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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Jun 21. 2021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빈털터리 친구의 큰 돈 씀씀이

 지금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밖에 나갈 수조차 없는, 그동안 유래가 없었던 잔인한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다. 다들 눈만 보일 뿐, 코와 입은 커다란 마스크로 가려져 있어서 얼굴 구경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의 표정을 볼 수가 없으니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도 없고……. 거기에서 오는 삭막함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더더욱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건,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렸는데도 불구하고 친한 사람들은 물론 웬만한 지인들은 다 알아본다는 사실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저녁 반찬거리가 없어서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린 채 부랴부랴 반찬가게로 향하고 있었는데, 몇몇 엄마들이 날 어떻게 알아봤는지 “00이 엄마,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 가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 순간 깜짝 놀라 상대방을 쳐다봤는데 나 역시 그 엄마들이 누군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머리라도 단정히 매만지고 나올 것을. CCTV가 만연해 있는 요즘, 얼굴 가린 범죄자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분명 누군가는 CCTV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수도 있을 테니까.


 여하튼 지금 시대와는 달리 마스크는 황사 때만 쓰던 코로나 이전 시대에는 20대 젊은이들만 보면 그 풋풋한 싱그러움에 어찌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그때마다 나의 그 시절도 한 번씩 추억해 보곤 했다. 그 시절 난 늘 함께 어울려 다니던 몇몇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과 명동, 이대, 신촌 등을 활보하면서 쇼핑도 하고, 미용실도 가고,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 안에 들어가 떡볶이, 어묵, 순대, 호떡 등을 사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당시만 해도 한창 생기발랄한 20대였으니까 뭘 입어도 예쁘고, 뭘 먹어도 맛있었던 그런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친구가 돈이 없어서인지 매번 신세를 지곤 했다. 예를 들어 돌아가면서 밥을 살 때도 그 친구는 예외였고, 항상 뭘 먹으러 다닐 때도 각자의 몫을 그 친구에게 조금씩 나눠주는 식이었다. 물론 처음엔 다들 못마땅해했지만 그 친구의 주머니 사정상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돈 없는 게 죄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렇게 그 친구를 포함한 네 명이서 자주 어울리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임에 뜸해지기 시작했다. 연락을 하면 전화를 안 받는 경우가 허다했고, 가끔 만나더라도 바쁜 일이 있다면서 먼저 자리를 뜨곤 했다. 솔직히 그동안 좀 얄밉기도 했지만 그래도 사총사로 지내오다가 막상 한 명이 없다 보니 왠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얘들아, 00이한테 남자 친구 생겼나 봐.”

 “정말? 그래서 요즘 얼굴 보기가 힘들었구나.”

 “그럼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솔직하게 얘기를 하든지…….”

 “그러게 말이야. 자꾸 피하니까 괜히 우리들이 왕따 시키는 것 같잖아.”

 “그건 그래.”

 “그나저나 00이한테 남자 친구 생긴 것은 어떻게 알았어?”

 “내 친구가 얘기해 줬는데……. 명동 거리에서 어떤 남자랑 다정하게 손잡고 가는 것을 봤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 남자, 아주 잘 생겼대나 어쨌대나.”

 “그래서 결국 우정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한 거야?”

 “그러게. 역시 사랑이 우정보다 센가 봐.”


 그래도 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해오던 친구였는데, 남자 친구가 생기니까 마음도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그렇다고 사랑을 버리고, 우정을 선택할 수는 없는 일! 그 친구는 그 친구 나름대로 사랑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또 남은 우리 삼총사는 여행도 다니고, 영화도 보러 다니면서 나름 돈독한 우정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다만, 그 친구는 가끔씩 우리들 모임에 참석하면서 우정의 끈은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주머니 사정상, 여전히 우리들 신세를 지면서 말이다. 그 당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건, 그나마 남자 친구가 생겨서 우리가 떠안아야 될 부담이 조금은 줄었다는 것이다. 대신 그 남자 친구가 좀 부담스럽겠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삼총사 가운데 한 명으로부터 황당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그 친구가 자신의 남자 친구에게는 돈을 물 쓰듯이 쓴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은 그 남자 친구와 제법 친하게 지낸다는 주변 사람이 있었기에 드러날 수 있었다. 솔직히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배신감이 들었다. 그동안 우리들에게 했던 행동들이 다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 친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덜 먹고, 덜 입더라도 오직 자식에게만큼은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엄마의 심정이었을까? 사실 자식을 향한 엄마들의 사랑도 남에게 신세를 지면서까지 자식에게 다 쏟아붓지는 않는다.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그 사랑을 위해서 우정을 이용한다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만들 뿐이다. 가끔 기사에서도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쳤는데, 상대방이 변심을 하는 바람에 결국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종종 나오곤 한다.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위선일 수밖에 없다. 혹여, 그런 마음으로 사랑을 유지하려고 한들 과연 그 사랑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진정한 사랑은 결코 물질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돈 없는 게 죄는 아니기에 그 친구의 행동을 이해하고 받아줬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돌아온 건 산산이 부서진 믿음이었다. 당시 다른 친구들은 마음이 어땠을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우정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때부터 우리들은 그 친구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친구와의 추억도 서서히 잊혀갔다. 물론 그 사이에 그 친구로부터 수차례 연락이 왔었지만 다들 그 친구와의 만남을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친구와의 인연은 그 사건을 계기로 끝이 났다.         


 이후 그 친구에 대한 소식을 들었는데……. 결국 남자 친구와 헤어졌고, 그로 인한 상처로 인해 많이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 난 생각했다. 만약 그 친구가 우리와의 우정을 진심으로 대해줬더라면 비록 사랑이 깨지더라도 우정의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사랑과 우정, 둘 다 잃어버린 셈이다. 여자 친구와의 우정에서는 빈털터리! 남자 친구와의 사랑에서는 커다란 씀씀이! 사실 난 그 친구의 모습에서 인간의 양면성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양면성을 가지고 있긴 하다. 굳이 선과 악의 논리로 따지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을 둘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일 게다. 사실 나도 세상을 선하게 살아가려고 하지만 어느 순간 악한 마음이 불쑥 솟아오를 때도 있다. 그 순간, 나 스스로에게 많이 놀라기도 하는데……. 예전, 그 친구를 생각해 보면 인간의 양면성을 감추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그런 어리석은 행동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친구와 인연을 아예 끊어버린 나 역시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였다. 분명 인간에게는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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