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였지만 오래 남은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조용히 그림자를 만든다.
그 순간은 사람의 손으로는 그릴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마음에 오래 남은 그 장면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깊었다.
그러다 어느 날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엔딩 크레딧에서,
아, 바로 이거야! 싶은 단어를 만났다.
음악과 영상이 좋아 끝까지 화면을 놓치지 않은 덕분이었다.
코모레비(こもれび) —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그래! 바로 이거였다.
빛과, 그리고 그 잔상까지 품은 단어.
하지만 나는 햇살보다, 그 햇살이 남긴 그림자를 더 좋아한다.
순간의 빛이 만들어내는 일렁이는 그림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그 장면이, 그래서 더 마음에 남는다.
가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왜 이렇게 전시에 진심일까?
작품이 좋아서? 작가가 좋아서? 공간이 좋아서?
솔직히 그 모든 것이 다 좋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전시를 보기 전의 설렘, 관람 중의 몰입,
그리고 이어지는 긴 여운.
그 흐름 전체가 코모레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시를 찾는 일은,
어쩌면 빛을 만나러 가는 일이다.
예술가의 시선과 열정이 머문 자리를 따라,
나는 빛이 머물렀던 흔적을 좇는다.
순간 마음에 와 닿은 빛은,
잠든 감각을 깨우며 그림자로 내려앉는다.
잔상처럼 남은 여운은
다음 전시로 발걸음을 이끈다.
전시를 보는 일은 짧은 시간의 체험이지만
그 안에서 건너오는 울림은 생각보다 길게 남는다.
그 감흥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기록한다.
예술은 결국,
우리가 잊고 지내던 아름다움을 다시 깨워주는 일이다.
흐려지던 감각을 다시 맑게 하고,
잠시 멈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나는 그 빛을 만나기 위해, 또 전시를 기다린다.
그 마음을 안고 나는
일본 세토내해의 작은 섬, 나오시마로 향했다.
빛이 내려앉을 때, 공간은 이야기를 품은 시(詩)가 된다.
한때 산업 폐기물 처리장 후보지였던 나오시마는 이제 예술로 재생된 섬이다. 그 중심에는 안도다다오의 건축이 있다. 지하에 자리한 지중미술관(Chichu Art Museum)은 자연광만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콘크리트, 빛, 그림자, 침묵이라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언어로 안도다다오는 공간을 조용히 지휘한다. 몇 년 전, 큰 기대를 안고 찾은 나오시마는 그 기대를 훌쩍 넘어서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지중미술관에 들어섰을 때 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 각도에 따라 다르게 드리워지는 그림자, 장식 없는 거친 벽이 만들어내는 절제된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많은 장면을 담아 온 당시의 사진들은 다시 꺼내 볼 때마다 그때의 감정을 기억하게 한다. 무채색의 차가운 콘크리트임에도 따뜻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아마도 빛과 공간이 말없이 나를 품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벽을 따라 걷다가 문득, 벽에 아른거리던 그림자 하나에 시선이 붙들렸다. 오후 햇살을 받아 만들어낸 겨울나무의 긴 그림자였다. 특별할 것 하나 없던 순간이었지만, 그 그림자 덕분에 내 발걸음이 멈춰섰다.
아름답게 다가오는 순간은 어쩌면 기대치 않았던 의외성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무 한 그루가 이렇게 다양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니… 한 그루 나무가 다른 곳에 부딪히며 그려내는 뜻밖의 그림들을 보며, 우리 마음도 무엇과 만나느냐에 따라 여러 결을 품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마음들도 내 안 깊은 곳에서 그림자처럼 머물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 순간은 마치 나만의 전시회가 열린 듯했다. 그림자가 그려낸 장면이 곧 나의 마음을 비추는 또 하나의 캔버스가 되어 있었다.
대구간송미술관 입구의 자연석을 기단으로, 하늘을 떠받치듯 서 있는 거대한 목재기둥. 그 사이로 푸른 하늘과 흰구름이 액자처럼 담겨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과 기둥에 부딪히는 햇살은 이곳만의 독특한 풍경을 빚어낸다.
사람들은 보통 전시를 관람하며 '무엇을 보았는지' 말한다.
하지만 진짜 전시는, '무엇을 느꼈는가'로 남는다.
내게 예술은, 그런 장면과 기억에서 시작된다.
건축이 보여주는 질서, 자연이 그려주는 선, 빛이 새기는 감각의 잔상들.
그것들은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스며들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글이 되어 떠오른다.
그래서,
나에게 전시는 코모레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