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도착한 날 점심부터 말 그대로 식사食事가 시작되었다.
전채인 안티파스토, 첫 번째 접시 프리모 피아토, 두 번째 접시 세콘도 피아토, 딸린 접시 콘토르노 그리고 과일과 디저트, 커피까지 마시려면 단순히 먹는다기 보다 그야말로 일종의 성대한 의식이었다.
전채는 담백한 드레싱에 야채나 햄 등을 사용한 냉채가 대부분으로 부담감이 없어 좋았다. 첫째 접시로는 대부분 파스타가 나왔다. 소스가 다양하진 않았어도 토마토와 올리브 오일이 환상적으로 어울려 밍밍한 밀가루 음식을 받쳐준다. 둘째 접시는 육류로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삶은 후 얇게 저며 내오거나 치킨 소테가 주종이었다.
어쨌거나 숙박료와 식사비는 이미 지불된 상태라 우리는 그저 맛나게 먹어주면 그만이었다. 주인 부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주민들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 의사 소통에 장애가 있었다. 다른 손님들이 주문한 실물을 가져와서 보여주고 오케이 하면 만들어주는 식으로 해결하며 한동안 신나게 먹고 마시면서 보냈다.
그러나 일주일도 채 되기 전에 몸에 슬슬 부담이 오기 시작했다. 음식이 식도를 지나면서 명치 부위에따끔하게 쓰라린 자극을 선사한다. 위에 들어가서는 서로 섞이지 않으려는 듯 요동을 치며 뱅뱅 돌기만 하여 더 이상 내려가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스파게티는 마치 고무줄처럼 질기다. 칼국수 판처럼 두껍게 만든 라자냐는 바라만봐도 위장이 부대낀다. 리소토는 더욱 심각해서 생쌀을 씹어도 이보다 낫겠다. 그처럼 맛있던 피자도 별무 소용이다. 형형색색의 토핑도 바스락 소리가 나게 구워진 밑빵도 몸속에 들어갈라 치면 목구명부터 긁어 내려가다 속안에 들어가면 전쟁을 일으킨다. 와인은 왜 그리도 밋밋한지 음식물의 주위에 서성이기만 할 뿐 서로를 이어주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참아야 했다. 내가 평소 이탈리아 요리의 찬양자가 아니었던가. 외식할라치면 언제나 이태리 레스토랑을 찾고 주문하고나면 잘난 체 그 음식에 대하여 마구 떠들어 대지 않았던가. 이제 본고장의 맛을 제대로 익히는데 이보다 더한 좋은 기회가 어디 있다고 음식 타박을 하겠는가. 더구나 내가 반半은 이태리 사람이 아니던가. 실제 내 여권 성명 알파벹 표기는 시모네 PARK, SIMONE이다. 이탈리아식 남자 이름이다.
그런데 고작 일주일도 안되어 제2의 고국에서 소화기가 거부권을 행사하다니! 찍소리도 못하고 견뎌내고 또다시 견뎌내야만 했다. 더군다나 나중엔 식욕까지 떨어져 뭐든지 식탁에 올려지면 즐길 자신이 없고 미리 겁부터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