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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시케 Nov 12. 2021

완벽에 성공하기보다는 실패를 완성하기로 한다

울퉁불퉁한 아름다움과 완벽하지 않은 온전함 

상담 시간에 하고 싶은 말을 

빼곡히 적어오시는 분들이 있다.

 

일주일 내내 지난 상담시간에 했던 이야기들을 

성실히 복기하고

녹음 파일을 여러 번 듣고, 

지난주의 키워드와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서

본인이 만질 수 있는 아픔의 뼈대에

그 감각을 비춰주는 상담자인 나의 말을 덧붙여서

보다 정확한 마음의 실루엣을 

가다듬어 가고 싶어 하는 마음.

 

말하자면 나도 이런 타입이기에

이런 계획성, 준비성, 성실함, 꼼꼼함을

높이 사곤 했다.

 

지금은 그것을 높이 사는 만큼

그 높이가 불러올 낙차 역시 잘 전해주기 위해

밑에서 느슨하게 안전망을 쳐두고 듣기도 한다.

  

삶을 너무 촘촘하게 살아내려 하다 보면

되려 듬성듬성 빠져나가는 것들이 있음을

내 삶 속에서도 매일같이 마주하기 때문이다.

 

-

이것을 깨닫게 해주는

여러 계기가 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계기는 

레지던트 상담자(수련 4년 차) 시절로 거슬러 간다.

 

 

그때 나는 

까다로운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시는 분을 만나고 있었는데

우리는 둘 다 아주 성실한 자세로 상담에 임했다.

그(녀)는 상담실에 오면 앉자마자 

편지처럼 접어둔 종이를 펼쳐 

‘선생님 만나면 얘기해야지 목록’을 읊는 것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나 역시 일주일 내내,

그 전 상담시간에 그(녀)가 남긴 인상과 주요 키워드

거기에 필요할 것 같은 이야기들을

어딘가에 적어두었다가

가장 좋은 시기,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전해주기 위해

말하자면 상담시간을 완벽하게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애썼다. 

 

나의 목표는 '완벽한 조율'이었다. 

 

 

우리가 각자 가져온 퍼즐 피스들은 

상담이라는 판 위에서 잘 맞춰질 때가 많았고

우리는 같이 합심해서 목표를 향해 항해 가는

잘 맞는 한쌍 같았다. 

 

 

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이런 상담의 과정을 보신

슈퍼바이저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노트에 적어온다고요?

아유, 지루하고 재미없네.'

 

'둘이 너무 잘 맞아서 오히려 탈이야'

 

 

 

성실하고 촘촘하나 

지루하고 재미없음,

 너무 잘 맞아서 오히려 탈임,

 

 

 

이런 직설적인 표현 아래 

뭔가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성실하고 촘촘하게만 

살고 상담을 하다가는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삶의 방향을 지지만 하기보다는

또 그런 삶의 방향에 균열을 가해보는 연습도

중요한 것 같았다.

목표를 세우나 그것을 

스스로 무너뜨릴 줄도 아는 연습이었다.

-

 

 

마음은 조립 물이 아니었다.

상담도 촘촘하기만 해서는 

여백과 틈이 없었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세상이 완벽하지 않아서 상처 받는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불완전성은 우리 삶의 전제였고

우리 존재의 핵이었다.

 

또 우리는 존재 자체로 불완전하기에

세상이 불완전하다는 점에

오히려 남몰래 안도하기도 한다.

 

우리가 정말 힘든 지점이자, 

우리를 정말로 상처 입히는 지점은, 

우리의 불완전성을 받아주는 틈이 없는

세상의 촘촘한 불완전성과  견고한 완전성이었다.

 

우리의 불완전성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풀어둘 틈이 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결국 불완전한 세상 속 불완전한 나에 대한

날카로운 거절과 단절을 감각한다.

나와 세상의 접촉면 사이의 마찰과 불협화음에 눌려,

우리 내면의 면면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었다.

우리는 그래서 신음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갈망하는지도 몰랐다.

촘촘하고 완벽한 사랑을 구현해내려 하느라고

지쳐있던  마음을 그대로 가만 뉘어놓을 수 있는

넉넉하고 부드럽고 따스한 빈틈을. 

 

결국

듬성듬성 느슨하고 넉넉한 사랑이

촘촘하고 완벽한 사랑을 포괄했다.

 

 

 

그러니 나는 

서로를 마주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완벽하게 사랑해주기 위해 마음을 쓰기보다는,

그럼으로써 완벽한 조율을 구현하려 너무 애쓰기보다는,

 

서로를 마주했을 때

제대로 마주하는 것,

우리가 가야 할 목표와 지도를 잘 세워가리라는 마음을, 

세우기도 하지만 때로 내려놓기도 하면서

서로의 눈을 보며 

온전히 함께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은 틈을 메워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있었다.

이 세상 어디엔가 

내가 내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엉망진창의 감정을, 

나 자신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랬는데도 불완전한 세상이

불완전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면

그것은 엉망진창인 세상 속에서

자주 엉망진창이 되고 마는 내 마음을 안고도

그래도 살아볼 만하리라는 

어떤 엉망진창의 아름다움을 긍정하게 된다.

긍정을 긍정하는 것만큼이나

부정을 제대로 긍정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목표였다.

 

박음질이 완벽하고 실루엣이 아름답고

우아하고 고요한 완벽한 예쁨을 내려놓고

 엉망진창의 해방과 안도와 아름다움을 

실감하고 내뿜는 자유와 치유.

  

그 과정에서 

세상도 상담자도 상담실도 불완전함을

그러니까 나도 불완전한 그대로 온전함을

상담의 과정 동안 내담자들이 경험하기를 바랐다.

 

그런 면에서 상담은

마찰음과 불협화음 속에서 내 안의 화음을 발견하는 과정,

완벽함의 상실을 제대로 애도해가는 과정이었다.

-

 

 

그때 그분께 우리 관계의 판이 

얼마나 불완전하기에 또 완전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떤 앎의 차원이 마음에 스며든다고 해도

그것이 밖으로 구현되기까지는

더 많고 높고 깊고 넓은 

임계점들을 필요로 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회기의 상담 내에서 같이 해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하기로 했던  목표의식도  

같이 내려놓아 보자고,

우리 조금 더 부들부들하게 해 보자고

그래도 원하는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모험과 변주를 허락하면 

삶이 더 신나고 재미있을 수 있다고

이런  얘기하면서 같이 눈빛을 반짝이며 

끄덕임을 함께 했던 그 순간이

우리의 만남 속에  있었던 덕분에

 

우리의 상담은 결국 완벽하게 불완전했고

그 속에서 우리는 불완전하게 온전할 수 있는

기쁨을 알았다.

 

 

그(녀)는 결국 원하던 대학원에 안착했고

그것으로 애초의 상담 목표에 성공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상담을 계기로 

완벽에 성공하려 했던 마음의 말머리를 

조금씩 돌려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완벽에의 성공보다는 

실패를 완성해나가는 힘과 기쁨을

받아들이는 다른 삶의 차원을 실험해보기도 했다는 것.  

 

 

-

상담은 본디 내담자의 삶을 바꾸기 위해 고안된 관계이지만

사실 상담이 진심으로 바꾸는 사람이란 

상담자 자신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상담실에서 마주해온 내담자분들은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세상의 치원을 열어주었다. 

그 접촉면을 통해

나는 나라는 사람의 진정한 면면들을 

조금 더 받아들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마주하는 것은 나의 불완전성이고

어떤 불가해함이고 또 어떤 불가능성이다.

하지만 이 모든 불완전성과 불가해함과 불가능성 위에서

가능성을 발견해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나가는 여전히 성실한 노력을

쌓아갈 힘을 항상 또다시 내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  

완벽을 향한 충동들을 다듬어가고 구현해가다가

자주 스텝이 엉키고 엉망진창이 되는 나의 면면들을

전보다 더 편하게  바라볼 힘을 배우게 된 것 같다.

 

완벽에 성공하기 위해 내달리던 마음의 말머리를 돌려

실패들의 의미와 선 밖으로 비어져 나오는

넘치거나 모자란 마음들의 의미를 

오늘도 조금 더 받아들여간다.

 

완벽에 성공하기보다는

실패를 완성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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