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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우 Nov 19. 2021

그 거리만큼이나 반가운 하루였다.

2021년 11월 열닷새날의 단어들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맹자 왈.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 이상, 이 이하 나타낼 말이 없다.


업무차 멀리서 온 SH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지난 주말 결혼식을 가지 못하게 되면서 축의금을 부탁하려고 연락했는데, 마침 근처까지 올 일이 있다고 해서 겸사겸사 만나기로 했다. 장맛비가 내리던 때에 HR을 송별한 이후로 처음 보는 것이니, 그 사이에 계절은 바뀌고 은행나무가 거리를 물들였다.


날도 쌀쌀하니 따뜻한 게 먹고 싶다며 저녁은 칼국수나 샤브샤브로 하자고 했다. 곧바로 전에 가려다 말았던 샤브샤브집이 생각났지만, 이번 달은 유난히 지출이 컸던 탓에 부담 적은 칼국수집에 가자고 링크를 보냈다.


일을 마치고 걸음을 서둘러 칼국수집에 들어서니 먼저 도착해 주문까지 마친 SH가 기다리고 있었다. 몇 달만에 만나도 어제도 만난 것처럼 어색함이 없고 즐거워서 좋다. 자리에 앉자마자 잘 지냈냐 어쨌냐는 인사말은 치워두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 사이에 칼국수를 모두 건져 먹고 라면사리를 한 번 더 가져다 먹고 볶음밥까지 말끔하게 비워냈다.


나는 불과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나의 근황을 꺼냈고, 또 그와 관련해 마음에 걸리는 것을 물어보기도 했다. 작은 고민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또 그대로 좋다. 카페로 자리를 옮기면서 SH는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향기 없는 꽃' 크... 박수와 감탄을 마다할 수 없었다. 나는 오늘 SH가 지하철 출구를 제대로 찾아 나올까, 칼국수집은 제대로 찾아갈까 하는 걱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는데, 가끔은 이런 통찰력에 입이 떡하니 벌어진다.


주문한 차를 바닥이 보이도록 홀짝이고도 가는 시간이 아쉬워 플랫폼에 지하철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멀리서 온 친구는 다시 또 기차를 타고 얼마간을 달려야 했는데, 그 거리만큼이나 반가운 하루였다.



祝儀(しゅうぎ) : 축의
つまらない : 시시콜콜하다
玉(たま) : 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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