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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Oct 05. 2023

신랑의 당근경험담 에피소드 1

feat. 결국 당근앱 삭제

신랑은 종종 당근으로 낚시 용품을 사고팔았다. 약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모든 일은 그놈의 ‘버즈’로 인해 일어났다. (‘버즈’라는 단어도 듣고 싶지 않다.) 잘 쓰던 무선이어폰 버즈가 이제 잘 안 들린다고 새로 사야겠다는 얘기를 하길래 내 거 잘 안 쓰니 쓰라고 했지만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그러겠거니 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월요일.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당근에서 싼 가격에 버즈를 구입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아 직거래였는데 택배로 보낸다고 하네.”라고 신랑이 볼멘소리로 얘기한다. 나는 혹시 몰라, “택배비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반반 내기로 했어.” “보통 요즘 그렇게 하더라고 근데 왜 직거래로 했다가 택배로 바꾸는 거야 귀찮게.”라고 했고 나는 그 후의 신랑의 얘기를 통해 뭔가 쐐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쐐함은 잘 틀리지 않는다. 


상황은 이랬던 것이다. 신랑은 버즈가격 11만 원을 이미 입금한 상태였고, 택배로 바꾼 후에 추가로 2천 원도 입금한 상태였다. 나는 왜 그랬냐고 보통은 택배 송장을 사진으로 받고 나서 입금한다고. 솔직히 이것도 사기를 치자면 그래놓고 안 보낼 수도 있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 최소한 이 정도는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고. 뭐 그래도 직거래만 해왔던 신랑은 이걸 몰랐을 수도 있고 입금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혹시 몰라서 그래서 택배는 언제 보내준대?라고 물으니 부산에 있는 오빠 것을 본인이 대리 거래하는 것인데 오빠가 자는지 연락이 안 되어서 오늘은 못 보내주고 내일 보내주겠다는 개소리 시전. 나는 이건 100%다 싶어 당장 신고하던지 그쪽 사정 봐주지 말고 당장 보내라고 해라 했다. 신랑은 분명 보내주기로 했으니 내일도 안 보내주면 그때 그렇게 하겠다고 그래서 내가 너무 닳아서 세상을 못 믿고 의심하는 건가 싶어 그냥 내일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화요일. 바로 그 내일이 왔고 밤 10시가 되어 신랑은 오늘 보내기로 했는데 연락이 없으니 안 보냈음 환불해 달라고 재촉했고 버즈녀는 곧 있음 폰이 잠겨서(?) 전화번호를 주겠다고 본인 전화번호를 당근톡에 남겼다. 


수요일. 신랑은 버즈녀에게 전화와 문자를 했으나 신랑의 전화와 문자는 다 씹혔다. 신랑은 첫날부터 의심 어린 눈으로 보는 나에게 당근호구로 책잡히고 싶지 않아서, 나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전화에 문자에 나름 압력을 넣어봤다고. 그렇지만 그쪽에서 씹으면 그만. 더 이상 연락 없으면 신고한다고 당근톡을 보냈지만 실은 우리는 모두 안다. 당근에 신고하면 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목요일 아침 8시. 버즈녀의 당근 톡 “카톡으로 올 줄 알고ㅜ” 이 또한 개소리. 신랑 왈 “택배 송장 빨리 보내주세요. 아님 환불 주세요” 같은 말 며칠 째 반복. 버즈녀 “오빠가 저번 주에 가기 걸렸었는데 월요일부터 심해져서 어제 못 보냈대요. 오늘까지 기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호구신랑 “오늘까지만 기다리겠습니다” 

버즈녀 “진짜 감사드려요” 이것은 연락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아무 의미 없는 연락이 계속되어 사람을 피 말리게 하며 내가 사기를 당하는 것은 아닌 것은 아닌 게 되는 상황으로 혼란을 주어 시간을 벌어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려는 개수작이다. 


목요일 오전 10시. 나는 글쓰기 모임 참석 중. 신랑의 다급한 캡처사진 두 장과 함께 “어제 당근 채팅, 오늘 문자내역”이라는 짧은 톡. 이것은 바로 본인은 여기까지인가보다고 이제 해결사인 내가 등판했으면 하는 사인임을. 나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글쓰기 모임이었지만 11만 2천 원이 걸린 시급하고 중대한 사안이었기에 양해를 구하고 문자를 보냈다. 


오전 10시 50분. “당근 거래로 갤럭시 버즈 구매한 남자 와이프입니다. 긴 말하기 내 입 아프고 당장 112000원 입금하세요. 더 이상 오빠 핑계 대지 말고 당장 입금해요. 입금하고 저한테 문자 줘요.” “네 그리고 거짓말 쳐서 죄송해요.(갑자기 사기 친 거 시인?) 사실 이거 모르는 사람 대리판매 한 건데 환불해드릴 돈이 지금 없어서 몇 달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실까요?” “사정 알 필요 없고 당장 입금 안 하면 곤란할 각오 하세요. 저는 경고했습니다. 그럼 입금 안 하신다는 얘기로 알고 저도 제가 할 일 하겠습니다.” “지금 제가 현체라 이따 입금해 드려도 될까요? 입금할 건데” “아뇨 어떤 핑계도 필요 없고 어떻게 해서라도 당장 하세요” “현체 끝나고 할게요. 현체 끝나고 하면 안 되나요?" 


현체?? 나는 설마설마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현체를 검색해 봤고 현체는 현장체험의 줄임말이라는 걸 확인하고 말았다. 그렇다! 우리는 중딩여학생에게 나흘째 농락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니 사인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밤 10시에 폰이 잠긴다는 걸 왜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인가. 우리는 중딩 아들 폰을 잠그면서!! 도대체 왜!!!


나는 곧바로! “부모 전화번호 넘겨 당장” 반말 시전. “지금 보내드릴게요.” (참고로 이 학생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잘한다. 이 나이대 학생들과는 다르다... 는 생각을 왜 나는 했던 것인지) 몇 분 후. “보냈어요. 그런데 저 혹시 만원 잘못 보내서 만원 다시 보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ㅠ 그거 아빠 생신선물 때 써야 해서. 죄송해요.” 이 중딩아이는 112000원을 보냈어야 했는데 122000원을 보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아직 폰으로 입금하는 것조차 이렇게 서툰 이런 아이에게 이 긴 시간을 휘둘렸던 것이다. 


오전 10시 50분에 시작된 버즈녀와 나와 시작된 문자는 깔끔하게 11시 8분. 즉 18분 만에 122000원을 받아내는 결과로 마무리. 나는 호기롭게 개선장군처럼 문자 내용을 캡처해 보내며 “돈 내가 다 받아냈어. 일햐” (쿨하고 멋진 척) 나에겐 아직 추가로 입금된 1만 원이 남아있었다. 나는 보내주긴 하더라도 바로 보내주고 싶지 않았다. 돈을 못 받은 사람의 피 말리는 느낌을 너도 한 번 느껴보고 다시는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저녁 6시가 되어 계좌번호를 물어 입금하며 문자를 보냈다. 갑자기 존댓말로 푸훗! “어떤 이유에서 어떤 상황에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의도했던, 하지 않았건 돈거래는 자칫 잘 못하면 범죄가 될 수 있습니다. (경찰인 줄)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시고 신중한 거래하시기 바랍니다.” “네 저번 일은 정말 죄송하고, 돈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진심으로 앞길에 좋은 일들만 있길 바랍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신랑의 당근 경험기 에피소드 1은 마무리. 마지막이 왠지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것 같아 보이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중딩 여학생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당근앱이다 보니 같은 지역에 사는 아이일 테고 나는 그와 같거나 그보다 어린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나와 내 신랑 전화번호를 다 아이는 그 아이가 혹시라도 나쁜 마음을 가지고 신상을 털어 아이들이나 우리 집에 해를 가할지 모른다는 약간의 가능성이 나를 신경 쓰이게 했다. 당연히 부모 된 입장에서 아이가 이런 행동 안 했으면 하는 좋은 마음도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요건 18% 정도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오랜만에 망설임 없이 매우 빠른 속도로 글을 썼다. 에피소드 1을 쓰는 나는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다. 키보드에 모터 단 줄. 신랑을 멕이는 글이라 그런 듯하다. 우리 신랑은 이 글의 존재를 영원히 몰랐으면 좋겠다. 당근 경험기 에피소드 1이 너무 길다고 지쳐하지 마시길. 에피소드 2, 3는 좀 짧다. 미래의 내가 성실하게 이어서 2와 3을 쓴다면 조만간에 이어서 읽으실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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