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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Jan 11. 2023

기억의 온도가 전하는 삶의 철학

기억의 소환, 그 온도를 느끼며

 “엄마, 이불이 뽀송뽀송하고 푹신해서 너무 좋아.”


 이제 곧 가을이다. 길고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맞이를 하면서 아이들 침대에도 가을의 분위기를 입혔다. 여름 내내 덮었던 시원하고 얇은 이불을 다 걷어 내고, 하얀 솜이 도톰하게 들어있는 푹신한 이불을 꺼내 아이들 침대에 각각 세팅을 해줬는데……. 아이들은 뽀송뽀송하고 푹신한 이불에 벌러덩 누운 채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인 '대' 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바로 나의 엄마에 대한 기억이다. 빳빳하게 풀을 먹인 광목 홑청에 한 땀 한 땀 시침을 하여 만든 엄마의 이부자리는 그 시절, 나를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아이로 만들어 주었던 따뜻한 사랑이었다.  


 이렇듯 삶을 살아가다 보면 문득, 그 어떠한 기억이 스쳐 지나갈 때가 있는데, 그 당시 엄마의 이부자리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따뜻함을 전해주곤 한다. 그래서일까? 그 편안함과 따뜻함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나의 아이들에게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이부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다. 그리고 나 또한 아이들의 기억 속에 그런 따뜻한 엄마로 남고 싶다.


 문득,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오른다. 첫 책을 집필할 당시였다. 무척이나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자료들을 찾고, 취재하고,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첫 시작에 대한 순수한 열정!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과 두려움도 있었지만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알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가슴 벅찬 일이었다. 그때 그 열정, 그 끓어오르던 열정에 대한 기억이 가끔은 삶의 매너리즘에 빠진 나를 일으켜 세워주기도 한다. ‘그래, 지금 이 나이에도 못 할 게 뭐 있어?’ 그렇게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 힘으로 계속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기억이라는 것은 문득 스쳐 지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러 소환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마음이 외롭고, 허전하고, 삭막할 때 그런 기억들을 소환함으로써 깊은 사색에 빠지곤 한다. 지금은 미국 시민권자가 되어 있는 남동생이 언젠가 나와의 전화 통화에서 자신은 사춘기 때 그 누구에게도 마음 터놓을 가족이 없었다고 했다. 그 순간, 난 심하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했고, 이내 코끝이 시큰해졌다. 딱히 사춘기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남동생의 감춰진 아픔 때문이었다. 그 당시 힘들게 살아가는 가족들 앞에서 사춘기는, 한마디로 사치였던 것이다. 게다가 한창 방황하던 나에게 애써 모은 돈 탈탈 털어 모토로라 삐삐까지 선물해 주던 남동생의 마음, 누나로서 그 마음을 헤아리자니 참 아프다.


 이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는 허전함과 쓸쓸함을 불러일으키는 삶의 얘기들도 있다. 나아가

 마음이 너무 시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도 있는데……. 어느 순간, 그런 기억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의 몸과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기도 한다. 한 예로 세월호 사건은 나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했다. 지금도, 아니 영원히 나의 뇌리 속에는 망망대해 속 커다란 배 한 척이 기울어져 있을 것이다. 그 당시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고, 감당하기 힘든 깊은 슬픔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도 세월호는 두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한편으로 죄책감마저 들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바라건대.. 부디! 그들의 남겨진 가족들이 평안하기를 바랄 뿐이다.   


 기억!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기억들, 그 기억들 속에는 각각의 따뜻함과 뜨거움, 싸늘과 차가움 등과 같은 온도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러한 기억의 온도들이 나의 삶에도 분명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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