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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성일 May 14. 2021

(달) 원조의 원조 (력)

<미얀마 8요일력> 6화

미얀마 달력을 연구한 지 몇 달이 지났다. 미얀마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전 세계를 돌아 인도 구석구석의 역사를 뒤지고 있다. 세계 여러 지역을 둘러보니 다양한 문화만큼이나 다양한 달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날을 세는 방법이 이렇게나 많다니, 그레고리력과 음력이 전부인 줄 알았던 나는 너무 좁은 세계를 살고 있었다. 동서고금의 다양한 달력을 살펴보면서 달력을 구분하는 여러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해와 달 중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지 - 해인지, 달인지, 둘다인지.
1년 주기는 항성년(sidereal)과 회귀년(tropical) 중 어느 것을 따르는가?
새해를 언제로 정하는지
윤년 계산은 어떤 방법으로?
기원년은 언제로?


달력을 만들 때 고려해야 하는 계산법과 기준이 지역과 문화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것을 보면서 미얀마 달력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면 미얀마 달력이 어떤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 혹은 어떤 문화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2018년 1월 미얀마 달력



미얀마 달력의 특징


미얀마 달력의 새해는 4월 중순에 시작한다. 미얀마 달력은 매월 날짜는 음력으로 세면서 1년은 천구와 황도를 기준 삼는 항성년(sidereal)을 따르는 태음태양력(lunisolar)이다. 고대 인도 달력을 기본형으로 만들어졌지만, 특이하게 메톤 주기법(Metonic cycle)을 따른다. 메톤 주기법은 19년마다 한 번씩 태양과 달의 주기를 맞추는 계산법이다. 특이하다고 표현한 것은 메톤 주기법이 인도 달력이 따르는 항성년(sidereal) 보다 태양력(tropical)에 적합한 계산법이기 때문이다. 미얀마 달력에 메톤 주기법이 적용된 것이 언제인지, 어떻게 들어왔는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인도 달력들이 메톤 주기를 따르지 않는 것과 미얀마력의 기원이 서기 638년부터 정립되어 시작하는 것을 보면 그 사이에 메톤 주기가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복잡한 구조 때문에 불규칙한 윤월, 윤일을 계산해 달력을 만들게 된다.


이처럼 여러 가지 시스템을 혼합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미얀마 달력은 먼 미래까지 계산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미얀마 종교문화부(Ministry of Religious Affairs and Culture) 산하 달력 자문회의 소속 우 아웅 칫(U Aung Chit) 씨에 따르면, 미얀마 달력은 5년 앞까지만 계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미얀마) 달력은 5년 앞까지만 미리 적을 수 있습니다. 더는 안돼요. 미얀마 달력은 황도와 백도, 달의 위상 변화, 계절, 불교력이라는 다섯 가지 순환 주기를 기초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미얀마 달력은 그레고리력처럼 수백 년 앞까지 달력을 미리 만들지 못합니다." (기사)



원조 달력


이렇게나 복잡한 미얀마 달력을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동남아시아 내륙 지역에서 사용하는 달력의 원조가 바로 미얀마 달력이기 때문이다. 미얀마 달력이 동남아시아 내륙 지역으로 퍼진 경위는 이렇다.


버간 왕국의 중흥기 이후 버간의 문화가 주변 지역으로 뻗어나가 13세기에는 현재의 태국 북서부 지역에 미얀마 달력이 전해졌다. 그 이후에는 16세기 무렵까지 란나(Lanna) 왕국을 통해 남쪽으로 수코타이(Sukhothai) 왕국, 동쪽으로 란샹(Lan Xang)이라 불리던 라오스 일부 지역, 미얀마와 국경을 접한 중국의 시솽반나(Xishuangbanna), 캄보디아의 앙코르(Angkor) 왕국 등으로 전해졌다.


미얀마 달력이 동남아시아 내륙 지역으로 전파된 경로. (c)Noh Sungil


미얀마에서 전해진 역법은 각 지역의 문화에 맞게 조금씩 개량되어 쭐라싸카랏(Chula Sakarat, 팔리어 기원)이라는 이름으로 동남아시아 내륙지역의 표준 역법으로 19세기까지 두루 쓰였다. 서양식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이 동남아시아에 들어온 이후로는 그레고리력이 표준 역법이 되었다. 그 이후로 미얀마에서 유래한 역법은 미얀마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존재감이 거의 사라졌고, 민간에서 종교와 민속 행사를 위해 참고하는 달력으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레고리력을 표준으로 사용하면서 음력을 민속 절기에 사용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원조의 원조


오래전 장충동 족발 골목에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골목 식당들이 너도나도 '원조'를 간판에 내걸고 있다. '원조가 여럿 있을 수 있나?'를 고민하던 내 눈에 들어온 간판은 '원조의 원조'였다. 묘하게 끌려 원조의 원조 집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원조의 원조 집 족발 맛은 생각나지 않지만, '원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재미있는 기억이다.


미얀마 달력을 연구한 어윈(A. M. B. Irwin)에 따르면(The Burmese & Arakanese Calendar, 1909), 미얀마 달력은 기원년인 638년을 정할 때 천체 주기 계산법으로 인도에서 기원한 천문학 계산 방식인 '수리야 시단타(Surya Siddhanta)'를 따랐을 것으로 추정한다. 동남아시아 달력의 원조가 되는 미얀마 달력이지만, 미얀마 달력도 애초에 힌두 달력을 기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봤을 때는 원조의 원조를 찾아 한번 방문해보고 싶어 진다. 인도는 아주 오랜 역사 속에서 드넓은 영토와 다양한 민족과 언어가 혼합된 복잡한 곳이기에, 미얀마 달력의 원조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앞에서 미얀마 달력의 특징을 찾아보았기에, 그것을 실마리로 인도 여러 지역의 달력과 비교해보는 것이 좋겠다.


지난주에 살펴봤던 것처럼 미얀마 퓨족의 스리 크세트라(Sri Ksetra) 왕국에서는 인도의 사카(saka) 연대를 사용했다. 현재 인도의 인도 국정력(India National Calendar)도 사카 연대를 따르고 있다. (링크)


인도 국정력에 따르면 새해는 서력 3월 중순-4월 중순에 해당하는 차이뜨라(Chaitra) 월에 시작하는데, 지역별로 새해를 정하는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인도 북동부 지역인 벵골(Bengal), 아삼(Assam), 오리사(Odisha) 등지에서는 미얀마와 마찬가지로 차이뜨라 다음 달인 보이샥흐(Boishakh, 서력 4월 중순-5월 중순)에 새해를 시작한다. 이 지역 달력은 비크라마 삼밧(Vikrama Samvat, Vikrami Calendar)이라 하여, 미얀마 달력처럼 태음태양력 체계를 기초로 날짜를 계산한다. 


인도, 특히 위에 언급한 동북부 지역에서는 새해를 '메사 산크란티(Mesha Sankranti)'라고 부른다. 산스크리트어로 '산크란티'는 바뀐다는 뜻이고, '메사'는 힌두 점성학의 양자리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양자리로 바뀌는 시기를 뜻하는 단어이다. 메사 산크란티는 보통 서양력 4월 13-14일경이며, 동남아시아의 새해와 일치한다. '산크란티'는 태국의 새해 물 축제인 '송크란(Sonkran)'와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 



앞에서 알아봤듯, 미얀마 점성학의 출생 천궁도 형태가 동인도 지역과 닮은 이유는 아마도 인도 북동부 지역에서 달력이 유래한 이유 때문이라 연결 지어 본다. 


시간을 기록하는 도구인 달력이 이토록 오랫동안 인간의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삶에서 달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 같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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