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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Apr 06. 2023

세뱃돈으로 벤틀리를 한 대 뽑으면.

콩트

사정상 런던에서 가끔 지낸다. 구태여 만날 사람도 술 한잔 할 친구도 없는 관계로 따분하기 짝이 없다. 그럴 때 박물관, 미술관 및 앤티크 시장 등을 주로 찾는다.

이유는 '1. 고결한 문화적 성취감을 만족시키고, 2. 훌륭한 인류 유산을 통해 지적인 호기심을 유발하며, 3. 귀중한 삶의 보고이자 미래를 밝힐 등불을 찾는 여정'같은 뻔뻔하고 거창한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1. 몇 날 며칠이 아니라 몇 달, 몇 년을 버틸만큼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고, 2. 집에서 걸어다녀 교통비가 들지 않으며, 3. 무엇 보다도 입장료가 공짜'라는데 있다.



바로 경매장에 그런 매력이 숨어있다.

런던에는 크리스티, 소더비, 본햄 등 이름만 들어도 주눅이 드는 경매장이 세인트 제임스 공원 북쪽으로 여럿 들어차 있다. 최고급 호텔에 들어가면 뒷머리가 당겨지는 사람에게는 왜 '주눅'이 드는지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터이다.

런던 소더비의 경우 젊고 건장한 경비원들이 푸른색 제복을 입고 입구에 떠억하니 지켜 서있어 자못 움찔해지지만 누구나 입장 가능하다. 출입은 자유스럽더라도 실제 경매에 참가하려면 사전에 인적 사항과 은행 계좌를 제시하고 패들을 교부받아야 한다. 경매를 진행하는 홀에는 전면에 경매대가 자리하고 한쪽으로 비켜서 대형 패널이 걸려있다. 여기에 경매품 가격을 그때그때 마다 알려준다.


전광 게시판 제일 윗칸의 화폐 단위는 런던 경매소에서 '£ 파운드'이다. 소재지가 영국이므로 당연한 일이겠다. 전 세계의 수집가들이 몰려드는 유명한 곳이니 만치 그 아래로 US달러, 유로화, 스위스 프랑, HK달러 그리고 일본의 엔화까지 '잘 사는 나라' 화폐로 환산하여 보여 준다. '잘 사는 나라'는 돈이 많아 잘살기도하고 경매 물건을 곧잘 사가기도하는 두 뜻이 함께 들어 있을 성 싶다.

달러나 유로, 프랑은 영국 파운드와 비교해도 액면 가치에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 엔화는 동일한 값어치에도 파운드나 달러에 비해 '0'이 하나 더 붙어야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 경매 시작가가 2,000,000 파운드로 정해졌다고 치자. 그럼 전광판에는 '£2,000,000',  '€ 2,600,000 ', '2,800,000',... 이런 식으로 차례로 표시되다가 마지막 일본 칸은 '¥ 30,000,000'으로 자릿수 자체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만약 한국의 '원'이 그곳에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국제 경매장에 주요 손님이 될 날이 금방 오지는 않겠지만 '300,000,000'으로 일본보다 '0'을 하나 더 적야만 한다. 다른 주요국 통화 보다 두개의 '0'이 붙어야해서 숫자칸이 모자랄것이다.

흑체黑體처럼 검은 전광판의 위아래 빼곡히 박혀 빛을 내는 숫자를 현장에서 바라보면 차이를 실감케 된다. 그 간극이 마치 국가의 신인도나 위상처럼 느껴져 자존심 상한다.



얼마 전 출근 중에 택시운전사와 나눈 대화를 풀어 쓴 글 '80일간의 택시로 세계일주'에 의외로 댓글이 많이 달렸다. 특이하게도 글을 다신 많은 분들이 지구 둘레가 40,000km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에 의아해했다. 어떤 분은 택시기사처럼  '설마! 그것밖에 안돼?'하고 의구심을 표했다. 그 설마가 또 나의 '홧병'을 도지게 만들었다. 과연 What(무엇)우리로 하여금 4만이라는 큰 숫자를 과소 평가하게 만들었나?



손자 손녀들을 포함해 모든 가족이 설날에 할머니 댁에 모인다. 명절 제사가 끝난 다음 의례적으로 세배를 드리고 받는다. 그 시간에는 세배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정답게 현금도 왔다 갔다 한다. 세뱃돈은 10년도 훨씬 전부터 초등학생 이하 5만 원, 중학생 이상 10만 원이 공정 가격이다. 갓난아기라도 일단 머리를 땅에 들이 대기만 하면 무려 50,000원을 건진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 최저 임금(2016년 기준)은 시급 약 6,000 원이다. 반면 영국은 6 파운드로 한국돈 가치로 10,000원 가량이다. 한국인은 아르바이트로 하루에 8시간 일하면 50,000 원을 버는데 영국인은 손에 쥐게 되는 임금이 약 50 파운드이다. 실제 값어치로 따지면 50,000원이 50파운드에 비해 반밖에 안된다. 하지만 단순히 숫자로만 비교해 볼때는 오히려 원화가 1,000배 더 크다.

한국 갓난아이가 무릎만 한 번 굽히면 얻는 50,000은 영국의 청소년이 1,250일, 그러니까 꼬박 삼,사년을 일해야 만나 볼 숫자이다.


인간 생활과 가장 밀접한 숫자는 뭐니 뭐니 해도 머니 money에 표시되는 수數이다. 어린 시절 5 파운드, 10파운드를 귀하게 만지던 영국 아이들에게 5만 파운드는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만만하게 보일리가 없다. 반면에 5만원 정도는 그저 아이들 용돈이고 십억, 백억 소리가 매스컴을 통해 매일 터져 나오는 나라에서 자란 한국 사람들에게 '50,000'이라는 숫자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을 터이다. 영국인과 수에 대한 상대적 감각이 이렇게 차이가 나므로 한국인들이 지구 둘레 '40,000km'에 대해 "애게! 그것밖에 안돼?"라고 느껴짐도 당연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뭐 이딴 걸 일삼아 알아보거나 쓸데없이 계산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테니.



쓸데없는 생각 하나만 더!

화폐 개혁을 하지 않고도 1원이 영국돈 1파운드랑 맘먹는 시대가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

생각해 보라, 아이들이 몇년 세배해 벌어들인 돈으로 영국 최고급 차 벤틀리 한 대씩 최신형으로 뽑는다면 얼마나 신날까를.


말도 안 된다고? 

말은 안되도 글은 되니 생각만 하여도 즐거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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