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영 Jun 26. 2021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엉덩이의 힘이 보여준 하위권

 흔히들 공부를 잘하려면 엉덩이의 힘부터 길러야 한다고 얘기한다. 실제로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들의 인터뷰를 들어 봐도 합격의 비결이 엉덩이의 힘이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엉덩이의 힘이란 과연 무엇일까? 다소 상징적이긴 한데,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 채 오랜 시간 동안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엉덩이를 떼지 않고 계속 집중한다고 해서 다 공부를 잘하는 것만은 아닐 게다. 흔히 주변 엄마들의 얘기를 들어 봐도 자신의 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서 줄곧 공부만 하는데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다며 푸념 섞인 말을 늘어놓기도 한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똑같이 공부하고, 집에 와서도 늘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왜 성적이 오르지 않을까? 그건 아마도 공부 방법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내 주변의 경우를 보더라도 한 가정은 새벽 늦게까지 공부만 하는 아이에게 아예 두꺼비집을 내리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는데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정은 아이가 학원도 많이 안 다니고, 공부도 잘 안 하는 것 같은데 상위권 수준이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이 있다. 바로 공부를 잘하고 못 하고의 기준이 엉덩이 힘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엄마, 그거 아세요? 학원에 가면 그냥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뿐, 딴생각하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학교에서도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거의 대부분이라고요.”


 모처럼만에 가족끼리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다가 들은 얘기인데, 참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다니랴 학원 다니랴 체력도 체력이지만 공부가 재미없다 보니 더더욱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내 경험상으로도 아이가 공부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거기에다 대고 자꾸만 공부하라고 하니까 나중엔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공부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었다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한다. 아마도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썩 내키지도 않는 데다가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누군가가 옆에서 자꾸 부추긴다면 더 하기 싫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아예 포기하고 싶은 생각까지도 들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가장 가까운 내 아이들을 옆에서 죽 지켜보니 공부가 정말 재미있어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다만, 어떤 계기가 생겨서 특정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경우는 있다. 첫째 딸아이의 경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딱히 꿈이 없었다. 그런데 엑소 멤버인 중국의 레이를 좋아하면서 중국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외고 중국어과에 들어가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면서 중국문화, 역사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결국 00 외고 중국어과에 합격해 지금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대학에 가서도 교환학생으로서 중국에 꼭 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기도 한다.              


 “엄마, 난 영어보다 중국어가 자연스럽게 툭툭 튀어나와요. 아무래도 중국어 회화는 빨리 터득할 것 같 해요.”


 무엇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공부 역시 흥미를 느끼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속도감이 붙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영어는 유치원 때를 시작으로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지만 딱히 흥미를 못 느껴서인지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다. 반면 중국어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은 자신감이 넘쳐서인지 일상생활 속에서 회화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게다가 지금 학원에서 수업하고 있는 중국어에 하나 더 얹어 중국어 회화까지 해야 할 것 같다며 넌지시 말을 꺼내기도 한다.


 요즘 딸아이를 통해 새삼스레 느끼는 건데, 공부는 정말 이렇게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인 내가 굳이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해야겠다는 의지를 품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부가 재미있으려면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어떠한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를 보면 아직까지도 입시 위주의 교육과 주입식 교육으로 도배질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 같은 재미없는 교육에 환멸을 느낄 수밖에.


 솔직히 개인적으로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교육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적성을 미리 파악해서 각각의 적성에 맞게 교육을 세분화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니까 언어적 감각이 없는 아이에게 굳이 외국어를 강요한다든지 수학 기호만 봐도 현기증이 나는 아이에게 수학 선행을 강요한다든지 각 예체능에 재능이 전혀 없는데 예체능을 강요한다든지 하는 억지는 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러한 교육을 실시하려면 교육 분야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미래의 선진 교육을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이어온 썩은 교육은 과감히 잘라내 버려야 한다.


 “우리 아이는 수학 기호만 보면 공포감을 느끼는지 벌벌 떨어요. 예전에 아이가 수학학원에 가기 싫다고 해서 내가 집에서 수학을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좀 심하게 혼을 냈더니 아예 수학하고는 담을 쌓더라고요. 정말 속상해요.”


 엉덩이 힘! 사실 엉덩이 힘도 공부가 재미있어야 그 힘이 제대로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엉덩이 힘이 있으려면 우선 공부가 재미있어야 하고, 공부가 재미있으려면 뭔가 알 듯 말 듯한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꾸만 호기심이 생겨서 더 깊이 있게 파고들어갈 수밖에 없고, 결국 공부하는 방법까지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좋은 성적은 떼어놓은 당상이 아닐까 싶다. 요즘 시험 문제들을 보면 변별력을 가리기 위해서 아주 난해한 문제들을 출제한다. 그런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는 힘은 바로 깊이 있는 공부다.


 예전, 중학교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바로 내 앞에 앉아 있었던 어떤 아이가 쉬는 시간도 없이 어찌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지 어깨너머로 몰래 훔쳐보곤 했다. 그랬더니 각 교과서마다 밑줄을 그어가면서, 게다가 중요한 단어에는 새까맣게 동그라미를 그려가면서 마치 책 속으로 빠져들 것처럼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 아이의 책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주워주다가 보게 된 건데, 얼마나 밑줄을 많이 그어댔는지 보기 흉할 정도로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던 그 아이의 성적이 하위권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도 그 아이를 보면서 참 많이 안타까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공부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그러니까 커다란 나무를 먼저 본 후 뿌리, 줄기, 잎, 꽃과 열매 등의 세부적인 부분으로 옮겨갔어야 하는데 그 아이는 반대로 세부적인 것부터 파고 들어갔던 것이다. 결국 그 아이에게 있어서 엉덩이 힘이란 공부가 재미있어서 책상 앞에 앉아있었던 시간이 아닌, 이것저것 외울 게 너무 많아서 책상 앞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고통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