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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미술관, 작품이 살아 쉼 쉬는 집

늘 생각하라, 뭔지 모르는 것을...

by 무드온라이프


환기미술관 가는 길


몇 달 전, 강릉 솔올미술관의 김환기 전시를 본 뒤
나와의 약속대로, 청명한 가을날 환기미술관을 찾았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부암동의 언덕길을 오르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의 전시를 보고,

그의 에세이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읽은 뒤로,
나는 작품 속의 김환기뿐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김환기 삶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초대를 받아,

그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는 길처럼 느껴졌다.

이곳에 미술관이 세워지기까지 쌓아온 그의 서사와
그 모든 세월의 결이 오르막길의 공기 속에 고요히 스며 있었다.


환기미술관, 미술과 건축의 만남


Whanki_심상의 풍경, 늘 생각하라 뭔지 모르는 것을...


좁은 주택가 골목을 따라 잠시 올라가다 보면
주변 풍경과 자연스레 어우러진 아담한 건물이 나타난다.
부암동의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자리한 미술관은
김환기의 다정하고 담백한 인품을 닮아 있었다.


환기미술관 입구 전경 — 부암동 언덕 위, 김환기의 예술이 머무는 집


� KBS 미술과 건축의 만남 – 환기미술관 편
건축가 우규승의 설계로, 환기미술관의 공간 철학과 빛의 구조를 담은 영상입니다.


부암동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환기미술관 입구와 외관


경사진 대지는 미술관의 표정을 다양하게 만들어주었다.

본관에 들어서자 익숙한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 몹시 아쉬웠지만
작품을 위한 배려라면 기꺼이 동의할 수 있었다.


환기미술관 본관입구의 벽면 사진. 김환기와 김향안여사.


전시장은 바닥레벨이 자연스럽게 높아지면서

환형으로 관람객을 이끌었다.

중앙의 돔형 천창, 상층부의 개방된 벽면에서 들어오는 빛은

공간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었다.


건축가 우규승이 설계한 환기미술관은

1994년 김수근건축상을 수상한 건물이다.

예술품을 담는 그릇인 미술관이

그 자체로도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성북동 시절,
조금씩 사라져 가는 서울 성곽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오늘, 환기미술관에서는
서울 성곽과 인왕산, 그리고 북한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푸른 하늘과 동해의 바다, 달빛과 별빛까지 —
자연의 모든 요소를 화폭 안으로 끌어들였던
김환기의 예술 세계가
이 미술관의 공간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유리창, 비트라유(Vitrail)


로비의 높은 유리창은 2층 전시실에서 눈높이로 마주할 수 있다.
김향안 여사가 직접 구상하고, 유리공예가와 함께 완성한
비트라유(Vitrail, 채색유리창)다.


빛이 통과하며 만들어내는 선과 그림자는
김환기의 작품 속 점과 선, 면의 세계를
건축 공간 안으로 고요히 끌어들인다.


그 빛은 마치 그의 회화가 공간으로 확장된 듯,
시간을 품은 색의 파동처럼 미술관 전체를 감싼다.


환기미술관 본관입구. 비트라유 채색유리창이 보인다.


이 창은 단순한 채광의 장치가 아니라
김환기의 예술을 공간으로 번역한 하나의 회화다.
푸른 하늘, 달, 바다, 별빛—
그가 사랑한 자연의 이미지들이
빛의 굴절 속에서 미묘하게 변화하며
시간과 함께 살아 움직인다.


김환기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선’을

유리공예로 시도한 창문,

그 안에는 김향안 여사의 손길과 사랑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리창이다.


흔적을 따라, 그의 내면과 마주하다


환기미술관은 김환기의 생각과 호흡이 여전히 머물러 있는 곳으로

작품을 느리고 깊게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작은 노트에 남은 드로잉,
파리와 뉴욕에서 써 내려간 편지,
그리고 벽면에 새겨진 어문들.

그의 필체로 남은 문장 하나하나가
그의 삶과 예술을 잇는 다리처럼 다가왔다.


특히 인상 깊었던 공간이 있다.
한 평 남짓한 크기, 그러나 천장이 높게 트인 방이었다.

나지막한 김환기의 독백,
사각사각 연필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
그리고 낮고 따뜻한 목소리.


“예술은 절박한 상태에서 만들어진다."

"그림이란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좋은 그림을 그릴 자신이 있다.”

화가의 음성이 공간에 스며든 미술관.
그곳은 마치 시간의 층이 겹쳐진 또 하나의 작품 같았다.

낮고 조용하고 따뜻한 그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견디며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했던
예술가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환기미술관 안내사인


수화(樹話)와 향안(鄕岸)의 공간, 수향산방


달관의 수향산방(水香山房)은
햇살 좋은 계단을 따라 몇 계단 위에 자리하고 있다.

올라가는 길목에 놓인 잘 익은 모과와
그 위로 쏟아지던 햇살 속에서
작은 환대의 마음이 느껴졌다.



환기미술관 달관 가는 계단에 놓인 모과


수향산방(水香山房)은 김환기의 호인 수화(樹話)와 그의 아내 김향안 여사의 이름 향안(鄕岸)에서 비롯되었다. ‘향안’은 남편 김환기의 아호에서 새롭게 지은 그녀의 이름이었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합쳐 만든 수향산방에는
예술과 사랑, 그리고 두 사람의 시간이 함께 머물러 있었다.


달관 수향산방 입구


요즘의 쾌적하고 현대적인 갤러리와는 달리,
이곳은 소박하고 아날로그적인 온기가 남아 있었다.

영상실의 천정은 낮고,
옛 문틀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감각을 주었다.


전시장 안에서
환기미술관의 마크—파란 원을 감싸는 빨간 네 개의 점—과 닮은 작품을 보았다.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김향안 여사에게는 특별한 기억이 담긴 그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수향산방의 전시는
상파울루 비엔날레의 아카이브 자료와
김환기·김향안의 기록을 통해
그들에게 브라질이 지녔던 특별한 의미를 조명하고 있었다.


그가 남기고, 그녀가 완성한 집


김환기의 갑작스러운 타계 이후,
김향안은 그의 예술세계를 이어가기 위해
뉴욕에 환기재단을 세웠다.
그리고 귀국 후, 부암동 언덕 위에
이 미술관을 완성했다.

그녀는 말했다.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작품이 살아 쉼 쉬는 집이어야 합니다.”
- 김향안



이 한 문장이 곧 미술관의 철학이 되었다.


성북동의 수향산방에서 시작된 시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의 도전,
그리고 이곳 부암동의 환기미술관까지 —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져 있었다.




스케치북과 작은 노트에 남겨진 드로잉들은
삶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Universe,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Duet, 봄의 노래…
특히 마지막 시기의 거대한 전면점화 작품들 앞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1970년대, 치열했던 그의 시간들이
점 하나하나에 숨결과 고요한 열정이 되어
공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전시실마다 놓인 벤치에는
잠시 앉아 마음을 쉬어갈 수 있었다.
마침 관람객이 거의 없던 그날,
그의 작업이 남긴 고요한 울림 속에서
나는 한참을 머물렀다.


맨 위층의 뉴욕시대 작업실에는
그가 몰입했던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곳이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허가된 장소라는 걸,
관람을 마치고 나서야 알았다.


환기미술관 정원 벤치. 관람의 여운을 함께 하는 곳


미술관을 나서며 문득,
한 편의 영화가 끝난 뒤
조용히 극장을 나서는 기분이 들었다.


남겨진 그의 예술세계가
앞으로의 세대에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지,
몹시 기대된다.


전시장 내부의 사진 촬영 금지는
오히려 작품 앞에서의 몰입을 더욱 깊게 만들어주었다.

뜻밖의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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