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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야 할 마음자리,
마당

토루가 전하는 삶의 지혜

by 무드온라이프

1부|떠돌던 사람들, 집을 짓다


유랑의 끝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낯선 땅, 낯선 삶 속에서 서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집.

그것이 토루(土樓)였다.

중국 남부, 푸젠(福建)과 광둥(廣東)의 깊은 산속에는
마치 성곽처럼 웅장하고 둥근 형태의 집들이 숨어 있다.
이들은 ‘토루’라 불리는, 객가인(客家人)들의 집이다.


객가인은 이름 그대로 ‘손님’처럼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중원에서 밀려난 이들은 정착할 땅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고,
새로 정착한 땅에서도 늘 배척과 침입의 위협을 감당해야 했다.

그런 그들이 선택한 방식은 하나의 마을을 하나의 집 안에 짓는 것이었다.


토루는 삶을 지키려는 마음의 성이었다.


토루는 그저 ‘흙으로 쌓은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유랑 끝에 도달한 사람들의
살아남기 위한 건축이자,
서로를 지키는 연대의 기술이었다.


두터운 흙벽. 이 벽은 침입자를 막기 위한 방패이자, 공동체를 지켜낸 울타리였다. Wikimedia Commons


2부|벽이 있었고, 그 안에 마당이 있었다


외부의 침입은 벽이 막고, 내부의 삶은 마당이 품었다

토루의 외형은 마치 요새 같았다.
높고 두터운 흙벽, 반듯한 창 하나 없는 외벽, 단 하나의 출입구.
모든 구조는 침입자에 대한 방어를 전제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그 벽은
단지 두려움을 막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마당이 있었고, 삶이 있었다.


마당은 공동체의 맥박처럼,
사람들의 하루가 흐르고 어우러지는 공간이었다.

식사를 준비하고, 장작을 패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때로는 잔치를 열고, 때로는 장례를 치르며
마당은 일상의 중심이자, 관계의 중심이었다.


벽은 몸의 안전을,
마당은 마음을 지켜주었다

벽이 지켜준 건 몸의 안전이었다면,

마당은 지켜준 건 마음의 연결이었다.

서로를 바라보고, 도우며, 믿고 기대어 설 수 있는 믿음직한 터.

그 마당은 삶을 함께 지켜낸 공간이었다.


토루의 마당, 공동체의 삶이 모이는 중심 공간 ⸱ Wikimedia Commons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적은 무엇일까?


3부|지금, 우리는 어떤 벽 안에 사는가


물론 지금도 외부의 침입은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비밀번호를 챙기고,
CCTV를 켜고,
끝없이 이어지는 각종 인증서에 시달린다.
높은 담장과 철제 문은 여전히 안전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적은
성 밖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다.


그러나 더 깊은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진정한 휴식 없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돌아볼 마음을 잃어가고 있다.
손끝으로 누군가를 쉽게 차단하고,
읽고도 답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를 지키기 위한 마음의 벽은 날마다 더 높고 두터워진다.


단절과 무관심이 스며드는 사이,

우리의 삶은 조금씩 더 고립되어 간다.


토루의 벽은 침입을 막는 동시에 공동체를 지켜주었지만,

지금 우리의 벽은 서로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었다.

많은 것을 함께해 왔던

우리들의 마당이 사라졌다.


4부|우리가 다시 지어야 할 집


흙이 아니어도 좋다.
마음으로 마당을 만들 수 있다.

토루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흙벽의 기술이 아니다.
삶을 품은 구조에 대한 지혜다.


이제 우리가 다시 지어야 할 집은
높은 벽만 있어 방어만 하는 닫힌 집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이 머물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마당은 흙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따스한 마음이었다.

마음을 열고 서로 마음을 나누는 일,

누군가와 함께하는 그 소중한 일이,

오늘 우리가 다시 지어야 할 마당이다.


흩날리는 씨앗처럼, 마음의 마당에서 자라나는 희망 ⸱ Pexels

마당에 씨를 뿌리고 가꾸듯

올 가을엔,

마음의 마당을 가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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