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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Jan 09. 2023

기억의 온도가 전하는 삶의 철학

뜨거운 영혼을 갈아 넣은 글 수프

 ‘그래, 그거야!’


 글을 쓰는 작가들은 늘 글감을 찾아 헤맨다. 나 역시 그런 작가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저런 우리네 삶의 얘기들을 글로 풀어내기 위해 시시때때로 멍 때리곤 한다. 물론 여기에서 멍 때린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비친 모습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고, 정작 내 머릿속에는 생각을 모으기 위한 분주한 작업들이 진행 중에 있다. 글에는 여러 종류의 글들이 있다. 시, 소설, 수필, 감상문, 설명문, 극본, 편지글 등이 있고, 종류에 따라 글의 목적과 성격이 달라진다. 그중 난 내가 직접 경험했던 일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경험담 등을 통해 느낀 부분들을 꾸밈없이, 허심탄회하게 써 내려가는 것을 좋아한다.


 우선 글의 주제를 정한 뒤 그 주제에 맞는 대략적인 글감들이 상대방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위로를 줄 수 있는지,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한다. 그리고 이후 확신이 서게 되면, 그 주제에 맞는 글감들을 계속 상기시키면서 목차를 생각해 내는데……. 일단 몇 챕터로 구성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본 후, 각 챕터의 대략적인 챕터 명을 정한다. 그런 다음 시간을 두고 각 챕터에 들어갈 글감들의 꼭지 명들을 대략적으로 정해놓는다. 여기에서 각 제목들은 독자들이 책을 구입할 때 가장 먼저 시선이 꽂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아주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성이 있다. 다만, 본격적으로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굳이 집어넣지 않아도 될 내용, 또 추가시키고 싶은 내용 등 변수들이 많이 작용할 수 있기에 처음부터 목차 명에 완벽을 기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시작이 반이라고는 하지만 시작부터 지치면 이후 본격적인 글쓰기에 오히려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을 테니까.


 내가 경험하고 느낀 부분들! 사실 50을 훌쩍 넘긴 이 나이에도 세상을 알기엔 너무 애매모호한 부분들이 많다. 깨달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 깨달음은 또 다른 의문을 남기기도 하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의외의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그래서 난 그냥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가기로 했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무엇보다도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 마음이 향하는 대로 소신껏 살아가다 보면 적어도 나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자꾸만 떠오르곤 한다. 그중 이 구절은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나의 뜨거운 영혼을 있는 그대로 갈아 넣게 만드는 묵직한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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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의 서시 중 1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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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오를 때가 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을 향해 이런저런 삶의 얘기들을 풀어놓고 싶은 것이다. 억울함, 분노, 사랑, 아픔, 희망, 깨달음, 소소한 행복, 상실, 이별, 만남, 일상, 어려움, 고달픔, 그리움 등등 나의 마음 깊은 곳까지 들어가 그 심오한 얘기들을 죄다 끄집어내어 글로 풀어냄으로써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고, 위안을 얻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까? 결혼 이후,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아니,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나의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것이다. 아마도 마음의 병이 깊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은 나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의 뜨거운 영혼을 갈아 넣은 따끈따끈한 글 수프다. 이 글 수프에는 내가 세상을 향해 말하고자 하는 우리네 삶의 얘기들이 진솔하게 녹아져 있다.


 무더웠던 7월이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이 마치 지구를 녹여버릴 것 같았던 어느 날, 문득 20여 년 전에 깊숙이 묻어두었던 낡은 펜이 생각났다. 그동안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던, 그래서 늘 마음 한편이 텅 비어있었던 난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한동안 상념에 젖어있었다. 그리고는 곧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내 삶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짜 맞추기 시작했고……. 그런 내 삶의 조각들을 연령대별로 정리, 함축적인 시로 승화시켰다. 그렇게 나만의 시집을 통해 내가 앞으로 써 내려갈 글감들의 창고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중 첫 번째 소재는 시집의 맨 마지막 부분인 40대 후반∼50대 초반 사이에 경험했던 삶의 얘기다.


 내가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나의 엄마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을 첫째 딸아이의 사춘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첫째 딸아이의 사춘기를 통해 엄마인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고, 또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나의 엄마를 생각하며 밤새 펑펑 울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세 사람의 삶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한 자 한 자 글을 써 내려갔고, 결국 한 편의 스토리가 완성되었다. 내가 사춘기 육아 서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딸아이의 감당할 수 없었던 반항과 나 스스로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나의 엄마의 커다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나의 엄마에게 느꼈던 그 커다란 사랑을 첫째 딸아이에게 적용을 시켰고, 이후 변화되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솔직히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1년이 흐른 뒤, 세상에 얘기하고 싶은 또 하나의 스토리가 탄생됐다. 그것은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느꼈던 이면의 세계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말도 있듯이 현상은 그냥 우리에게 보이는 것 그 자체일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나 같은 경우, 운이 좋았던 게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상대방이 속내를 드러내며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해줌으로써 그 이면의 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나 스스로도 그 이면의 세계를 통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 사라졌고, 그런 나의 경험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또 다른 스토리를 준비 중에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억에 관한 얘기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삶을 지배하고, 앞으로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기억에 대한 온도를 측정해 보고 싶었다. 내 삶에 있어서 어떠한 기억들이 나의 마음에 따스함을 전해주는지, 또 열정을 불러일으켜주는지, 또 외로움과 삭막함을 안겨주는지, 또 시린 아픔을 전해주는지 기억 하나하나를 소환시켜 진솔하게 풀어냈다. 지금도 문득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그 어떠한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을 다시 한번 천천히 떠올려보면서 마음 한편이 따사로워짐을 느낀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들은 어떤 기억들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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