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 거북이 Sep 23. 2021

아파트에서 자라는 영지버섯을 만나다

 작년 여름에 우연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산책길을 걷다가 작은 영지버섯을 보게 되었다. 아니, 그 당시에는 영지버섯이라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버섯 갓이 아직 채 펴지지도 않았고, 작아서 혹시 영지버섯이 아닐까? 싶었었다. 도심 속 아파트 단지 화단에 영지버섯이 자란다는 얘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기에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등산하시다가 가끔씩 영지버섯을 따 올 때가 있었는데, 나도 이걸 한 번 찾아보려고 산에 갈 때마다 영지버섯이 없나 하고는 항상 살펴보았는데, 단 한번도 찾지 못했었다. 그런데 엉뚱하게 옆동 뒷 화단에 영지버섯이 자랄리가 없을 것 같았다.    


작년 6월에 발견한 영지버섯


 새끼 손가락만한 크기였는데, 확실하게 영지버섯인지 알아보고자, 집에 가져와서 다려서 마셔보았다. 연하지만 틀림없는 영지버섯 맛이었다. 진짜 영지버섯인 줄 확신했더라면 좀 더 자랄 때까지 기다렸을텐데, 아쉬웠다. 영지버섯은 매년 같은 곳에 계속 자란다는 말을 들어서 올해 계속 기다렸는데, 6월의 어느 날, 똑같은 위치에서 영지버섯을 또 발견했다.


올해 6월에 발견한 영지버섯


영지버섯을 발견한 곳


나무 밑에 영지버섯이 있다.


 북향이고, 아파트 건물이 햇빛을 막아주고, 아래쪽으로는 배수로가 있어 수분이 많은 곳이다. 그리고, 소나무에 영지버섯이 자라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특이하게 매실나무 아래에서 자라고 있었다. 주변에 침엽수들이 꽤 있는데, 왜 이 나무밑에서 자라는지 의문이긴 하다. 하기야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대나무 밭에서 자라는 영지버섯도 나왔으니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버섯을 채취할 것 같아 걱정이 되었지만, 나는 이 버섯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영지버섯 수확은 8월말에서 9월초라고 하니까 약 두 달간만 제자리에 있어준다면.....


7월 중순의 영지버섯

 일주일에 한 두번씩은 꼭 가서 어느 정도 컸는지 살펴봤는데, 생각만큼 쑥쑥 자라지는 않았다. 비가 오고, 이삼일 정도 지나면 갑자기 쑥 자라곤 했고, 사진을 잘 찍어서 그렇지 실제 크기는 검지 손가락 길이 정도밖에 안 되었다. 7월에 갓이 피면서 노랗게 변해서 좀 조바심이 났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발견해 버릴 것만 같았다.


8월초에 찍은 영지버섯


8월에는 제법 다 자란 영지버섯 같은 외형을 지니게 되었다. 자연산 영지버섯이라 그런지 색깔과 광택이 아주 훌륭했다. 하기야 시장에서 파는 영지버섯은 다 죽은 것들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아무튼 저 사진이 마지막이었다. 며칠 후 다시 찾아가 봤더니, 누군가 영지버섯을 뽑아가 버리고 없었다. 아쉬웠다. 좀 더 자라는지 보고 싶었는데.... 아마 내년에야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왜 은수저로 밥을 먹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