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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니 Jan 25. 2021

여기가 미니멀 라이프 등용문인가요?

중고거래로 몇 번으로 지난 날을 반성하며

부모님이랑 같이 살 때 1년에 한 번 정도는 안 쓰는 물건들을 정리했다. 대체로 더러워지거나 안 입는 옷을 버렸다. 가끔 다 쓴 공책을 버리거나 나오지 않는 볼펜을 버릴 때도 있었다. 그렇게 정리를 해도 나는 미니멀 라이프와는 거리가 멀었다. 안 쓰는 물건도 멀쩡하면 쌓아두는 엄마의 영향이 컸다. 물건이 너무 많아 때로는 짜증이 났다. 장애물이 많아서 청소도 싫었다. 들어갈 데가 없으니 물건을 이리 치우고 저리 치우며 청소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족들도 청소와 거리가 멀었다. 대충 치우고 사는 삶이었다.


주변에 아는 동생이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책을 읽고 물건들을 내다 버릴 때 나도 조금 정리해보았지만 여전히 미니멀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미니멀하지 않은 사람을 미련한 사람 취급하는 그녀의 말투에 언짢았고 반감이 생겼다. 그래도 각종 미디어의 영향으로 미니멀에 대한 동경은 항상 있었다.


엄마는 '니 좋아하는 미니멀 라이프 독립해서 실컷 해라!'라고 하셨다. 나도 그럴 생각이었고 그래서 미니멀 라이프의 등용문 당근마켓을 시작했다.




자취집으로 물건을 옮기면서 당근마켓에 내놓을 것들은 따로 빼두었다. 처음 올린 물건은 네일아트 재료였다. 19년 여름휴가 때 방문한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젤네일아트를 받았는데 반짝 관심이 생겨 젤네일 몇 개와 아트 재료들을 사두었다. 그때는 진지하게 네일아트 자격증을 따 볼까 고민도 했던 때라 돈을 꽤 많이 썼다. 그리고 붙여서 램프로 굳히기만 하면 된다는 젤네일 스티커(스티커는 아니지만 편의상)도 몇 개 샀었다. 젤네일 스티커 중고품 2개와 새 제품 1개를 묶어 일괄 만 원에 올렸다. 젤네일 컬러 4개와 네일아트 용품들도 묶어 2만 원에 올렸다. 그날 바로 연락이 왔고 다음날과 주말에 거래가 이루어졌다. 가지고 있었으면 나중에 쓰레기통으로 갔을 것들을 팔아 3만 원이나 벌다니. 돈을 번 기념으로 본가에 갈 때 붕어빵과 찹쌀도넛을 사 갔다. 그 뒤로 본가에 가면 이번엔 뭘 팔아볼까 매의 눈으로 스캔을 했다.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속옷과 문구류를 모아 팔아서 만 원 더 벌었다. 그렇게 당근 마켓으로 총 4만 원을 벌었다.


무료 나눔도 몇 번 진행했다. 한참 유행했던 나노 블록. 도쿄 디즈니랜드 갔을 때 1400엔에 샀던 칩&데일 나노 블록은 아무도 사지 않아 결국 무료 나눔으로 내놓았다. 다 읽은 책은 모두 무료 나눔으로 올렸다. 유행이 조금 지난 감성 에세이나 여행 에세이들이 대부분이라 가지고 있어 봐야 다시는 읽지 않을 책들이었다. 멀리서 받으러 오는 분을 위해 버스정류장까지 나가거나, 약속을 기꺼이 바꿔주면 커피 기프티콘이나 맛있는 간식이 생기기도 했다.


무료 나눔으로도 내놓을 수 없는 모아둔 쓰레기들은 미련 없이 버렸다. 특히 자취집으로 가져와야 할 플라스틱 서랍장에 있던 물건들은 많이 버렸다. 몇 년간 입지 않은 옷, 오래된 화장품 샘플, 짝 없는 양말, 보풀 잔뜩 생긴 검정 스타킹, 유행 지난 머리끈 등등 그동안 이런 쓰레기들을 쟁여놓았나 싶었다.


아직 제대로 털지 못한 구역도 있다. 책장 두 개와 철제 서랍장이다. 아직 다 읽지 않은 책, 시작도 안 한 책, 쓰다만 공책, 들여다보지 않는 언어교재, 빛바랜 추억템, 소위 예쁜 쓰레기라는 예쁘지만 쓸모는 없는 소품들, 이젠 내 취향이 아닌 소품들, 각종 전자기기 박스들. 본가에 갈 때마다 정리하자고 결심했지만 내 집에서 살만해지니 본가에 남겨진 물건들을 잊었다. 그래도 이렇게 생각난 김에 또 팔 수 있거나 나눔 할 물건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살 때는 좋았던 물건들을 구매 금액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으로 팔거나 무료로 나누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낭비하고 살았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덕분에 소비습관이 조금 바뀌었다. 있는 건 사지 않고,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은 언젠가를 위해 쟁여두지 않는 습관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기초 화장품은 여행을 위해 모아두었던 증정용 미니 화장품이다. 집 앞 마트에서 귀여운 갑티슈를 계속 세일하고 있는데 아직 쓰던 것이 남았으니 사지 않는다. 있으면 좋긴 한데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사지 않게 되었다. 예쁜 쓰레기들은 눈으로만 즐기고 사지 않는다.


앞으로도 쇼핑을 할 때나 세일한다는 문자를 받을 때 한 번쯤 멈추어 생각해 봐야겠다. 유행을 많이 타는 물건인가? 지금 꼭 필요한 물건인가? 세일을 한다고 해서 딱히 살 것도 없는데 둘러보며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고 한 철 유행을 따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어디선가 봤던 표현처럼 유행은 지나가고 세일은 다음 달에 또 돌아오니까 말이다.


소비습관만 아니라 집안도 깔끔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물건이 갈 곳을 찾아 모두 들어가 있으니 청소도 짜증나지 않았다. 중고거래 몇 번으로 내가 이렇게까지 바뀔 줄 몰랐다.


사람들이 당근 당근 할 때 그냥 중고거래에 뭘 저렇게까지 난리인가 싶었는데 이제 알 것 같다.

당근마켓은 미니멀 라이프의 등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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