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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성일 Apr 16. 2021

이름을 들어보니
화요일에 태어나셨군요

<미얀마 8요일력> 2화

<미얀마 8요일력> 연재 두 번째 글을 업로드하는 2021년 4월 16일, 여느 때 같았으면 미얀마에서는 밤하늘의 별자리가 쌍어궁(Pisces)에서 백양궁(Aries)으로 바뀌어 새해가 시작하는 띤잔(Thingyan) 축제를 맞아 생명이 넘치고 즐거운 휴일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2월 1일 발생한 군부 쿠데타로 인해 약동하는 생명을 만끽할 수 없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 축제를 보이콧하고 민주화 운동을 이어나가는 미얀마 시민들의 뉴스를 보게 된다. 

오늘은 또한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는 날이기도 하다. 7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밝혀지지 않는 진실과 해결되지 않는 슬픔을 아는 듯, 하늘에서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미얀마와 대한민국에서 안전이 보장되고 평화가 찾아오길 기도하며 글을 시작한다. 






미얀마 양곤에서 우연히 만난 일일 가이드 수린 씨와 함께 술레 파고다 사원을 둘러보았다. 미얀마에서는 일주일을 8요일로 센다는 수린 씨의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사원을 천천히 걸으며 우리는 요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요일 띠


수린 씨가 말했다.

"미얀마 사원에서 요일을 상징하는 제단이 있다는 말씀은 드렸죠? 그 제단 아래를 잘 보시면 조그마한 동물 조각이 있을 거예요. 한번 보세요."

"아! 여기 화요일 제단에는 사자가 있네요?"

다른 제단을 돌며 동물을 계속 찾아보니, 쥐, 호랑이, 코끼리 등 요일마다 다른 동물 조각상이 하나씩 세워져 있었다. 동아시아의 12 간지 띠가 연상되었다. 


똘기 떵이 호치 새촘이...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 


동아시아에서는 매해를 상징하는 열두 동물을 띠로 정해 상서롭게 생각한다면, 미얀마에서는 요일마다 동물을 정해 자신이 태어난 요일의 동물에게 기원하는 풍습이 있다.


월 - 호랑이
화 - 싱하
수 오전 - 코끼리 (상아가 있는)
수 오후(라후) - 코끼리 (상아가 없는)
목 - 쥐
금 - 기니피그
토 - 나가
일 - 가루다


그리고 각 동물은 수호동물로서 팔방위를 지키는데, 각자 맡은 방향에서 들어오는 악한 기운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술레 파고다에도 방위에 따라 동쪽에는 호랑이 제단이, 남쪽에는 코끼리 제단 등이 놓여 있었다. 요일과 동물을 그림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요일별 동물과 방위 (c) Noh Sungil



통성명


미얀마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이름을 주고받은 뒤에는 서로의 태어난 요일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그 요일에 해당하는 글자를 초성으로 쓴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가이드 수린 씨는 자신이 자음 'စ(/sa/)'로 시작하는 화요일 생이라 말했다. 

아래 도표는 미얀마 문자의 자음 33자이다. 문자를 요일로 묶어 이름을 짓는다.


미얀마 자음 33자 중 6자를 제외한 27자가 이름 초성으로 쓰인다. (c) Noh Sungil.



출생기록


미얀마 전통에 따르면 태어난 요일, 시간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의 궤적이 정해진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는 뿌나(Punna)라 불리는 역술인 또는 점성학자를 찾아가 아기가 태어난 요일과 시간을 알려주고 이름과 운명이 적힌 팜잎을 받아 온다. 자타(Zata)라 불리는 이 팜잎은 일종의 출생증명서라 할 수 있다. 자타에는 아기가 태어난 순간 천체의 위치를 기록해두었고, 삶의 순간순간 마주칠 운명을 나이별로 점쳐 새겨두었다. 그래서 자타가 타인에게 노출될 경우 불행한 일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어릴 때는 부모가 안전하게 보관하고, 성인이 되면 스스로 안전한 곳에 보관한다. 그리고 삶을 마감하고 죽음을 맞이하면 그 사람의 자타는 불에 태워 보낸다.


19세기를 살았던 누군가의 자타 (c) michael backman ltd.


19세기 영국에서 번역한 누군가의 자타 기록.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얀마의 다양한 전통이 요일로 묶이는 것을 보면서 반복되는 삶의 단위―일생, 일 년, 한 달, 일주일, 하루―를 곱씹어본다. 계절이 되돌아오는 1년, 달이 기울었다 다시 차오르는 한 달, 해가 떴다 지는 하루... 인간은 거대한 우주와 관계를 맺으며 삶을 세는 지혜를 터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가 거듭 주목하고 있는 일주일은 인간이 시간을 기록하는 방식 중 유일하게 천문학을 따르지 않는 단위이며, 한 사회의 시스템과 문화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 시간 단위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부르는 요일의 이름에 너무나 천문학적인 이름이 붙어 있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월    (달) 
화    (화성) 
수    (수성) 
라후 (일식, 월식)
목    (목성) 
금    (금성) 
토    (토성) 
일    (태양)


인간은 밤하늘을 올려보며 시간을 세고 삶을 경영했다. 미얀마 사람들도 일주일에 밤하늘을 새겨 넣었다. 바로 힌두 점성학을 통해서 말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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