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덕소덕 : 소심한 덕후들의 소소한 덕질 라이프 10화
팟캐스트 10화는 여기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번 주제는 [키이라 나이틀리] 특집으로, 그리고 더불어 그녀 주연 영화 중 고전 명작을 배경으로 한 영화 두 편을 골라보았습니다. 지난주에 계피차님이 <안나 카레리나>를 이야기해주셨고 저는 <오만과 편견>을 선택했습니다. 신기한 점은 배우뿐만 아니라 두 영화의 감독도 같은 사람이라는 점인데요. 바로 '조 라이트' 감독입니다. 그는 <어톤먼트>로도 많이 알려진 감독이죠. 주제로 돌아와서, <오만과 편견>을 고른 이유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해야겠네요.
저는 아마도 이번 주제가 '인생 영화'였다고 하면 동일한 작품을 골랐을 겁니다. 이전 회차에서도 잠깐 언급했 듯이 제 인생 영화는, 최소 10년 전부터 <오만과 편견>이었어요. 누구나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가 있죠? 생각날 때마다 수도 없이 돌려본 영화 말이에요. 저에게는 그 영화가 바로 이 <오만과 편견>입니다.
이 영화는 앞서 언급한 조 라이트 감독의 영화로 특유의 우아하고도 섬세한 감성을 잘 담아낸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번 주제의 주인공,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 엘리자베스 역할을 맡았고요. 2005년 영화니 벌써 15년 이상 지난 영화네요. 놀라운 건, 그렇게 시간이 지난 영화지만 전혀 촌스럽지 않다는 겁니다. 아직까지도 세련된, 최근 영화처럼 느껴지거든요.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애정하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걸까요?)
저는 그 이유가 시대극을 표현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더하여 저는 이 영화 특유의 그 섬세한 감정을 카메라 앵글이나 빛 등으로 잘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영화의 빛 가운데에서 걸어가는 엘리자베스가 나오는 첫 장면과 영화 말미의 동이틀 무렵 들판에서 만나는 두 주인공을 그린 장면을 좋아하는데요. 이는 <오만과 편견> 전체적인 그 섬세한 분위기가 잘 드러나는 장면들이라 생각합니다.
(인생 영화가 된 여러 포인트들이 있는데요. 그 포인트가 되는 장면들에 대한 설명은 뒤에 이어서 추가로 언급하겠습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소설로든 영화로든, 드라마로든 접하신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로맨스 장르의 시초라고 할 만큼 파급력 있었고 끊임없이 재창작되었으며, 여전히 사랑받는 작품이기도 하죠. 제인 오스틴의 여러 작품 중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고요.
이 작품에는 오늘날 드라마에서 소위 재벌로 나오는 남자 주인공과, 그에 비해 가난하고 속을 썩이는 가족들이 등장합니다. 그에 반해 여자 주인공은 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인물로 그려지죠. 너무나 흔한 설정이지 않나요? 이처럼 이 작품은 지금 보기에 뻔한 클리셰로 이루어진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클리셰가 바로 이 <오만과 편견>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당시에는 이러한 설정이 파격적이었고, 새로웠다고 합니다. 더불어 엘리자베스라는 인물이 가진 그 생기있는 모습, 발랄하고 진취적인 모습은 독자들로 하여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로 그려졌고요. 빅토리아 시대에서 가난한 딸부잣집이란 꽤나 절망적인 상황이었을 겁니다. 딸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었고, 먼 친척이더라도 '남자'여야 그 재산을 상속 받을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런 상황에서 먼 친척으로 찾아온 인물 콜린스의 청혼을 거절한 엘리자베스의 선택은 꽤 파격적인 선택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는 전혀 진취적이라고 하기엔 어렵다고 생각하는 그 선택도, 당시에는 다른 선택을 상상할 수 없었을 테니 아마도 꽤나 진취적인 캐릭터가 아니었을까요?
이 영화의 제목 <오만과 편견>이 상징하는 건 남자 주인공인 다아시와 여자 주인공인 앨리자베스입니다. 다아시는 오만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편한 사람들을 선택해 가려 사귀고, 격이 맞지 않는다고 여기면 때로는 차갑게 대하기도 했던 남자였습니다. 무도회에서 남자가 적은 상황에서도 나서서 춤을 청하지도 않았죠. 심지어 엘리자베스가 반할 만큼 예쁘진 않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듣는 지 몰랐겠지만요.)
엘리자베스, 그러니까 리지는 무도회 사건 이후 다아시를 오만한 남자로 낙인찍습니다. 그리고 이후 위컴과의 교제를 통해 다아시를 더욱더 냉혈한으로, 인정도 없는 자로 여기기까지 하죠. 한쪽말만 들어서는 사실 그 사이의 사건을 완벽하게 알지 못할 것이었음에도 다아시에 대한 위컴의 말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에 대한 편견을 공고히 합니다.
이 둘의 관계는 오만한 남자의 오만하기 그지없는 애끓는 고백과 함께, 편견이 있는 여자의 날선 거절과 편견에 가득차 퍼붓는 말들이 부딪히며 절정으로 치닫게 됩니다. 오만한 다이시는 고백에 대한 거절을 받고 자신의 오만한 꺼풀을 한 겹 벗겨내고, 그 폭발하듯 지나간 갈등 이후에 진심으로 써내려간 편지를 통해 자신을 향한 비난에 대한 오해를 벗게 됩니다. 이 일을 통해 둘 사이 관계는 회복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되었죠.
이 일 이후, 외삼촌 부부와의 여행에서 다아시의 영지를 방문하게 된 엘리자베스는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다아시를 대하게 됩니다. 또, 다아시도 평소의 그 무표정의 딱딱한 태도가 아닌, 한층 더 살가운 태도로 앨리자베스를 대하며 또, 외삼촌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며 교제하죠. 이제 이 둘의 관계는 이전과는 꽤나 달라진 모습임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오만과 편견>은 다양한 버전의 콘텐츠로 재창작 되었습니다. 영화가 나오기 전엔 BBC 드라마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었고요. 바로 그때의 남자 주인공 다아시가 바로 그 유명한 '콜린 퍼스'입니다. 이 드라마 이후 다아시라고 하면 누구나 콜린 퍼스를 떠올릴 정도로 그를 유명인사로 만들어 주었죠. 물론 저도 BBC 드라마 버전의 <오만과 편견>을 다 보았고, 또 좋아하기도 합니다. 가끔 다시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게 조 라이트의 <오만과 편견>이 특별한 이유는 그 특유의 분위기와 섬세한 주인공들의 감정을 연출해낸 장면들 때문입니다.
그 감정을 연출해낸 장면 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여자 주인공 앨리자베스가 아픈 언니를 찾아 왔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마차를 타려고 했을 때, 그녀를 향해 애끓는 마음을 애써 숨기고 있었던 다아시는 마차를 타는 앨리자베스를 에스코트 합니다. 이 때 카메라는 에스코트를 하며 서로 눈빛을 주고 받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이후 바로 몸을 돌려 건물로 들어가는 다아시의 '손'을 클로즈업 합니다.
이 손에 포인트가 있는 이유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이 시대에는 '맨손'으로 에스코트를 하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일이었고, 또한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에스코트를 한 이후 떨리는 마음을 손을 쥐었다 폈다하며 드러내는 다아시의 그 모습이 다른 어떤 장면보다 주인공의 감정을 잘 드러낸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영화 <오만과 편견>에는 두 가지 버전의 엔딩 장면이 있다는 것, 알고 계신가요? 영국 버전에서는 결혼을 허락하는 앨리자베스 아버지가 기분 좋게 웃는 장면으로 마무리 됩니다. 그러나 미국 버전 엔딩에서는 그에 더하여 추가적인 장면이 제공됐습니다. 미국 관객들에게는 보다 로맨틱한 장면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미국 관객들을 위한 장면을 삽입한 겁니다. 이 장면에서 앨리자베스는 다아시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에 나를 다아시 부인이라고 불러줘요."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인데요. 아주 달달하고 로맨틱한 장면입니다. 리지와 다아시의 행복한 장면을 보고싶으시다면, 유튜브 등에서 영상을 찾아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