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오랜 세월의 결이 겹겹이 쌓인 도시다.
오랜 시간 위에 새로 들어선 오아르미술관은
대릉의 능선을 해치지 않기 위해
자연 속에 조용히 스며드는 태도를 취한다.
‘오늘 만나는 아름다움(One-day Art Rendezvous)’이라는 이름처럼,
오아르미술관은 잠시 머물러
시간과 풍경,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을 체험하는 장소이다.
오늘의 아름다움은 결국, 오래된 시간 위에서 피어난다.
개성이 뚜렷한 카페들이 넘치는 시대이다.
오아르미술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1층 카페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압도적인 대릉의 전경이었다.
고분과 카페는 시각적으로 서로 겹쳐지며,
고분이 실내로 스며든 듯도 하고,
또 마치 카페가 고분 안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 순간,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졌다.
어디서도 흉내 낼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커다란 유리벽 너머로 대릉의 초록빛 곡선이 공간 안으로 스며든다.
그 풍경 앞에 앉아 있노라면 문득,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Kahn)의 솔크 연구소(Salk Institute)가 떠오른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 선 두 건축이지만,
자연을 배경이 아닌 ‘주체’로 받아들인 태도에서 닮아 있었다.
오아르미술관은 전통건축의 개념을 단순히 복제하지 않는다.
그 대신, ‘경계를 두되 막지 않는다’는 정신적 구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다.
유리벽은 한옥의 창호처럼 풍경을 담는 프레임이 된다.
그러나 나무 대신 콘크리트와 유리로 이루어진 이 건축은
물성과 재료의 대비 속에서 오히려 '투명한 담장'을 만들어낸다.
대릉은 이제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공간 안으로 스며든 배경이자, 건축의 연장선이 된다.
미니멀한 미학의 콘크리트 벽에는 나무의 질감을 입혀,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감각을 만든다.
건물의 중심부에는 흰색의 계단이 있다.
오아르미술관의 계단은 단순히 수직의 통로가 아니라,
공간의 리듬을 바꾸는 구조적 장치다.
빛을 그대로 머금은 흰색 표면은
더러는 떠있는 조각처럼 느껴지고,
사람이 오르내릴 때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감각을 만든다.
계단은 오아르의 수직축이자,
감각의 변화를 이끄는 축이다.
2층 전시장의 벽과 천장은 단조롭지 않다.
사선으로 꺾인 구조가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동시키며,
관람의 리듬을 만든다.
8월 초 방문 당시 열렸던 전시, 에가미 에츠의《Echoes of the Earth》는
그 리듬 속에서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색채는 공간의 형태에 반응하며
거친 질감이 음색처럼 다가와
작품과 공간이 서로의 울림이 되었다.
보슬비가 내리던 여름날,
젖은 콘크리트의 냄새와 대릉의 흙빛이 겹쳐졌다.
유리벽에 비친 풍경은 한 폭의 회화처럼 고요했다.
언제 찾아도 정겹고 포근한 천년의 도시, 경주는
덩그러니 전통만 남은 도시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감성 플랫폼이 되었다.
얼마 전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열린 아모아코 보아포 전시를 떠올리면,
천년 전의 ‘핫플’이 지금 다시 살아난 듯하다.
종종 “비틀스와 퀸이 나를 키웠다”고 말하곤 한다.
내 감수성은 그들의 음악에서 비롯되었다.
나의 성장기를 함께한 세계적인 뮤지션들을,
에가미 에츠의 작품 속에서 다시 만난 듯한 하루였다.
오아르미술관은 ‘시간을 품은 장소’이자,
그 자체로 ‘공간이 들려주는 서사’를 간직하고 있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대릉풍경이 생생하다.
흰 눈 덮인 겨울의 대릉 또한,
언젠가 꼭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