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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Mar 29. 2023

파스타가 제일 맛있다고요?

콩트

"이 찌개는 음식이 아니예요."

로마의 S 한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주인아주머니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해외든 국내든 여행하며 즐길거리 중의 하나가 먹거리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낯선 곳을 찾아 떠나면 눈에 설은 사람들이 생소한 음식을 먹으며 살고 있다. 현지 음식에 대한 호기심은 여행객의 과정이자 목적이 된다. 숙박, 교통, 음식 이 세 가지 정보가 필수적이고 성공을 좌우하는 열쇠지만 그중 먹거리는 가장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다. 여행지의 독특한 식문화를 살펴보지 못하고 돌아오면 해외여행의 매력을 반쪽만 즐긴 느낌이다. .


혼자 여행을 자주 하는 나로서는 음식으로 인한 고통이 크지 않아 다행으로 여긴다. 음식때문에 내내 고생을 하다 심지어는 다 집어치우고 하루 빨리 집에 돌아가길 원하는 여행객들도 보았다. 김이며 고추장이며 심지어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김치까지 정성으로 포장하여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차라리 측은한 마음이 든다. 한 끼라도 우리 음식을 먹고나야 소화를 제대로 시키고 정신적으로도 안정이 된단다. 그래서 여행 가이드들은 초보시절에는 의욕적으로 그 나라의 문화와 풍습을 알려준다는 의미에서 현지식만 들게끔 식단을 짜다가 얼마 못 가 이삼일에 한 번은 한식으로 조정한다는 말도 들었다. 뽀얀 피부와 훤칠한 키 준수한 용모는 세계 어디를 내놔도 꿀릴 게 없는 MZ세대는 피자나 스파게티만으로도 끼니를 해결한다. 인종 자체가 판이하게 다른 이네들과 달리 나이 든 사람들은 같은 대한민국 여권을 지지고 다닌다해도 먹을거리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매끼를 양식으만로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기내식 조차 한식은 사절 일변도였다.



이탈리아의 안코나 근처 작은 시골 동네에 전 가족이 약 2주간 머무를 기회가 있었다. 안코나는 이태리 중동부의 항구도시로 한반도의 원산 정도 위치이다.

난 당시 다른 무엇보다 파스타의 나라, 피자의 나라에서 제일 좋아하는 리조토까지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들떴다. 

스트로처럼 속이 빈 국수 마카로니, 만두피처럼 넓적한 라자네, 마카로니를 잘라 만든 펜네, 대명사격인 가느다랗고 긴 국수발의 스파게티 등 가지가지의 파스타를 본토에서 실컷 먹어보자. 

피자는 또 어떤가. 한국에서도 피자집에 가서 피자 몇 조각과 샐러드 만으로도 숱하게 저녁 식사를 대신했잖은가. 피자를 잘 굽는 식당일수록 토핑 보다 바닥 빵 맛에 더 비중을 둔다는데 한번 본격적으로 본바닥의 맛을 섭렵해 보자. 

거기에다가 리조토마저. 밥보다 걸쭉한 쌀 요리 리조토는 야채, 홍합, 버섯이 어울려 절묘한 본고장의 풍미를 보여 줄거야. 한국식 이탈리아 요리와는 다르게 너무 덜 익힌 상태에서 서브되면 어쩌나 하고 내심 신경은 쓰이나 역시 맛은 끝내 주겠지.

무엇보다도 기대되는 것은 와인이었다. 남북이 길고 동서가 좁은 나라라 각지방 특유의 맛과 향을 지닌 와인이 도처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뜨거운 태양, 척박한 토양과 건조한 기후가 여울려 빚어낸 마르케와 움브리아 와인이 플라스크병에 상표도 없이 담겨 매 탁마다 올려져 있겠지.



우리는 규모는 작지만 마을에서 제일 오래되고 평판있는 호텔에서 지냈다. 식당이 붙어있어 잠자리와 하루 세 끼를 한집에서 해결하여 더욱 편리했다. 주인 부부가 점심부터 저녁식사까지 손수 손님들을 접대하는 아주 가족적인 곳이었다. 아침 식사는 부부 중 어느 쪽의 부모인지는 모르겠으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와서 챙겨주었다. 


도착한 날 점심부터 말 그대로 식사食事가 시작되었다.

전채인 안티파스토, 첫 번째 접시 프리모 피아토, 두 번째 접시 세콘도 피아토, 딸린 접시 콘토르노 그리고 과일과 디저트, 커피까지 마시려면 단순히 먹는다기 보다 그야말로 일종의 성대한 의식이었다. 

전채는 담백한 드레싱에 야채나 햄 등을 사용한  냉채가 대부분으로 부담감이 없어 좋았다. 첫째 접시로는 대부분 파스타가 나왔다. 소스가 다양하진 않았어도 토마토와 올리브 오일이 환상적으로 어울려 밍밍한 밀가루 음식을 받쳐준다. 둘째 접시는 육류로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삶은 후 얇게 저며 내오거나 치킨 소테가 주종이었다. 

어쨌거나 숙박료와 식사비는 이미 지불된 상태라 우리는 그저 맛나게 먹어주면 그만이었다. 주인 부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주민들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 의사 소통에 장애가 있었다. 다른 손님들이 주문한 실물을 가져와서 보여주고 오케이 하면 만들어주는 식으로 해결하며 한동안 신나게 먹고 마시면서 보냈다. 



그러나 일주일도 채 되기 전에 몸에 슬슬 부담이 오기 시작했다. 음식이 식도를 지나면서 명치 부위에따끔하게 쓰라린 자극을 선사한다. 위에 들어가서는 서로 섞이지 않으려는 듯 요동을 치며 뱅뱅 돌기만 하여 더 이상 내려가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스파게티는 마치 고무줄처럼 질기다. 칼국수 판처럼 두껍게 만든 라자냐는 바라만봐도 위장이 부대낀다. 리소토는 더욱 심각해서 생쌀을 씹어도 이보다 낫겠다. 그처럼 맛있던 피자도 별무 소용이다. 형형색색의 토핑도 바스락 소리가 나게 구워진 밑빵도 몸속에 들어갈라 치면 목구명부터 긁어 내려가다 속안에 들어가면 전쟁을 일으킨다. 와인은 왜 그리도 밋밋한지 음식물의 주위에 서성이기만 할 뿐 서로를 이어주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참아야 했다. 내가 평소 이탈리아 요리의 찬양자가 아니었던가. 외식할라치면 언제나 이태리 레스토랑을 찾고 주문하고나면 잘난 체 그 음식에 대하여 마구 떠들어 대지 않았던가. 이제 본고장의 맛을 제대로 익히는데 이보다 더한 좋은 기회가 어디 있다고 음식 타박을 하겠는가. 더구나 내가 반半은 이태리 사람이 아니던가. 실제 내 여권 성명 알파벹 표기는 시모네 PARK, SIMONE이다. 이탈리아식 남자 이름이다. 

그런데 고작 일주일도 안되어 제2의 고국에서 소화기가 거부권을 행사하다니! 찍소리도 못하고 견뎌내고 또다시 견뎌내야만 했다. 더군다나 나중엔 식욕까지 떨어져 뭐든지 식탁에 올려지면 즐길 자신이 없고 미리 겁부터 났다. 



겨우겨우 나머지 일정을 끝내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나만 일찍 로마로 돌아 왔다. 귀국일까지 이틀의 여유가 있음에도 소용돌이치는 뱃속을 생각하면 남은 일정이 그리 유쾌할리 없었다. 떼르미니 역전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둘러보았으나 어느 곳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나마 들 수 있을 법한 젤라토로 때우려고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 'S' 한식집이 눈에 띄었다. 좀 이른 시간임에도 식당에는 손님이 꽤 여럿 있었다. 무얼 시켜야 또 하루를 무사히 넘길까 고민을 하다 옆 사람을 흘깃 보니 김치찌개를 먹고있다. 한국의 시뻘건 그것과는 차이가 나긴 했어도 역시 칼칼했다. 먹자마자 금방 속이 다스려지는 싶더니 그날 밤부터 어찌나 시원한지 뭐라도 먹을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 위장의 트러블이 깨끗하게 사라졌던 것이다. 소화도 잘되었고 거짓말처럼 식욕이 다시 돌아왔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안정이되었다. 


다음날 점심에 식당을 재차 찾았다. 반가이 살펴주는 식당 주인아주머니에게 김치찌개를 가리키며 '이 찌개는 음식이 아니예요.'라 하자 어제 저녁 무슨 문제가 있었나 하고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것은 소화제입니다." 

그러면서 지금껏 고생했던 이야기와 속이 확 풀려 버린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비빔밥을 고추장에 비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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