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산업관광 콘텐츠 공모전 대상
2005년 9월,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삼성코닝 구미사업장에 배치 받아,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동기들과 승합차를 타고, 구미에 들어서던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 같은 순간이었고,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 이곳에서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구미에 고개 숙여 인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낙동강이 흐르는 구미대교 위를 지나며, 높게 솟은 LS 전선 공장이 보았는데, 힘들었던 취업의 여정을 뒤로하고, 위로 올라갈 생각만 하고 있던 나에게는 하나의 이정표처럼 느껴졌다. 공단 본부를 지나고, 인동에 들어서면서, 내가 살던 부산과는 무언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공장들 사이에 아파트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부산에서는 본 기억이 없는 것이었다. 내가 근무할 곳에서 상가와 주택가가 가깝다는 것은 굉장히 반가운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자동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80년대 말 즈음에 구미에 몇 번 온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보다 20살 많은 사촌형이 삼성코닝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명절에 몇 번 놀러 온 적이 있었다. 맨 처음 왔을 때는 원평동 구미 초등학교 부근의 단독주택에 사촌형이 살았기에, 그 근처에서 겨울에 눈싸움하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처럼, 근처에 영화관도 있고, 차도 많이 다니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다음에는 형곡동 삼성코닝 사택으로 이사를 했기에 그곳에 들었는데, 당시 집에서 cctv로 놀이터도 볼 수 있는 최신식 아파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2005년에 사택을 방문해보고는 깜짝 놀랐다. 기억과는 다르게, 이젠 너무 낡고, 구식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진 회사이지만, 당시 삼성코닝은 잘 나가는 회사였다. 적어도 구미에서는. 하지만 지금은 사실상 사라지고 없다. 자회사와 합병, 분할, 매각에 매각을 거쳐,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당연히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쉽고, 슬프지만, 사실 지금까지 지내면서 구미의 많은 회사들이 이렇게 사라지거나, 규모가 축소되는 일들이 많았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다들 수도권에 공장을 짓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17년째 구미에서 생활하면서, 내 삶도 많이 바뀌었고, 구미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 구미에 와서 가장 불편한 것은 아무래도 교통편이었다. 지하철도 없고, KTX도 안 다니고, 버스도 자주 번호도 바뀌고, 노선도 바뀌고, 구미역에서 인동까지 다니는 버스만 수두룩해서, 너무나 불편했다. 덕분에 차도 빨리 사게 되었고, 운전도 많이 늘었다. 구미에는 스타벅스도 없었고, 피자헛도 없었고, 아웃백도 없었다. 없던 것들이 어느 순간 하나씩 생겨나니까, 너무나 반가웠고, 발전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너무나 좋았다.
지금의 나는 구미가 좋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운 정, 미운 정도 들었고, 주말이면 한산한 도로와 수많은 직장인들이 모여서 사는 평범하고도 조용한 삶이 너무 좋다. 도립공원인 금오산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강인 낙동강이 지나가는 곳, 여기저기 회사원들의 주머니를 털려는 여러 주점들과 맛집, 카페들, 다른 곳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다. 수원이나 천안, 안산, 인천 등에도 장기 출장, 파견으로 꽤 오랜 기간 있어봤는데, 여간 불편하고, 정이 안 갔다. 좀 번화하다 싶은 곳에는 호객꾼들이 몰려 있고, 주거지와 공장단지, 번화가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어서, 점심시간에 편의점 하나 찾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밤이 되면, 인적이 딱 끊겨버리는 공장단지는 너무 쓸쓸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아파트만 몰려 있는 주거지도 밤에는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구미에 살려면 몇 가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규모가 크고, 웅장한, 대단한 것들을 많이 포기해야 한다. 프로 축구나 야구팀도 없고, 경기장도 없다. 에버랜드와 같은 대형 놀이 시설, 그리고, 백화점도 없다. 동아 백화점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규모는 마트 수준이고, 전국에서 가장 작은 백화점으로 알려져 있다. 나도 처음에 이러한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처음 몇 년 동안은 구미가 정말 싫어서, 항상 고향으로 갈 수 있는 주말만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고, 인생의 화려함 보다는 실속을 챙길 나이가 되고 보니, 구미는 마치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었다. 소소한 여러가지 아름다운 것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에버랜드는 없지만, 금오랜드에 아이들과 함께 가서 놀이기구도 타고, 오리배도 타고, 호수 주위도 둘러보고, 케이블카를 탈 수도 있고, 가물지 않을 때면, 대혜폭포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도 볼 수 있다. 출렁다리, 야외 공연장도 만든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여러 혜택을 보고 있는데, 금오랜드 빙상장에서 무료로 스케이트 강습도 받고 있고, 좀 더 크면 테니스나 볼링도 배우게 하려고 한다. 남통동 금오테니스장은 규모나 시설면에서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전국체전을 위해 새로 만든 볼링장 또한 전국 어디를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최고라 생각된다. 동락공원에 가면, 수상 스포츠도 배울 수 있다. 곳곳에 도서관도 많고, 구미예술회관이나 구미 강동문화회관에서도 많은 공연과 전시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낙동강을 끼고 있어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는데, 부산에서는 북적대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짜증스럽게 하는 게 대부분인데, 여기서는 자리 싸움할 이유도 없고, 낚시 또한 잘 되는 편이다.
대도시에서 이런 것들을 누리려면, 첫째, 경쟁률이 대단해서, 시도할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둘째는 비용이 비싸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것들이 나와 맞는 분야라면, 구미가 좋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새마을 테마공원, 동락공원, 낙동강 체육공원, 박정희 대통령 생가, 롯데마트, 이마트 등등 주말에 가족 단위로 갈 곳이 정해져 있다 보니, 필연적으로 아는 사람을 꽤나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회사 동료나 이웃들의 가족이나 삶을 더 잘 알게 되고, 좀 더 정겨운 삶을 살게 된다.
나는 지금 구미 삼성전자에 근무하고 있다. 구미를 떠날 수 있는 기회도 충분히 있었지만, 떠나지 않았다. 이미, 정도 많이 들었고, 구미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젠 부산 고향집에 내려가도, 어딘가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적응하기 나름이라고, 이제는 구미가 나의 안식처가 되어 버렸다. 예전에 ‘이천의 특산물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 CF가 있었다. 이천 쌀이 아니라 하이닉스에서 만드는 반도체가 특산물이라는 특이한 답을 내는 광고였는데, 기발하다는 생각도 했고, 부럽기도 했다. ‘구미의 특산물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구미 사람들은 어떤 답변을 해야 할까? 나는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
예전에는 분명 구미를 대표하는 상품이 있었다. 섬유나 전자,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예를 들어보아도, 스마트폰 등은 사실 베트남, 인도 등 다른 나라 법인에서 대부분 생산하고 있다. 다른 회사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도 타도시나 다른 나라 법인에서 생산하는 물량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런 와중에 올해 처음 개최한 라면 페스티벌은 꽤나 반길 일이라고 생각한다. 농심에서 생산하는 라면이 국내 라면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줄 사실 잘 모르고 있었다. 구미시와 기업, 그리고, 구미 시민들이 모두 힘을 합쳐서 만든 축제였고, 성공적인 축제였다.
구미의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구미에 살고 싶은 사람들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직장 동료들 중에서도 출퇴근이 불편하지만 대구나 김천에 사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기러기 아빠 생활하면서, 가족들은 수도권에 따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살고 싶은 구미, 일하고 싶은 구미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노력들이 필요할 것 같다. 구미만의 장점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홍보도 하고, 불편하거나 부족한 것들은 개선해 나가는 노력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고, 가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