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나를 향한 위로가 한순간에 배신으로
눈보라가 매섭게 휘몰아치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꽁꽁 얼어붙은 시베리아 벌판은 우리 집안에도 존재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큰아이의 사춘기로 인해 그동안 나름 열심히 가꾸어 온 초원이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희망보다는 여전히 내일도 시베리아를 녹여줄 태양은 뜨지 않을 거라는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았다. 분명 다시 돌아올 거라는 기대는 품고 살았지만 막상 아이의 사춘기와 맞닥뜨리게 되면 그 끓어오르는 분노는 나 스스로도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오늘 7시에 영어학원에 가야 하니까 6시쯤 깨워주세요.”
“그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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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아, 일어나. 6시다.”
“…….”
“00아, 6시야. 빨리 일어나야지.”
“…….”
“너, 안 일어날 거야? 도대체 몇 번을 깨워야 돼. 빨리 일어나라고.”
“…….”
“너 엄마 말이 말 같지 않아? 학원 가기 싫으면 싫다고 얘기를 하든지. 매번 그런 식으로 하려면 학원 때려치워.”
“으악! 정말 짜증 나.”
“후유! 정말 힘들다 힘들어.”
아이가 사춘기도 사춘기지만 아직 어리다 보니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는 한마디로 속이 타들어간다. 학원 문제에 있어서도 아이가 차라리 안 다니겠다고 하면 서로 간의 충돌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공부에 대한 불안감은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매번 학원은 갈 거라고 얘기하면서 막상 갈 때는 귀찮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다 보니 학원을 보낼 때마다 일 하기 싫은 소를 억지로 잡아끄는 진땀 빼는 상황들이 발생하곤 했다. 그것도 매일같이.
그러던 어느 날, 학원 문제, 밥투정, 짜증, 무시, 잠, 대화 거부 등의 사춘기 증세가 한꺼번에 몰려와 그나마 간신히 부여잡고 있었던 내 자존감을 저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그 순간 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고 말았다. 모든 의욕이 상실되는, 그야말로 절망의 늪으로 점점 더 빠져 들어갔다. 멍 했다. 내 온몸의 기가 싹 빠져나가는 듯 붕 뜬 기분에서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이건 아닌데…….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냥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졌다. 오직 강아지만 나의 이 슬픔을 아는지 옆에서 위로해 주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둘째 녀석이 문틈으로 살며시 분위기를 살피는가 싶더니 이내 들어와서는 강아지를 밀치고 내 옆에 앉는다. 그리고는 내 어깨를 다독이며 “엄마, 힘내.”라고 한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 참 신기했다. 설령 말로만 그랬을지라도 나에게는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커다란 위로가 되어주었으니까 말이다. 그때 생각했다. 자식을 둘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사춘기가 동시에 온다면 얼마나 힘들 것인지를. 여하튼 둘째 녀석도 딱히 말을 잘 듣는 자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쌓인 감정들을 다 쏟아내면서 하소연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큰아이에 대한 섭섭함을 둘째 녀석에게 낱낱이 토로했다.
둘째 녀석은 내가 하는 얘기를 다 들어주면서 공감을 해주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때만큼은 왠지 성인이 된 것처럼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하소연도 적당히 해야 하는데 누군가가 나의 억울함을 들어준다는 생각에 그동안 쌓인 이런저런 얘기들을 다 끄집어내면서 넋두리를 하고 말았다. 물론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내 얘기가 길어질까 싶었는지 중간에 급한 일이 있다며 자신의 방으로 가버렸다. 그래도 내가 정말 외롭고 힘들었을 때, 잠깐이나마 내 옆에 앉아 얘기를 들어준 것만 해도 참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우려했던 일이 곧 나에게도 닥치고 말았다. 둘째 녀석도 머지않아 사춘기가 곧 들이닥칠 거라는 예상은 했었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빨리 오게 된 것이다. 큰아이의 사춘기라도 좀 수그러들면 나았을 것을 두 사춘기가 겹칠 것 같다는 공포감이 밀려오면서 난 거의 멘붕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바로 엊그제 내 옆에서 “엄마, 힘내.”라고 하던 아이가 갑자기 눈이 홱 돌아가면서 말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방문이라도 열려고 하면 도끼눈을 뜨고선 “나가세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참 웃긴 건, 둘째 녀석의 사춘기가 극에 달했을 때는 큰아이의 사춘기가 수그러드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큰아이하고는 관계가 좋아져서인지 그다지 부닥칠 일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춘기가 극에 달한 둘째 녀석과 부닥칠 때였다. 예전 큰아이의 사춘기로 힘들어할 때 옆에서 위로해 주던 자신을 드러내면서 수시로 누나와 자신을 비교하곤 했다. 그러니까 내가 큰아이의 사춘기로 힘들어할 때는 자신이 옆에서 다 들어주면서 위로해 줬는데, 누나는 그렇게 하지도 않는데 왜 엄마는 누나한테만 잘해주냐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전혀 통하지 않는 마치 벽과 같은 사춘기 앞에서 어떤 논리가 통할 것이며 설득을 해본들 일이 더욱 복잡하게 꼬일 뿐이었다. 그때는 일단 시간을 두고, 이후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면서 살살 기분을 맞춰주는 수밖에 딱히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지금도 참 아이러니한 게 둘째 녀석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때와 그 위로가 곧바로 배신으로 바뀔 때는 결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한 순간의 반전이었다고나 할까?
사춘기! 지금은 큰아이의 사춘기가 완전히 수그러들었다. 물론 둘째 녀석도 최고조에서 다소 수그러드는 시점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난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도 많다. 순간 급격하게 변하는 감정들과 그 당시 자신이 어땠는지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 때론 나 혼자만 바보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난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사춘기를 겪고 난 아이들은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전혀 딴 아이가 되어있는 걸 보면 더욱더 그렇다. 아마도 아이의 사춘기를 아주 혹독하게 겪었던 엄마들은 내가 지금껏 얘기한 게 무슨 말인지 충분히 공감이 될 것이다. 나를 향한 위로가 한순간에 배신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도깨비장난 같은 사춘기의 반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