었다. 며칠 후 다시 찾아가 봤더니, 누군가 영지버섯을 뽑아가 버리고 없었다. 아쉬웠다. 좀 더 자라는지 보고 싶었는데.... 아마 내년에야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