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덕소덕 : 소심한 덕후들의 소소한 덕질 라이프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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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특집으로 무슨 콘텐츠를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선택한 건 영화 <원더>입니다. 원더는 '어기'라는 안면 장애가 있는 남자아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가족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가족 영화'인 것은, 어기, 그리고 어기를 둘러싼 가족과 주변인들 사이의 관계를 다루며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 '가족이 성숙해지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보통 누군가의 자식이 된다는 것,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운명적인 만남입니다. 그 운명적인 만남이 이야기해주는 것은, 누구도 완벽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누구도 부모로 완벽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또 그와 함께 누구도 자녀로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의미하는 거죠.
어쩌면 친구관계와도 비슷하지만, 친구관계와 또 다른 것은, 내 선택을 통해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친구 관계에서는 흔히 말해 '손절'하며 관계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쉽지 않죠. 물론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요. 어쨌든 그런 면에서 가족이라는 관계는 더 싸워야 하고, 더 부딪히며 치열한 과정을 겪어야 하는 관계일지도 모릅니다. 더 가까이에 있기에 서로의 부족한 점들을 볼 수밖에 없고, 또 가까이에 있기에 서로에 대해 소홀해질 수도 있고요. 그리고 가까이에 있기에 서로의 마음을 면밀히 살피고 배려하기보다는 불평하기 쉬운 관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이 된다는 것'이 대체 뭘까 생각해보면 어떨까 했습니다. 오늘 <원더>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볼 것은 운명적으로 주어진 가족에 대해서 어떤 지난한 과정을 보내야 하는지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어떤 가족이든 다양한 아픔이 있습니다. 가족 내에 몸이 아픈 경우도 있고, 여러 불화가 있을 수도 있죠. 그런 여러 가지 아픔 속에서 우리가 그 아픔을 어떻게 대하고, 그 아픔을 가진 가족을 또 어떻게 대하고, 마주할지에 대한 문제는 '가족'의 성장과 이어집니다.
저는 영화 <어기>가 좋았던 것은, 단순히 이야기를 어기의 시점에서만 풀어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어기의 시점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올리비아나 친구의 시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게 풀어갔기 때문이죠. 저는 그래서 단순히 어기가 만나게 되는 학교의 새로운 친구들만이 아닌, 어기의 누나인 올리비아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달라서 홈스쿨링을 하고, 주변의 시선을 신경쓰며 스스로도 평범하지 않다고 여기는 어기. 어기는 헬맷을 쓰길 좋아하고 평범해질 수 있는 할로윈만 간절히 기다리는 아이입니다. 그런 어기였기에, 가족들은 모두 어기를 돌보고, 어기를 배려하는 데에 익숙해졌습니다. 그 사이 올리비아는 더 철이 든 아이여야 했고,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리기보다는 좀 더 의젓하고 이해심 많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죠.
그렇다고 해서 올리비아가 남동생 어기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누구보다 남동생을 사랑했지만, 그와 동시에 때로는 부모님으로부터 어기가 받는 그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었겠죠. 올리비아는 그러한 상황 때문에 외로움과 슬픔, 쓸쓸함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갑자기 쌀쌀맞아진 소꿉친구 미란다와의 관계에서도 힘든 나날을 보내죠. 그런 힘든 상황 속에서 가족 안에서조차 자신의 힘듦을 쉽사리 풀어낼 수 없다는 건 얼마나 쓸쓸한 일입니까.
엄마가 그린 우주의 중심엔 늘 어기가 있다. 미란다는 우리 집이 꼭 지구 같댄다. 태양 같은 아들을 중심으로 도는 지구. 엄마의 멋진 눈빛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한 번만 그 눈으로 날 봐주기만을 바랄 뿐.
올리비아의 이런 독백은 얼마나 올리비아가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꼈는지 엿보게 해줍니다. 학교에서 절친한 친구인 미란다가 멀어지고, 올리비아는 더욱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학교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어기는 누나 올리비아에게 괜스레 짜증과 화를 내죠. 올리비아가 아무리 힘든 상황을 겪더라도 자신과 같은 힘듦은 느끼지 못할 거라고도 말하고요. 그런 상황에서 올리비아는 어기에게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미란다와의 문제를 털어놓으며 지금은 우리 둘이(어기와 올리비아가) 가장 친한 친구라고,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지점이 '가족이 되어감'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느꼈습니다. 서로의 어려움을, 힘듦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이 과정이요. 이처럼 올리비아의 이야기를 통해서 단순히 '어기'의 아픔만이 아닌, 각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 힘듦을 겪을 수 있는 가족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서로를 이해하게 하는 그 이야기가 좋았고, 그를 올리비아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풀어냈다는 것이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영화 <원더>는 공동체의 이야기이자 한 가족의 이야기인 거죠. 어려움과 갈등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성장해가는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거든요. 비아가 그랬던 것처럼 어기의 엄마 이자벨로 어기를 낳은 이후 중단해야만 했던 학업을 마무리하기 시작합니다. 어기가 '집'을 벗어나 '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며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요. 어기는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고, 자신이 평범해질 수 있음을 느꼈을 때 헬맷을 벗을 수 있게 됩니다. 겉으로 보기엔 어기만 달라진 것 같지만 실상 어기가 헬맷을 벗을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다른 이들이 어기를 다름이 아닌 같음으로 여기고, 그에게 같은 공동체로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함께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즉, 이 영화는 어기만의 성장 이야기가 아닌, 어기의 가족 모두가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 모두가 보여주는 성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성장은 가족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성숙해질 수 있고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죠.
이 영화의 제목이 '원더'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네요. 삶이 경이로운 것은 단순히 어떤 인물의 어떠함보다는 우리 각자가 가진 각기 다른 어려움과 힘듦 속에서도 '그럼에도'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면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화 <원더>의 이야기가 제목과 같이 '경이롭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순히 한 인물의 이야기를 넘어, 공동체로 확장된, '더불어 같이 성장하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기 때문인 거죠.
어기는 이제 밖으로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또한 어기 주변 인물들도 자신의 알을 깨고, 아니 핼멧을 벗고 나와 각자 가졌던 시선을 바꾸고 나름대로 성장해갑니다. 이런 어기 가족 모두의 성장을 엿보며 우리 또한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인물들처럼 성장하고 더불어 함께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저는 그걸 영화 내의 한 대사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외모는 바꿀 수 없어요 그러니 우리의 시선을 바꿔야죠
더불어 함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태도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기는 '외모'를 바꿀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더불어 함께 성장해나가기 위해서는 어기의 얼굴을 바꾸는 것이 아닌, 나머지 사람들의 시선을 바꿔야 했죠. 이것은 단순히 어기의 외모에 대한 것이 아닌, 삶의 모든 이야기 속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가족 안의 어려움과 마주했을 때, 또 누군가의 연약함과 힘듦과 마주했을 때, 그 사람을 비난하고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경이롭고 놀라운 '원더'의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시선을 변화시키고, 더불어 함께하기 위한 마음을 열어놓는 태도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아픔을 겪는 당사자에게만 주목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 아픔을 이겨내는 것, 그를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아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듭니다. 올리비아가 자신을 보여주기 싫어서 연극에 초대하지 않는 거라 오해한 어기에게 이렇게 말하죠. "어기, 세상 모든 일이 너와 관련된 건 아니야". 아픔은 우리 내면의 오해와 편견의 벽들을 허물 때에야 진정으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공동체 안에서 진정으로 함께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