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수제비

기억이 겹겹이 퍼져나가는 파동

by 파프리카

아주 어렸을 적, 일요일이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산으로 향했다. 손을 꼭 잡고 숲길을 오르내리며, 나는 아버지의 넓은 어깨와 듬직한 걸음 뒤에서 안심했다. 발밑에서는 바스락거리는 낙엽과 작은 나뭇가지 소리가 나고, 상쾌한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아버지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사이로, 나는 작은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반투명 흰색 플라스틱 물통을 쥔 팔을 흔들며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서 “아빠 다리 아파요”할 때쯤, 상쾌한 바람이 부는 약수터에 도착한다. 빨간색 바가지 두세 개가 놓여 있었고, 아버지는 바가지 하나를 들어 시원한 물을 떠 주셨다. 나는 바가지를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우와, 시원하다~” 하고 웃었다. 물은 차가웠지만 입안에 닿는 순간 온몸이 상쾌해졌다. 아버지와 나는 그 순간, 손길과 웃음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내 할아버지는 우물가에서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어 올리셨다고 들었다. 세대를 거치며 자라면서, 나는 물 한 잔이 단순히 갈증을 풀어주는 수단이 아니라, 가족과 시간, 기억을 이어주는 매개였다는 것을 조금씩 느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늘 냉장고부터 열었고, 냉장고 안에는 델몬트 오렌지주스 유리병에 담긴 보리차가 있었다. 수돗물을 주전자에 붓고, 동서 보리차 한 봉지를 넣어 오래 끓이면, 뚜껑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고, 주전자가 덜컥거리는 소리가 집안에 울렸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림을 배웠다. 주전자가 끓는 동안 고소한 향이 집안 가득 퍼지면, 식탁 앞에서 냉장고에 담긴 유리병으로 옮겨지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이 작은 의식처럼 느껴졌다.

특히 마지막 남은 보리차를 마실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알갱이를 삼키고 싶지 않아 컵을 아주 천천히 기울여 물만 조금씩 입으로 가져왔다. 어쩌다 입안으로 들어온 보리알갱이는 촉촉하면서도 딱딱했고, 몇 번 씹다가 뱉기도 했다. 남은 물을 아껴 마시는 과정은 작은 놀이이자 기다림의 연습이었다.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는 경험과 집에서 보리차를 기다리던 경험은 서로 닮아 있었다. 기다리고, 손으로 직접 받고, 천천히 음미하는 과정 속에서 물은 단순한 음료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것은 세대와 연결되고, 사랑과 손길이 담기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전자는 사라지고, 정수기와 페트병 생수가 일상이 되었다. 아침 헬스장 정수기에서 버튼을 눌러 나오는 물은 차갑고 깨끗하지만, 손끝에 전해지는 온기나 기다림은 없다. 편리함은 얻었지만, 물 한 잔이 주던 경험과 기억의 깊이는 사라졌다.

그 시절 약수터 물, 보리차, 마지막 남은 컵 속 알갱이까지, 모든 기억은 단순히 마신 물이 아니라 손길과 기다림, 세대의 연결이 담긴 시간이었다. 나는 내 아이가 기억할 물이 무엇일지 생각한다. 띵 하고 누르기만 하면 나오는 정수기의 버튼 소리로 기억할까, 규격화된 생수병 속 차가움으로 기억할까, 나처럼 기다림과 손길을 느낄 기회도 있을까.

세대마다 물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물 한 잔에 담긴 기억과 연결이다. 누군가에게 물은 단순한 음료일 수 있지만, 나에게 물은 세대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소중한 추억이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차가움, 산길에서 들리던 발밑 바스락 거림, 아버지와 함께 걷던 그림자, 마지막 컵 속 보리알갱이를 씹던 경험,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속에서 세대를 이어주는 시간으로 남는다.

오늘도 정수기 물을 마시며, 나는 그 기억들을 떠올린다. 물 한 잔 속에 담긴 기다림과 손길, 세대와 경험의 연결. 이것이 내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내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가장 소중한 기억이다.

작가의 이전글한여름 소나기 구워 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