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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과경계 Jun 11. 2024

혐오가 일상이지만

시집살이 노래와 여성혐오(2)



시집살이 노래에는 며느리에게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비난과 욕설, 차별과 무시의 말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공포와 불안, 차별과 배제가 난무하는 현장이 반복적으로 장면 화하면서 여성혐오의 현장을 전한다. 그 장면을 엿보는 자는 역으로 그 현장에 공분을 느끼며 며느리를 동정하게 된다.  노래의 이러한 창지는 노래하는 자의 전략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열다섯에 머리얹어/열여섯에 시집가니

시집간후 사흘만에/일거리를 준다하니

들깨닷말 참깨닷말/볶아라고 내어주네

양가매를 볶고나니/양가매가 벌어졌네

양가매벌어진 사흘만에/은동우벌어진 사흘만에

은동우를 깨었구나/시아바씨 하는말이

아가아가 며늘아가/너거친정 찾어가서

논밭전답을 다팔아도/양가매를 물어오이라(중략)

아버님도 여앉이소/어머님도 여앉이소

시누아가 너도앉거라/양가매 석냥짜리

은동우는 두냥이요/은따뱅이 십전짜리

그기사 물어내지/천냥짜리 내몸하나

내몸하나를 물어내소(이하 생략)


<양동가마 깬 며느리>라고 불리는 노래다. 과중한 노동(들깨 닷말 참깨 닷말을 볶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사고(양동가마가 깨지다)가 발생한다. 그러자 이를 물어내라는 시집식구와 며느리가 대치하는 상황이 노랫말을 통해 나타난다. 들깨 닷말과 참깨 닷말을 볶고 나면 멀쩡하기 어려운, 깨지는 것이 당연한 양동가마를 물어내라는 시집식구는 기세등등하다. 무조건 며느리 탓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친정에 가서 물어오라고 한다. 


그러나 며느리는 시집식구들을 모두 다 불러내어 한자리에 앉힌다. 그러면서 며느리는 두 냥 석냥짜리 은동우를 물어낼 테니 천 냥짜리 내 몸도 물어내라며 따진다. 조목조목 합리적으로 논박한다. 비합리적으로 자신을 몰아가던 그들에게 합리적으로 따져 묻는다. 차별과 혐오에 맞서며 그 부당함을 그저 참아 넘기지 않는 멋진 모습이다. 적어도 노래 안에서 그는 당당하다. 이러한 당당함은 이 버전에서만 볼 수 있다는 점이 아쉽다.


집으로 가면 바레기원수/논으로가면 가레원수

집으로가면 시누원수/시어미원수 시아비원수

시원수를 잡어다가/당사실로 목을 졸라

범한 골로 보내고자


논으로 가면/방동파이가 원수이고

밭으로 가면은/밭대기 원수고

집으로 가면은/시누애가 원수다

세원수를 잡아다가/당사실로 목을걸어

대동강에다 돌쳐나볼거나


두 노래는 <세원수>라고 불리는 노래다. 이 노랫말에서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집식구를 원수라고 말한다. 뽑아도 사라지지 않는 잡초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라고 한다. 며느리는 이들을 당사실로 모두 묶어서 호랑이 골이나 대동강에 던져버리고 싶다. 시집살이를 겪어본 편에서는 속 시원한 말이다. 그들을 직접 징벌하겠다니 말이다. 


시집살이 노래는 버전마다 다르게 여성혐오에 반응하는 며느리가 등장한다. 공공연하게 자행된 가족 내 혐오와 그것에 대응하는 며느리의 다양한 태도를 보여준다. 차별과 억압을 침묵으로 대응하다 결국 집을 나가 중이 되기도 하고, 억울하다고 탄식하며 하소연하기도 하며, 시시비비를 따지면서 당당하게 시집살이에 맞서기도 한다. 시집살이 노래에 등장하는 며느리의 태도는 전형화된 무채색이 아니다. 컬러풀하고 다이내믹하게 대응한다. 리얼하게 여성혐오의 현장을 보여준다. 

                                              


참고자료


이정아, 시집살이 노래의 노랫말에 나타난 여성혐오와 그 의미, 우리문학 60, 우리문학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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