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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과경계 Jun 09. 2024

여성이 여성을 혐오하다

혐오, 여성혐오 그리고 시집살이 노래

                                                                                                                                                                                                                                                                                                                                                                                                                                                                                           

대한민국 사회는 여성혐오, 남성혐오, 성소수자혐오, 난민혐오 등 혐오가 사회적 이슈로 자리한 지 오래다. 혐오를 둘러싼 쟁점이 갈수록 뜨겁다. 사전적 의미로 혐오(嫌惡)는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감정으로, 불쾌, 기피함, 싫어함 등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강렬한 감정이다. 혐오는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가지게 되는 원초적 감정이지만 끊임없이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특정 대상을 혐오하게 만들면서 관리해 왔다. 특히 혐오 표현은 인종, 피부색, 출신 국가, 성별, 장애, 종교 또는 성적 취향 등과 같은 개인이나 집단의 특성을 이유로 하여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악의나 의도적인 폄하, 경멸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표현을 의미한다.


마사 너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에서 ‘혐오’와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함의하는 내용과 기원을 설명한다. 그는 혐오는 규범적으로 왜곡되기 쉬운 독특한 내적 구조 즉 실제로 위험하지 않지만 위험하게 여기게 만드는 비합리적인 사고를 내면화하여 취약한 사람과 집단을 차별하게 만드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오래도록 특권을 가진 지배 집단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동물성에 대한 두려움과 역겨움을 느끼게 만드는 특정집단이나 사람을 혐오하면서 그들을 배제하고 차별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혐오는 자신이 오염될 것이라는 생각과 그 자신이 오염될 것이라는 생각에 대한 거부라고 했다. 인간에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물성을 차단하려는 강렬한 욕구가 있으며 이 과정에서 진정한 인간과 저열한 동물을 나누는 경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때 저열한 동물과는 다르다는 안도감을 위해 혐오의 속성을 투영해 왔다고 말한다. 특권을 지닌 집단은 이를 통해 우월한 인간적 지위를 명백하게 하려는 과정을 투영해 왔는데 그 대상으로 유대인, 여성, 동성애자, 하층계급 같은 집단을 오물로 더럽혀진 존재로 상상해 왔다고 말한다.


우에노 지즈코는 역사적으로 남성은 동물성, 오염, 유한성에 대한 공포를 부정하거나 회피하기 위해서 혐오감을 여성에게 투영하여 왔으며 이를 사회적으로 학습하게 함으로 남성 내부결속을 강화해 왔다고 보았다. 그는 여성을 좋아하는 남성에게도 여성혐오가 발견되며 남성뿐 아니라 여성 스스로도 자기혐오에 빠진다고 했다.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그들끼리 연대하기 위해 혐오감을 공유하고 있지만, 여성도 자기혐오에 빠진다고 했다. 예외적 여자가 되어 자기 이외의 여성을 타자화함으로 여성혐오를 전가한다고도 보았다. 


여성의 여성혐오는 자기혐오로서의 여성혐오와 여성의 여성혐오로 구분된다고 했다. 이때 여성의 여성혐오는 자기혐오를 하지 않는 예외적 여자가 되는, 즉 명예 남성으로 인정받는 ‘출세 전략’과 여성 범주로부터 완전히 이탈하는 ‘추녀 전략(낙오 전략)’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혐오는 사회 정치적으로 자기 정체화 과정에서 타자를 나와는 다른 열등한 대상으로 차별화하는 차이의 전략이며 우월의 반대 즉 열등의 의미로 타자를 대상화하는 타자화의 전략이다. 혐오가 만드는 주체와 타자의 경계가 가장 뚜렷하게 지속적으로 역사화된 것이 바로 남성이 여성에 대하여 갖는 혐오이며 남성이 여성에 대하여 갖는 혐오 즉 여성혐오는 남성을 결속하는데 기여한 사회화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희는 이러한 혐오의 이론을 여성혐오로 국한하여 구술서사에 전략화되고 있는 양상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인 경계에서 발생하는 동요와 균열의 현상에 주목한다. 그는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혐오적 대응을 넘어서는 하나의 논리이자 전략, 사회정치적 함의와 역사성을 내포하는 개념이라고 보았다.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단순한 부정적 감정이나 폭력적 대응을 넘어서는 하나의 논리이며 실질적인 사회정치적 효과를 만들어내는 담론 틀이자 젠더 위계와 규범을 가로지르는 권력을 생산하는 구조적 동인인 동시에 기제라고 말한다. 


여성혐오는 표준 남성의 규범 담론에서 어긋난 비-남성 요소들에 의해 비체화된 여성 표상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드러날 뿐만 아니라 여성 표상에 대한 공포와 신경증을 조장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남성 권력이 허용하는 장소로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제한하고 여성을 비가시화하는 전략으로도 실현된다고 했다.


이영아는 여성혐오를 젠더 문학문화사를 서술하는 방법론으로 제시한다. 현재적 이슈로서 남성작가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여성들의 가부장질서의 순응과 저항, 회피 등을 설명할 수 있는 유용한 근거로 여성혐오를 언급한다. 그러면서 최초의 여권선언문에 나타나는 ‘귀먹고 눈 어두운 병신 모양’, ‘병신 모양으로 사내가 벌어다 주는 것만 먹으며 깊은 규중에만’, ‘밥과 술이나 지으며’ 등의 표현에 나타나는 자기혐오에 주목한다. 


여성이 자신이 처한 억압적 상황을 자신의 몽매에 돌리고 있는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남성과 같아지고자 하는 자격과 의무에 함몰된 의식을 지적한다. 그것이 바로 여성혐오가 여성들 사이에서 성장 혹은 공모되고 있는 증표라는 것이다. 그는 여성혐오에는 공포, 불안이라는 감정과 배제, 격리, 차별이라는 행위가 착종되어 있으며 여성이 위협적인 존재로서 부상할 때 배제와 차별의 격리의식은 생겨난다고 말한다. 


혐오(嫌惡)는 사고와 판단을 수반하는 감정이다. 애초 생존을 위해 갖게 된 그 원초적 감정은 사회화되면서 나와 타자를 구분하고 내 생존을 위해 타자를 위협적인 존재로 인지하게 만드는 믿음을 강화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혐오는 잘못된 판단과 사고로부터 사회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뿌리 깊은 혐오는 시집살이 노래와 같은 약자의 노래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시집살이 노래에는 혐오의 대상이 혐오로 인해 당한 고통과 함께 혐오를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 가져온 오염 혹은 내면화로서의 혐오가 나타난다. 유독 시집살이 노래에 주목하는 것은 차별과 배제의 대표성을 지니는 대상이 그들의 일상에 자행된 폭력에 노출되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을 생생하게 목격하게 해주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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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김영희, 「한국 구술서사와 여성혐오」, 한국고전여성문학 36,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18, 85-137면.

윤지영, 「현실의 운용원리로써의 여성혐오」, 철학연구 115, 2016, 197-243면.

이영아, 「여성혐오의 문학문화사」, 인문과학연구논총 37권 4호. 2016, 13-48면.

이정아, 시집살이 노래의 노랫말에 나타난 여성혐오와 그 의미, 우리문학 60, 우리문학회, 2018. 

임옥희, 「혐오발언, 혐오감, 타자로서 이웃」, 도시인문학연구 제8권 2호,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2016, 79-101면.

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 어크로스, 2018.

마사 너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조계원 역, 민음사, 2015. 

우에노 지즈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나일동 역, 은행나무,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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