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레 Nov 22. 2020

8.  경계선 너머로 한 발 내딛기

S사 메카트로닉스센터 1차 면접에 참석하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서류 전형과 소위 말하는 아이큐 테스트를 통과했다. 4학년 1학기 복학 직후 S사 채용공고가 났다. 당시 반도체(DS)나 정보통신(TN) 부문 신입사원을 대거 모집했었다. 해당 부문에 지원한다면 입사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마음이 흔들렸다. 다수가 선망하는 기업에 입사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도 어린 시절부터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확률은 낮을 지라도 내가 선택한 길을 걷고 싶었다. 애니메트로닉스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채용 홈페이지에서 지원서를 작성했다. 회사 내 산업용 로봇 사업을 영위하는 메카트로닉스센터에 지원하였다. 주위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석박사 출신을 주로 채용하는 사업부라고 한다. 운 좋게 1, 2차 관문을 통과하였다. 서류전형 합격의 일등 공신은 토익 성적이라고 생각한다. 3차 관문인 기술면접을 준비하며 회사에 대한 공부를 했었다. 연혁, 사업분야, 제품의 특성, 인재상, 비전 등에 대해 요약하고 외웠다. 정작 전공 지식에 대해서는 별도의 준비를 하지 않았다. 


면접을 보러 왔다. 서울역을 빠져나와 마주하는 현재의 서울스퀘어 빌딩은 대청마루 밑의 디딤돌처럼 단단하고 육중한 느낌을 준다. 왼편 고가도로는 노목의 뿌리처럼 도심으로 뻗쳐 있었다. 길을 잘 몰라도 티 나지 않게 조심했다. 방향에 신경을 쓰며 면접장을 찾아갔다. 인터뷰는 조별로 진행되었다. 토론면접에서 다른 지원자들의 언변에 감탄하였다.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듣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여겼다. 이러한 자세로 임하다 보니 말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말주변이 없었기에 더 그랬다. 말을 끊게 되더라도 적당한 시점에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게 좋았을 터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새 다른 주제로 넘어가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한 명이 발언을 독점하는 것은 좋지 않다. 상대방의 주장이 피력되었다고 생각되면 거기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게 유리하다.


기술면접이 이어졌다. 평가자 중 한 분이 전공 지식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기전력에 대해 설명하라”. 말문이 막혔다. 혼돈의 시간이 이어졌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조리 있게 말하지 못했다.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입은 움직이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면접 결과가 예상되었다. 축 처진 어깨로 방을 나왔다. 면접을 같이 본 인연으로 조원들과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만원에 육박하는 1인분 가격에 경악하였다. 전공 질문 못지않게 충격적이었다. 식당을 나와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다음 관문에 이르기 힘들 것이라고 직감했다.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2번째 면접비가 마지막이 되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어서 다른 곳에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여파가 컸다. 생애 첫 취업 면접에서 고배를 마신 경험은 사람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학업을 영위하며 꾸준히 구직활동을 하였다. 밤에 잠을 자다가 불안감에 깨어나기 일쑤였다. 로봇 분야 외에도 닥치는 대로 지원서를 넣었다. 면접 안내 메일은 오지 않았다. 1학기가 지나갔다. S사 하반기 채용이 시작되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른 부문에 지원하였다. 합격이 간절하였다. 이번에는 임원들이 평가하는 인성 면접까지 보게 되었다. 거기까지였다. 마지막 단계에서 주저앉았다. S사와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좌절감에 빠졌다. 2학기 중간시험을 어떻게 치렀는지 모르겠다. 시간은 화살처럼 날아갔다. 동기들은 벌써 직장을 구했다. 저마다 대기업 입사에 들떠 있었다. 마음이 더 초조해졌다. 갈등이 이어졌다. 로봇 분야 취직이냐 아니냐를 놓고 왔다 갔다 했다. 구직 활동은 계속되었다. 


기말시험 기간이었다. 어쩌다 확인한 메일함에 면접 안내가 도착해 있었다. D사 로봇연구소 서류 전형에 통과하였다. 기쁨은 잠깐이었다. 12월 23일 면접까지 하루가 남아 있었다. 로봇 관련 발표를 준비해 서울사무소로 오라고 했었다. 시험을 포기할 것인지 면접을 포기할 것인지 망설였다. 짧은 시간에 발표 준비를 할 자신이 없었다. 계속된 실패로 사기는 저하되어 있었다. 가능성을 제로로 만드는 우를 범하였다. 실패의 두려움으로 시도조차 하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다. 다시 상처 입을지 몰라 발걸음을 내딛지 않는 것은 자연도태이다. 스스로 낙오하였다.


면접을 보았다면 1%의 가능성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지 못했더라도 미약하나마 기회는 있는 것이다. 포기는 가능성을 0%로 만드는 것이다. 좋은 경험을 했다. 실패의 두려움에 맞서는 것은 아직도 숙제이다. 그래도 시도하는 횟수가 늘었다. 저마다 안락의 경계, Comfort zone이 있다. 경계 안쪽은 안락함과 익숙함이 지배한다. 테두리 밖은 위험하고 낯설다. 울타리를 넘어 한 발을 내딛는 것은 의미 있다. 결정의 한 순간 친구가 조언했다.  “한 발을 내딛고 두 발을 후퇴하더라도 경계선 밖으로 디딘 한 발자국이 중요한 것이다.” 그 한 발자국으로 우리는 성장하는 것이다. 익숙함이 주는 안정성은 거부하기 어렵다. 미개척지에 대한 동경과 희망으로 한 발을 더 내딛고 싶다. 뒤로 물러서게 될 지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