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다루고, 공간에 감동하고, 공간에 대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두 권을 책을 연이어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는 영광은, 공간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되었다. 첫 직장에서 실무를 하면서, 일은 흥미진진하고 '역시 실무에서 확실하게 배우는구나' 하는 마음이 컸었지만, 디자인 자체에 대한 짧은 갈등이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이유를 정확히 몰랐는데 두 권의 책을 접하고 나서, 나에게는 지극히 디자인원리에 입각한, 건조한 디자인만 있었지 공감을 위한 공간개념이 부족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벌써 십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 두 권의 책은 나에겐 공간에 관한 한, 바이블과 같은 고마운 존재이다.
『제3의 공간』의 저자 크리스티안 미쿤다(Christian Mikunda)는 공간을 이야기와 감성으로 설계하는 ‘무드 매니지먼트’ 이론의 창시자로, 브랜드 경험을 디자인하는 전략가이다. 다음에 다룰 『드림 소사이어티』의 저자 롤프옌센(Rolf Jensen)은 감성 시대의 도래와 스토리 중심 사회를 예견한 미래학자이다.
우선 이번에 소개할 책 『제3의 공간』을 펼치면 여러 단어로 저자 크리스티안 미쿤다에 대한 소개를 하는데 그중 하나가 '무드매니지먼트'였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마음을 흔드는 힘을 가진다.
산업화는 삶의 무대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과거에는 집이 곧 일터였고, 노동과 생활은 같은 울타리 안에 있었다.
방에서 마당으로 나가면 출근이고, 일을 마치면 다시 방으로 돌아오는 것이 퇴근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거치며 공장과 사무실이 생겨나고, 집과 일터는 분리되었다.
효율과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삶 속에서 감정과 교류가 머무를 자리는 점점 사라졌다.
도시화는 이 변화를 더욱 가속시켰다.
더 높이 솟는 빌딩,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대중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연과 멀어졌다.
“초록의 여유는 회색빛 리듬에 밀려났고,
마음속에는 감성의 결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도시의 속도에 휩쓸린 삶은, 우리가 오래도록 누려왔던 자연의 생기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했다.
초록의 여유는 회색빛 리듬에 밀려났고, 마음속에는 감성의 결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먹고 자고 일하는 공간을 넘어,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을 쉬게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비춰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갈망이 커져갔다.
그렇게 등장한 개념이 바로 제3의 공간이다.
집(제1의 공간)도, 일터(제2의 공간)도 아닌,
그러나 삶의 균형을 되찾아 주는 장소.
카페, 도서관, 동네 서점, 작은 갤러리 같은 곳이 그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나누며, 잃어버린 감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크리스티안 미쿤다가 말하는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벽과 바닥, 천장으로 규정되는 물리적 틀을 넘어서, 그 안에서 빛과 소리, 색채와 향기, 동선과 장치가 하나의 무드를 만든다. 이 무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때로는 구매나 체류, 혹은 기억으로 이어진다.
그가 강조한 개념은 **‘무드 매니지먼트(Mood Management)’**이다.
공간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감정은 달라지고, 그 감정은 곧 경험으로 남는다. 예기치 못한 조명 변화,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음악, 향기 하나까지도 무드의 언어가 된다.
결국 제3의 공간이 가진 힘은 이 무드 매니지먼트에 있다.
사람들이 그곳을 단순히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장소로 기억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우리는 카페 한 구석, 도서관의 창가 자리, 작은 갤러리의 의자 같은 공간에 특별한 애정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 힘은 곧 마케팅의 도구가 되었다.
브랜드는 제3의 공간을 통해 고객과 감성적 유대를 맺는다. 플래그십 매장이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브랜드가 전하는 이야기를 ‘경험하는 무대’로 연출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일상적인 공간에서는 쉽게 감동하지 않는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주지만, 놀라움을 주진 못한다. 그래서 제3의 공간은 언제나 “와우(WOW)” 효과를 준비한다.
예상치 못한 조명, 공간을 가르는 거대한 스크린, 순간적으로 변하는 향기와 음악. 이런 요소들은 모두 감각을 자극하며, 사람들에게 “여기는 특별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미쿤다는 공간을 하나의 무대로 보았다.
무대를 보는 관객이 감탄하는 순간처럼, 공간에서도 사용자가 감각적으로 놀라고 빠져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해서 찾고 싶게 만든다.
오늘날 플래그십 매장, 공연장, 뮤지엄, 전시 공간들이 “경험형”으로 바뀌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단순히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통해 브랜드와 이야기를 소비한다.
울산에서 열렸던 데이비드호크니 몰입형 디지털전시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갤러리에서 걸어 다니며 작품감상하던 것과는 다른, 시각뿐 아니라 영상의 속도감각과 함께 청각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열어주었다.
이제 브랜드는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
사람들은 물건이 아니라 이야기와 경험을 산다.
그래서 브랜드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플래그십 스토어, 체험형 전시장, 팝업 갤러리 같은 곳들이다. 이곳에서 브랜드는 단순한 로고나 광고가 아니라, 빛·소리·향·동선으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철학과 감성을 전달한다.
“이처럼 공간은 더 이상 제품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브랜드를 경험하게 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한 전시에서는 실내 벽면 전체를 감싸는 영상 속에서 자개 무늬가 반짝였고, 그 위로 새가 날아다녔다.
마치 살아 있는 병풍 속을 걷는 듯한 연출은 관람객을 전시에 ‘몰입’시키는 대표적인 WOW 효과였다.
미쿤다가 말한 공간의 감각 연출은 이런 순간에 진가를 발휘한다. 시각적 자극은 놀라움으로, 그리고 그 감정은 기억으로 이어진다.
미쿤다는 이를 공간의 극장화라고 설명한다.
공간이 하나의 무대가 되고, 방문한 사람은 관객이자 동시에 배우가 된다. 그 안에서 경험한 감각과 감정은 브랜드에 대한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오늘날 우리는 이를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순간조차, 그것이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어떤 공간에서, 어떤 분위기 속에서 경험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브랜드는 공간을 통해 공감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공간은 단순히 머무르는 장소가 아니다.
미쿤다는 그것을 하나의 무대라고 말한다.
사람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관객이자 동시에 배우가 된다. 동선은 무대 위의 동작처럼 설계되고, 조명은 감정을 이끌어내는 조율자가 된다. 음악, 냄새, 색채까지도 무대장치처럼 활용된다.
경북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은 자연과 건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매우 특별한 공간이다.
한국 건축가 승효상과 포르투갈의 거장 알바로 시자(Álvaro Siza)가 함께 설계에 참여해, 동서양 건축 철학이 은은하게 배어 있다.
까다로운 예약과 입장료, 정해진 관람 규칙들이 처음엔 낯설게 느껴졌지만, 정원을 따라 걷고 건축 사이로 흐르는 바람을 마주하다 보면 그 모든 것이 이 공간을 오롯이 ‘경험’하게 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걸 알게 된다. 이곳에서 건축은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배경으로 물러서며, 자연과 함께 마음을 위한 무대가 된다.
이런 연출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치밀한 설계와 의도 속에서, 방문자가 특정한 감정을 느끼도록 기획된다. 기쁨, 경외, 아늑함, 혹은 호기심. 각 공간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그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사유원은 매우 계획적인 정원이다. 그래서 긴장이 되기도 하고,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돌아다니게 된다. 어딜 가든 지나치지 않게 분위기를 만드는 포인트가 있었다. 난간이 되기도 했고, 천장이거나 혹은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 되기도 했었다. 아무것도 없는 길 같았지만 풀 한 포기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기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우리가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듯, 연출된 공간에 들어서면 우리는 그 공간의 서사에 참여하는 주인공이 된다. 바로 이것이 제3의 공간이 지닌 특별한 힘이다.
사유원에서는 무엇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야 하는지 공간 전체가 잘 알고 있어 때론 양보하고 뒤로 물러나 주고 숨어도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가 풍성했었던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초겨울에 방문했었는데 이제 단풍이 남아있을 때 가보고 싶다.
공간은 목적지로 향하는 길목에 작은 쉼을 숨겨두곤 한다.
로비, 라운지, 대기실 같은 중간 공간이 그렇다.
우리는 보통 이곳을 ‘통과하는 곳’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미쿤다는 달리 본다.
그는 이런 공간을 감정의 완충지라고 했다. 본격적인 경험으로 들어가기 전, 숨을 고르고 감각을 조율할 수 있는 곳. 작은 대화가 오가고, 긴장이 풀리며, 기대감이 서서히 쌓이는 곳.
예술 공연을 앞두고 로비에서 맞닥뜨리는 조명과 음악, 호텔 라운지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향과 가구의 배치… 이런 것들이 방문자의 감정을 부드럽게 열어준다.
사람은 공간을 지나가며 이미 경험을 시작한다. 그래서 중간 공간은 단순한 대기실이 아니라, 전체 경험을 열어주는 첫 문장 같은 역할을 한다.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Cosmopolitan Hotel.
미쿤다는 이곳을 ‘Art Priming(예술적 프라이밍)’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공간으로 꼽는다.
호텔 로비 한가운데에는 8개의 대형 기둥이 서 있고, 그 안쪽엔 미디어 아트 영상이 흐른다. 시시각각 변하는 이미지가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공간 전체를 전시장처럼 느끼게 만든다.
한쪽에는 거대한 강아지 조형물, 또 다른 쪽에는 예술작품을 뽑는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다.
방문자는 마치 호텔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미술관의 감각적인 무대에 들어선 것처럼 느끼게 된다.
이처럼 로비는 단지 ‘기다리는 곳’이 아니라,
브랜드의 세계관을 암시하는
첫 번째 감정의 문장이 된다.
바로 여기서부터, 공간은 연출된다.
오늘날의 제3의 공간은 오프라인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실과 가상이 겹쳐지며, 두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옴니채널 경험이 만들어진다.
매장에서의 경험은 온라인으로 이어지고, 온라인에서의 관심은 다시 매장으로 발길을 이끈다. 오프라인 공간이 촉발한 감정은 디지털 공간에서 확장되고, 디지털에서 쌓은 이야기는 현실 공간에서 완성된다.
미쿤다는 이 두 세계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진다고 보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채널이 아니라, 그 모든 접점에서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이다.
현실과 가상이 함께 직조한 경험은 사람들에게 더 오래 남고, 더 강하게 공감을 불러낸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속 공간들은 이제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현실과 가상을 잇는 서사의 무대가 되고 있다.
삼성 디지털플라자 강남 본점의 인피니티존은 대형 미디어 타워와 자연 채광을 활용한 트라이앵글 파사드로,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새로운 플래그십 공간의 경험을 제공한다.
'비스포크 홈 메타'는 삼성전자의 VR 체험존으로, 사용자가 가상공간에서 제품을 배치하고 색상을 조합해 보며 몰입형 쇼핑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한 끼의 식사조차, 이제는 단순히 맛만이 아니라
그 순간을 감싸는 공간의 무드까지 함께 음미하는 시대.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제3의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단순한 공간을 넘어, 감정의 공명을 일으키는 무대들.
현대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그 무대는 더 자주, 더 다양하게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 것이다.
공간의 공감에 눈을 뜨게 해 준 이 책,
『제3의 공간』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하며,
나의 공간 글쓰기 또한 조용히 이어가 본다.
� “도시와 마음이 만나는 제3의 공간.
무드온라이프 네이버 블로그에서 그 이야기를 이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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