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살다살다 이런 이야기는 머리털 나고 처음 들었다. 회계과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니 글쎄 내가 쓴 계좌번호를 못 알아보겠다는 것이 아닌가. 흥칫뿡이다. 아침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카톡이었다. 분노, 절망, 부끄러움, 충격은 없었다. 낙하산 하나 들러메고 구름 위로 몸을 던지는 스카이 다이빙처럼 이색적인 경험을 했을 때의 신선함이랄까. 이 땅의 단군의 자손들이 몇 다리 건너 친척이라면 분명 내 몸속 어딘가에 한석봉의 피도 흐르고 있을 텐데. 아니 유전적으로 따질 것도 없이 초등학생 때 경필부에서 활동하기도 했었는데. 심지어 한글이 아니라 숫자를 못 알아봤다는 사실이 내 감정을 배가시켰다. 그래도 뭐 돈 준다는 이야기인데 그깟 글씨 좀 못 알아보면 어떻나. 엉뚱한 곳으로가지 않고 내 통장에 올바로 날아들어와 마음도 지갑도 훈훈하게 해주니 그걸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