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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 Mar 07. 2024

18년 만에 다시 만난 “고도를 기다리며”

새털처럼 가벼웠던 고도의 존재가 무거워졌다

학부모 독서모임에서 18년 만에 고도를 다시 만났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이다.

현재 신구 선생님과 박근형 선생님의 캐스팅으로 연일 매진 사례를 하며 전국 투어를 하고 있는 핫한 연극이기도 하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두 부랑자 에스트라공과 블리디미르가 하염없이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는 그런 이야기다.



고도와의 첫 만남은 연극원 전문사 공연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블라디미르역을 했던 전문사 연기과 선배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역시 전문사라며 감탄을 했던 기억.

텅 빈 무대에 앙상한 나무, 그 사이 걸쳐진 어스름한 달. 이승이 아닌 것 같은 무대 미술 미장센이 기억에 남는다. 아, 럭키의 우스꽝스러운 춤도.



두 번째 만남은 김윤철 선생님의 연극사 수업이었다.

사무엘 베케트, 부조리극, 희비극. 연극사 수업은 연극원 필수 수업일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수업이다. 이 작품에 대해 심도 있게 배웠던 거 같은데.....

철없던 나와 내 친구들은

고도의 의미가 다 무어냐 관심 없다

“학식 먹으러 가자” “고도를 기다려야지”ㅋㅋㅋ

“집에 가자” ”고도를 기다려야지 “ ㅎㅎㅎ

하루종일 패러디 하며 깔깔 대던 기억만 남아있다.

그때의 우리에게 고도는(이라고 쓰고 연극은 이라고 읽는다)은 일상이고 재미였다.

가벼웠지만 그만큼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지금,

살다 보니 삶이 내 뜻과 의지대로 굴러가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큰 건 바라지도 않고 소소하고 평범하게 행복한 일상을 꿈꿨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탈한 일상의 연속이 가장 이루기 어려운 일이란 걸 깨달아간다.



주변을 둘러봐도 그렇다. 내 잘못도 아닌데 억울한 일에 걸려든다던지, 건강하던 가족이 갑자기 아프다던지,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다던지.. 내 의지, 의도와는 관계없이 갑자기 별안간에 닥친 황당한 일들이 더 많은 게 우리의 삶이다.



이제 다시 읽어든 고도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삶의 무게가 무거워진 만큼

고도의 존재가 무겁게 느껴진다

그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기다리던 게 자유인 걸까? 희망일까? 평화일까? 행복인가? 행복은 과연 영원할까? 그도 아니면 영원한 안식 죽음인가? 맹목적으로 기다리던 고도를 만나면…? 정말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걸까?



작가 사무엘 베케트는 ‘고도’를 ‘신’으로 읽지 말라고 했지만, 지금은 나에게 ‘고도’는 전지전능한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나도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처럼 고도를 간절히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이제서야 그들의 행동이 말이 이해가 되어간다.



나이가 들수록 내 힘으로 해결해 나갈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며 겸허해진다. 종교가 없는 나는 이제라도 믿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무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서 이지적인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이어령 선생님이 말년에 종교를 가지셨나 보다.



18년 만에 다시 고도를 마주하며 새털처럼 가벼웠던 스무 살의 마음과 걱정 없고 철없던 그 시절이, 그때의 내가, 우리가 그리워졌다.




에스트라공 : 이리 오기로 돼 있는데.

블라디미르 : 딱히 오겠다고 말한 건 아니잖아.

에스트라공 : 만일 안 온다면?

블라디미르 : 내일 다시 와야지.

에스트라공 : 그리고 또 모레도.

블라디미르 : 그래야겠지.

에스트라공 : 그자가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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