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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소사이어티』나는 쇼핑한다

결핍에서 감성으로

by 무드온라이프

나에게 공간에 대한 공감을 가르쳐준 두 권의 책 가운데 먼저 『제3의 공간』에 이어서 이번에는 롤프옌센의 『드림 소사이어티』를 소개한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기술이나 가격이 아니라, 감성과 이야기’라고 말한다. 소비자는 더 이상 물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불러오는 이야기를 구매한다는 것이다.


성숙사회에서 소비는, 브랜드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경험을 통해 나를 확인하는 행위다.


1. 꿈의 사회에 들어가다


우리나라는 ‘빨리빨리’를 외치며 전쟁의 폐허 위에서 근면과 성실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미제·일제를 최고로 여기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메이드 인 코리아’만큼 믿을 만한 것이 없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옷을 살 때 물 빠짐을 걱정할 필요도, 바느질을 탓할 만큼 허술한 품질을 마주할 일도 없다. 오히려 과거의 검소한 생활양식은 '레트로'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추억을 불러내며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바라본 야간조명과 남산타워, 한강다리가 어우러진 야경. 성숙사회의 풍요와 도시인의 삶을 상징하는 장면. 출처: Bing 이미지 검색


산업화와 정보화를 거치며 ‘무엇을 더 만들 것인가, 어떻게 더 빨리 전달할 것인가’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풍요와 속도의 끝에는 예상치 못한 피로가 찾아왔다.


과거에는 치약이라면 불소치약 하나로 충분했지만, 이제는 끝없이 늘어선 치약 진열대 앞에서 어떤 것을 고를지 망설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제품 기능이 평준화되면서, 넘치는 상품과 정보 속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길을 잃고 선택 앞에서 지쳐가고 있다.

대형마트 치약 진열대, 브랜드와 패키지가 선택을 유도하는 소비의 풍경 출처: Pixabay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이 전환의 순간을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라 불렀다. 그는 더 이상 기능이나 가격이 경쟁의 중심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가 새로운 사회의 질서를 만든다고 말한다.


'드림 소사이어티', 즉 ‘꿈의 사회’란 곧, 상품과 서비스가 단순히 소비되는 것을 넘어 우리의 감성·정체성·삶의 방식과 이어지는 시대를 뜻한다.


이제 우리는 ‘가장 뛰어난 것’을 찾는 대신, **‘오직 나만의 것’**을 원한다. 기능의 시대를 지나 감성의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2. 우리는 무엇을 구매하고 싶은가


우리는 더 이상 ‘필요’ 때문에만 물건을 사지 않는다. 한강의 기적을 지나 풍요의 시대에 들어선 지금, 결핍을 채우는 소비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대신 우리는 물건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한다.


대형마트의 우유 진열대를 떠올려보자. 이름부터 포장에 담긴 메시지, 브랜드가 주는 정체성, 그 뒤에 숨은 작은 서사까지 각기 다르다. 어떤 우유는 ‘친환경’을, 어떤 우유는 ‘프리미엄’을, 또 어떤 우유는 ‘가족의 건강’을 이야기하며 소비자의 선택을 이끈다. 결국 우리는 우유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 우유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고르는 셈이다.


korea_supermarket_dairy_shelf.jpg 대형마트 우유, 음료 진열대, 상품들에 담긴 이야기를 고르게 만드는 장면 출처: Pinterest / rizzyfr


이러한 흐름은 학자들이 말하는 **성숙사회(Mature Society)**의 특징이다. 더 이상 결핍을 메우는 단계가 아니라, 넘쳐나는 상품과 정보 속에서 오히려 선택의 피로가 찾아온다. 기능적 차이가 무의미해진 시대, 감성과 의미가 이야기를 통해 전달될 때 비로소 새로운 기준이 된다.


런던 옥스퍼드 스트리트에 위치한 러시 플래그십 매장 내부. 다양한 색감의 천연 비누와 배쓰밤이 매대를 가득 채우며, 브랜드의 감성과 철학을 공간으로 드러낸다. 출처: Lush


이 철학은 **브랜드 러시(LUSH)**에서도 잘 드러난다. 러시는 화려한 포장보다 ‘동물실험 반대’와 ‘자연주의’라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천연재료를 손으로 빚어 만든 비누와 화장품은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지구와 생명을 존중하는 작은 이야기다. 소비자는 제품 하나를 사면서 동시에 ‘윤리적 소비자’라는 정체성을 확인한다.


이것이 바로 미유윤창(美遊潤昌) ― 아름다움, 즐거움, 윤택함, 창조성을 아우르는 감성의 힘이다. 산업화의 시대가 중후장대(重厚壯大)를 추구했고, 정보화의 시대가 경박단소(輕薄短小)를 지향했다면, 드림 소사이어티의 소비자는 이야기를 통해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감성을 선택한다.


코펜하겐 미래연구소 소장 롤프 옌센(Rolf Jensen)은 그의 저서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사람들이 더 이상 무엇을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살 것인가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상품은 이제 감성의 언어가 되었고, 소비는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행위가 되었다.


이제 구매는 ‘소유’가 아니라 ‘경험’이며, 경험은 결국 우리의 삶에 남는 기억이 된다.



3. 이야기를 덧입힌 상품


성숙사회에서 상품은 이야기를 담은 매개체가 되고, 그 이야기를 통해 소비자는 자신의 감성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① 스타벅스 ― 공간을 경험으로 바꾸다

**스타벅스(Starbucks)**는 커피 한 잔을 ‘제3의 공간(Third Place)’이라는 이야기로 바꿔냈다.

할리우드 거리 한복판에 자리 잡은 스타벅스 매장. 영화의 도시와 일상의 커피 문화가 교차한다. 출처: Starbucks Coffee Company

스타벅스의 출발점에는 이탈리아 커피문화의 재해석이 있다. 본래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바는 서서 짧게 커피를 마시고 자리를 뜨는, 순간의 활력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창업자 하워드 슐츠는 이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미국적 방식으로 다시 풀어냈다. 빠른 한 모금이 아니라 오래 머무는 자리, 개인의 이름이 적힌 컵, 음악과 향, 따뜻한 조명이 함께하는 경험을 제시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커피 속도에 미국식 머무름을 더해 대중화시킨 셈이다.

따뜻한 우드톤으로 꾸며진 스타벅스 매장 내부. 커피 향과 함께 대화가 머무는 제3의 공간. 출처: Starbucks Official / ArchDaily

매장 안에 들어서면 커피머신의 기계음보다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의자는 혼자 머물 공간과 모여 앉을 테이블이 교차 배치되어, 누구든 ‘나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다. 따뜻한 조명과 잔잔한 음악은 단순한 음료 판매를 넘어 ‘머물고 싶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클래식한 초록색 파사드의 스타벅스. 세계 어디서든 익숙하게 다가오는 브랜드의 상징.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찾는 이유는 도심 속에서 잠시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무대를 찾고, 커피와 함께 도시의 리듬과 함께하는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서다.


② 아메리칸 걸 ― 미국의 역사와 정체성을 품은 인형

**아메리칸 걸(American Girl)**은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읽어내고, 놀이와 교육을 결합하며 이야기를 입힌 독창적인 인형 브랜드이다.

다양한 아메리칸 걸 인형들이 서 있는 모습 — 다문화와 시대를 아우르는 이야기 공간 MyLomed / 촬영자 및 사이트 제공


아메리칸 걸은 흔한 배추머리 인형(Cabbage Patch Kids)도 아니고, 여성성을 강조한 바비(Barbie)도 아니다. 두 브랜드 사이의 틈새를 공략해,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새로운 유형의 인형 시장을 개척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각 인형은 마치 실제 존재했던 인물처럼 느껴질 만큼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서사를 지녔다. 인형마다 특정한 시대와 배경, 가족사와 꿈이 있으며, 그 이야기는 책과 소품, 체험 프로그램으로 확장된다.


american_girl_twins_isabel_nicki.jpg 1990년대 시대 배경을 품은 Isabel & Nicki 쌍둥이 인형. ABC News / Good Morning America 보도 이미지


이사벨(Isabel)과 니키(Nicki)**는 1990년대 시애틀을 배경으로 태어난 쌍둥이 자매 인형이다. 서로 다른 성격과 취향을 지녔지만, 함께 성장하며 ‘다름 속의 조화’를 보여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전통을 담은 아메리칸 걸 인형. 『Kaya: The Journey Begins』 책과 함께 아이들에게 역사와 정체성을 전한다. 출처: American Girl


카야(Kaya)는 아메리칸 걸 인형 중 하나로, 네이티브 아메리칸 전통을 품고 있다.
긴 머리를 양 갈래로 땋고 전통 의상을 입은 카야는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 뿌리와 정체성을 기억하게 하는 상징이죠


카야의 이야기는 책 「Kaya: The Journey Begins」으로도 확장되어, 아이들이 인형을 소유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녀의 삶과 세계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끈다.


인형과 책, 그리고 함께 제공되는 소품들은 모두 ‘이야기가 담긴 놀이’를 가능하게 해 주며, 드림 소사이어티가 말하는 스토리텔링 소비의 전형을 보여준다.

american_girl_storefront_chicago.jpg.jpg American Girl Place 매장 앞에서 인형과 함께한 어린이들. 출처: Wikimedia Commons, American Girl Place, Chicago


아이들은 단순히 인형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형이 살아온 삶을 경험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의 특성을 반영한 아메리칸 걸은 인형을 넘어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전하는 스토리의 세계를 판매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아메리칸 걸은 이야기를 상품화한 전형적인 사례다


③ 무인양품 ― 절제를 통해 드러나는 브랜드의 힘

브랜드가 곧 자신임을 드러내는 시대에 **무인양품(MUJI)**은 오히려 화려한 브랜드 서사를 과감히 지워버렸다.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음’ 자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삼아, 소비자가 그 빈자리에 소박함·절제·본질에 집중하는 나를 투영하도록 만든다. 겉으로는 무(無)의 전략 같지만, 사실은 가장 강력한 이야기 전략이다.

무인양품_매장전경.jpg.jpg 타이완 미라마 플래그십 매장의 무인양품 진열과 공간 구성 — 절제된 디자인 속에서 드러나는 브랜드 철학


무인양품은 1980년 일본 유통기업 **세이유(西友)**의 자체 브랜드로 시작했다. 이름 그대로 **“브랜드 없는 좋은 물건(無印良品)”**이라는 뜻을 내세우며, 불필요한 장식과 과잉 포장을 줄이고 본질에 충실한 제품을 제시했다.

무인양품_생활용품_매장진열.png 무인양품 매장의 생활용품 진열 모습. 목재 선반과 단순한 진열 방식 속에서 절제된 브랜드 철학이 드러난다. MUJI Official Website

브랜드가 넘쳐나는 시대에, 로고조차 없는 무인양품의 제품들은 오히려 차별화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무브랜드’라는 가장 독창적인 브랜드 자산을 쌓아 올렸다. 지금은 생활용품과 가구를 넘어 호텔·하우스·도시재생 프로젝트까지 확장하며, 절제된 미학을 삶의 방식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무인양품_플래그십스토어_입구.png 무인양품 플래그십 스토어의 입구 전경. 따뜻한 목재와 절제된 조명이 어우러져 브랜드의 미학을 공간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이야기를 덧입힌 상품은 기능을 넘어 소비자의 감정을 움직이고,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결국 소비자는 제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구매하는 것이다.


4.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미국의 팝 아티스트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는 대중 소비사회를 비판하면서도, 소비가 인간 존재와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 있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냈다.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 I shop therefore I am. 출처 Wikimedia Commons


I shop therefore I am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문구는 철학자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차용해 풍자한 것이다.


“I shop therefore I am”
-Barbara Kruger

이 문장은 단순히 유머나 풍자가 아니라, 현대 소비사회의 본질을 찌른다. 인간은 더 이상 단순히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소비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거울 속의 나를 화장품으로 완성하고, 카페 한 잔의 커피로 나의 취향을 표현하며, 어떤 브랜드의 가방을 드는가로 ‘나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낸다. 우리는 물건을 소비하는 동시에, 그 소비가 나를 정의하게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러한 맥락은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말하는 **“결핍의 충족을 넘어, 감성적 자극과 정체성의 확인을 위한 소비”**와 맞닿아 있다.


바바라 크루거는 붉은색 박스와 흰색 산세리프 글자를 통해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녀의 작품 속 소비사회는 날카로운 비판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오늘을 사는 우리를 설명하는 또 다른 언어이기도 하다.

고급스러운 조명과 우드 인테리어 속에 전시된 럭셔리 핸드백 매장. 출처: Parmeggiani Bags & Accessories Collection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선언은 부정할 수 없는 시대의 자화상이자, 소비와 정체성이 얽힌 오늘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다.



5. 마무리하며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고,
그렇게 보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간다.


드림 소사이어티 속에서 우리가 품은 이야기는

결국 오늘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우리가 사고 싶은 이야기,
우리가 되고 싶은 이야기,
우리가 남기고 싶은 이야기.


평범한 정보가 이야기를 입으며
하나의 기억이 되고, 삶의 조각이 되는 이 시대.


당신은 오늘, 어떤 이야기를 품고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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